지난해 정부가 농가 소득 보전, 식량 안보 등을 이유로 쌀을 매입했다 되파는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금과 관리비가 1조7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부가 쌀을 일정량 매입해 쌓아두는 ‘공공비축제도’가 시작된 2005년 이후 최대치로, 전문가들은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15일 농림축산식품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양곡 관리를 위해 사용한 일반회계 전입금은 1조7700억 원으로, 2005년 공공비축제도 도입 이후 역대 최고치였다. 이는 2022년(1조1802억 원)에 비해서도 50%가량 높고, 2005년(7399억 원)에 비해서는 2.3배가량 많은 수치다. 정부가 최근 5년간 양곡 관리를 위해 사용한 일반회계 전입금은 7조9000억 원을 웃돌았다.
일반회계 전입금은 정부가 쌀을 사들이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양곡관리 특별회계’의 적자를 메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통상 정부는 농가 소득 보전과 식량 안보 등을 이유로 농가 등에서 남는 쌀을 웃돈을 주고 사들이거나, 저율관세할당(TRQ)으로 수입한 쌀을 다시 싼값으로 되파는데 이때 발생한 손실액과 관리비가 지난해에만 1조7700억 원에 이르는 것이다. 정부는 이렇게 사들인 쌀을 사료용이나 주정용, 원조용 등으로 사용한다.
쌀 보관하는데만 年4000억… “타작물 재배 유도 등 대책 절실”
식량안보 위해 쌀 비축 필수지만… 과잉 생산 줄일 농가 유인책 필요 농작물 전환 인센티브 등 고려를… 가공식품-수출 확대, 소비 늘려야 농식품부 “내달 쌀값 방어책 마련”
정부가 사들인 쌀을 보관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용한 ‘양곡 관리 비용’도 지난해 3942억 원으로 2005년 이후 최고치였다. 최근 5년간 양곡 관리비는 1조7800억 원을 웃돌았다. 농식품부는 내년 정부 양곡 관리비 예산으로 올해(4091억 원)보다 11.5% 늘어난 4561억 원을 책정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지난해에 쌀 재고 물량이 많다 보니 이에 따른 관리 비용 등이 많이 들어 일반회계 전입금이 불어난 것 같다”면서도 “다만 식량 안보나 쌀값 안정 등을 위해 불가피하게 쌀을 사들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 8월 말 기준으로 정부가 비축한 쌀 재고 물량은 115만6000t으로,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권고한 한국 비축 물량(80만 t)의 1.4배 수준이다.
이처럼 정부가 사들인 쌀이 남아돌고 있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쌀을 추가적으로 사들이겠다는 입장이다.
15일 농식품부는 양곡수급안정위원회를 열고 2024년산 쌀 총 20만 t을 시장에서 격리(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농식품부는 쌀값 안정을 위해 10만5000t 물량의 쌀을 사들였는데, 올해 안에 9만5000t을 더 매입하겠다는 뜻이다.
앞서 통계청은 7일 올해 쌀 생산량을 지난해 대비 1.2%(4만5000t) 줄어든 365만7000t으로 예상했다. 이를 바탕으로 농식품부는 1인당 쌀 소비량 등을 고려해 올해 수요를 초과하는 쌀 물량이 12만8000t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예상 초과 생산량(12만8000t)보다 훨씬 많은 물량을 시장에서 격리하는 건 쌀값 하락을 막기 위해서다. 15일 통계청에 따르면 이달 5일 기준 산지 쌀값은 20kg당 4만7039원으로 1년 전(5만4388원)보다 13.5% 낮다. 사전 격리 물량 중 7만 t은 주정용으로, 3만5000t은 사료용으로 각각 쓸 예정이며, 이번에 추가로 수매하기로 결정한 햅쌀 9만5000t은 공공비축미와 함께 연말까지 농가에서 매입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현재 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정부가 쌀을 사들이는 데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들여야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이 일정 수준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기준 가격 미만으로 떨어지면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다. 농식품부는 해당 법안이 시행될 경우 2030년 쌀 매입·보관 비용으로 3조 원 이상 들어갈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쌀값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농가 소득 보전과 식량 안보 등을 위해 정부가 지금처럼 일정 부분 쌀을 사들여야 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다만 현재 과잉 생산되고 있는 쌀을 줄이기 위해 벼농사 대신에 다른 농작물을 기를 수 있도록 인센티브 등을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은 농가가 쌀을 과잉 생산해도 정부가 예산을 들여 높은 값에 매입하기 때문에 쌀농사를 포기할 유인이 적다. 이 밖에 쌀을 활용해 만든 대체식품 등을 개발하는 것도 쌀 소비량을 늘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농식품부 역시 쌀값 방어를 위해 11월에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기본 골자는 (벼) 재배 면적을 감축하고 등급제를 만들어 맛있는 쌀이 소비자들에게 유통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술을 포함해 쌀 가공식품으로도 소비 저변을 확대하고 수출길을 넓히려 한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