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 장려하는 日 지자체
출산 가정에 매달 육아용품 배달… 30만 시민 중 2300가구 혜택
도심에 무료 시립 놀이방 설치… 인구 늘자 타 지자체도 잇따라 도입
경제지원-육아고민 해결 일석이조… 일각선 “소모성 행정” 우려
《“딩동!” 22일 일본 서부 효고현 아카시의 한 주택가. 분홍색 점퍼를 입은 여성 배달원이 초인종을 누르며 “기저귀 배달 왔어요”라고 알렸다. 집에 있던 아기 엄마가 아이를 안고 문을 열었다. 여러 차례의 기저귀 배달로 이미 얼굴을 익힌 배달원과 아기 엄마는 친근한 동네 이웃처럼 자연스럽게 안부를 주고받았다. “아기는 잘 크나요?” “며칠 전 열이 나 걱정했는데 금방 괜찮아졌어요.” “다행이네요. 단골 소아청소년과에 가 보면 어떨까요?” 2분 넘게 안부를 주고받은 뒤 배달원은 기저귀를 건넸다. 아기 엄마 또한 받았다는 의미로 서류에 서명했다.》
‘기저귀 정기편(おむつ定期便)’이라는 이름의 이 사업은 아카시 당국이 저출산 해결을 위해 2020년 도입했다. 한국 못잖게 저출산 고민이 깊은 일본에서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경쟁적으로 지원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위기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 육아 경험 여성이 기저귀 배달
아카시 당국은 생후 3개월∼1세 아이를 키우는 가정에 기저귀, 분유, 이유식, 물티슈, 아기 비누 등 육아용품을 지원한다. 월 3000엔(약 2만7000원) 상당의 용품을 매달 1회 배달하며 지역 예산으로 무상 지원한다. 인구 30만 명의 아카시에서 약 2300가구가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의 핵심은 배달원이 직접 육아용품을 배달해주는 것. 은행 계좌로 현금을 송금하거나 택배로 배송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지역민과의 소통을 중시한 시 당국이 배달원 대면 배송을 택했다. 배송은 생활협동조합 ‘코프(COOP) 고베’가 맡았다.
마루타니 사토코(丸谷聡子) 아카시 시장은 “육아용품을 전해 주면서 아기와 보호자의 고민을 듣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게 이 사업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산후 후유증 등을 겪는 가정에는 보건소에서 인력을 보내기도 한다. 학대에 가까운 육아 방임을 발견해 아동 상담소에 통보한 사례도 있다고 했다.
배달원으로는 육아 경험이 있는 여성을 채용한다. 이날 만난 배달원 호리카와 씨는 직접 트럭을 몰고 월 12일, 하루 20가구에 배달을 한다. 그를 포함한 배달원들은 배송 전 아동 상담소에서 교육도 받는다. 기저귀를 받는 부모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 아동 학대 징후를 파악하는 법 등을 집중적으로 배운다.
호리카와 씨는 “사전에 교육을 받았고 나 자신도 육아 경험이 있기에 엄마들의 일부 육아 고민에 대해서는 직접 답을 준다. 지원이 필요하거나 심각한 상황이라고 판단하면 시에 연락해 지원을 주선한다”고 설명했다.
기저귀를 건네받은 다니미즈 가린 씨(34)는 인근 대도시인 고베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육아휴직을 한 뒤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다. 다니미즈 씨는 “요즘 물가가 올라 경제적 부담이 커졌는데 육아용품을 지원받아 크게 도움이 됐다”며 “이 서비스를 받으려고 다른 지역에서 이사 오는 가정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육아용품 배달 서비스는 2016년 시가현 히가시오미시 당국이 최초로 도입했다. 4년 후 도입한 아카시 당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서 전국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후 다른 지자체들도 경쟁적으로 도입에 나섰다.
후쿠오카는 지난해 8월부터 0∼2세 자녀 가정을 대상으로 같은 서비스를 시작했다. 도쿄 시나가와구 역시 지난해 4월부터 0∼1세 자녀를 키우는 가정에 월 1회 배달원이 들러 육아용품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 사업을 하고 있다.
● 육아 지원에 출산율 상승
아카시 중심가인 아카시역 앞 대형 쇼핑몰 ‘파피오스’. 역 앞 광장 재개발 사업으로 2017년 문을 연 쇼핑몰의 5층에는 어린이 청소년 시설인 ‘아카시 어린이 광장’이 들어섰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실내 공간에는 어린이 놀이방, 가족지원센터, 다목적실, 중고교생 댄스 연습실 등이 갖춰져 있다. 연간 12만 명이 이용하는 시의 중심 시설이다. 한국의 웬만한 유료 키즈카페보다 넓고 시설이 깨끗했다.
이날 놀이방에서 만난 가쓰카와 씨는 전날 야근 후 쉬는 날을 이용해 3세 아들을 데려왔다. 아빠와 노는 아이는 신이 난 듯 놀이방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소리를 쳤다. 편도 1시간 거리의 오사카 회사에서 근무하는 가쓰카와 씨는 “육아 지원이 많은 지역이라 결혼 후 아카시로 이사 왔다”며 “아내 혹은 내가 거의 매일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온다”고 했다. 아카시 시민은 무료이고 다른 지역 주민은 이용료 300엔(약 2700원)을 받는다.
다양한 지원책에 힘입어 아카시의 합계출산율은 2010년 1.48명에서 지난해 1.65명으로 늘었다. 시 인구 또한 2010년 29만3481명에서 지난해 30만6793명으로 13년 연속 증가세다. 일본 중핵시(인구 20만 명 이상 특례 지자체) 62곳 중 인구 증가율 1위다.
특히 젊은 부모 세대인 25∼39세(9607명 증가)와 어린 자녀 세대인 0∼9세(3495명)에서 인구가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일본의 합계출산율이 1.39명에서 1.20명으로 하락하고 지방 도시 대부분에서 저출산 고령화 현상이 심화된 것과 대조적이다. 이 기간 한국의 출산율은 1.23명에서 0.72명으로 대폭 하락했다.
아카시의 육아 지원은 이즈미 후사호(泉房穂) 전 시장 때인 2011년부터 본격화했다. 당시 그는 ‘아이를 중심으로 하는 마을 만들기’라는 구호를 걸고 다양한 정책을 폈다. 중학생까지 의료비를 무료로 지원하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작으로 시립 놀이방 설치, 어린이집 무상보육, 기저귀 지원, 중학교 무상급식 등을 잇달아 도입했다.
시의 아동 복지 예산 또한 2010년 40억 엔(약 360억 원)에서 2022년 99억 엔(892억 원)으로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반면 토목 예산은 같은 기간 74억 엔에서 60억 엔으로 줄었다. 부채 상환 목적으로 쓰이는 예산도 이 기간에 11억 엔 줄었다. 당국은 “육아 시책에 중점을 두기 위한 강한 방침에 따라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고령화 저출산 시대를 반영한 변화’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기 활성화에 역행하는 소모성 행정’이라고 우려한다. 육아 분야에만 예산을 치중해 고령자 지원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취지다.
소모성 행정을 우려하는 쪽은 아카시 인구가 증가하고 합계출산율이 상승한 것은 오사카, 고베 등 인근 대도시에서 이주한 젊은 세대가 많은 영향이라고 지적한다. 아카시 인구와 출산율이 증가하는 만큼 다른 지역은 감소하는 ‘제로섬 현상’을 피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일본 사회 전반에 해당하는 저출산 해법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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