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공화장실 청소부다. 그는 규칙적인 삶을 살아가는 50대 남성이다. 출근 전 그는 신중하게 그날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고른다. 스포티파이 같은 스트리밍 앱이 아닌 카세트테이프로 말이다. 우연히 차를 타게 된 젊은 20대 남자 후배와 그의 여자 친구도 히라야마의 카세트테이프에 흥미를 갖는다. 후배의 20대 여자 친구는 나중에 따로 히라야마의 차 안에서 패티 스미스의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듣다가 히라야마에게 기습 뽀뽀(!)를 한다.
아 빔 벤더스 감독…. 이 시대에 맞지 않는 중년 남성의 판타지 뭐냐고~. 오글대던 기자의 눈을 사로잡은 건 영화 속 주인공이 갖고 있는 카세트테이프 콜렉션이었다. 루 리드, 벨벳 언더그라운드, 니나 시몬, 애니멀스 등 1960, 1970년대 명반들이 가득했다.
“요즘 카세트테이프가 돈이 돼요. 유행이거든요.” 영화 속에서 일본의 레코드 가게 주인장은 주인공에게 말했다.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는 카세트테이프가 인기를 끌기 시작하나 보다. 우리나라에선 일본보다 조금 일찍,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가 발발하던 시기에 카세트테이프가 유행했다. 한때 대한민국에 레트로 열풍을 불게 했던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때문일 것이다. 그때 기자도 카세트테이프 수집에 광적으로 빠져 있었다. 지방 출장을 갈 때마다 시간이 남으면 오래된 음반 가게를 들르곤 했다. 순식간에 집에 쌓여가는 카세트테이프들을 보며 아내는 기겁했다.
이미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0.5초 만에 음악이 재생되는 나오는 스트리밍 세상이다. 그런데도 이 불편한 카세트테이프가 주는 매력은 뭘까?
첫째로 손맛이다.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카세트테이프는 한 손에 잡힌다. 좌우로 흔들어보면 덜컥덜컥 소리가 난다. 마치 영화 ‘반딧불의 묘’에서 주인공 동생이 소중히 들고 다니던 사탕 틴케이스 같다. A면과 B면 중 들을 부분을 골라 ‘워크맨’에 넣고 커버를 닫고 플레이 버튼을 꾹 하고 누르면 철컥하면서 모터가 돌아간다. 정숙성을 요구하는 LP와 다른, 기계적인 아날로그의 느낌이 좋다.
둘째로 저렴한 가격이다. 1990년대 음반 가게에는 LP가 있던 곳에 CD와 카세트테이프가 채워져 있었다. 기자의 기억으로 당시 가요 테이프는 5000원, CD는 8000원이었다. 가난한 학생 시절 기자에겐 선택권이 많지 않았다. CD 살 돈에 조금만 보태면 테이프 2개를 살 수 있었다. 몇년 전 방문했던 지방 음반 가게에서는 30년 전 가격 그대로 카세트테이프를 판매하고 있었다.
골라 들을 수 없는 불편함 또한 특징이다. 당시 최신 기계들은 음이 비어 있는 곳을 자동으로 인식해 반복 재생이 가능한 기능이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한 면이 끝날 때까지 끝까지 들어야만 했다. 그래야 반대쪽 면을 처음부터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어렸을 때는 카세트테이프는 CD와 달리 히트곡들만 골라 들을 수 없어서 괴로웠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가수나 프로듀서가 의도한 대로 음반 전체를 감상할 수 있는 게 아날로그 음반이 주는 장점이 됐다.
자작 믹스 테이프의 매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CD와 달리 카세트테이프는 자기가 원하는 곡들을 버튼 몇 개로 간단하게 녹음할 수 있었다. 영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속 ‘어섬 믹스(AWESOME MIX)’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한 테이프에 담을 수 있었다. 그런 걸 믹스테이프라고 했다. 친한 이들에게 자신이 직접 선곡한 테이프들을 선물하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추억의 소환이다. 1990년대 카세트테이프 음반을 보면 어린 시절의 기자가 떠오른다. 기자가 처음으로 용돈을 주고 직접 산 카세트테이프는 초등학생 때 한창 캔디로 1위를 달리던 그룹 HOT 1집이었다. 그 카세트테이프를 산 지 일주일 만에 쿨의 2집 곡 운명이 1위를 빼앗아 허탈해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은 클래식이 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과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 사운드트랙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 특히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건 스매싱 펌킨즈, 너바나, 라디오 헤드, 오아시스나 블러 같은 1990년대 록 계열의 음반들이었다.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이발관, 크라잉넛 같은 국내 인디 밴드들의 카세트테이프 음악을 들으면 기자의 찌질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게 1, 2년간 카세트테이프를 광적으로 모으던 기자는 어느 순간 카세트테이프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매장량이 한정돼 있는 광산처럼 생산을 멈춘 카세트테이프들도 수량에 제한이 있었다. 코로나19의 스트레스 발산을 위해 사람들이 수집 시장에 뛰어들면서 카세트테이프의 희소성이 높아졌다. 후발 주자들은 더 많은 돈을 주고도 나쁜 상태의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해야 했다. 가성비의 장점이 사라진 것이다.
꾸준히 관리해야 하는 기기들도 문제였다. 테이프를 돌리기 위해서는 고무 벨트가 필요하다. 그런데 워크맨 플레이어의 벨트를 교체하기 위해선 기기를 분해해야 했다. 드라이버로 재생 속도도 조절하는가 하면 납땜을 해야 하는 기기들도 있었다. 기기 문제로 아끼던 카세트테이프의 릴이 꼬이거나 씹혀 사망하기라도 하면 하루 종일 우울했다.
이런 불편함에도 카세트테이프의 유행이 부는 걸 보면 기자뿐만 아니라 카세트테이프가 주는 원초적인 매력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다시 한 번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에서 다다미에 드러누워, 붐박스에 카세트테이프를 꽂고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주인공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몇년 전 카세트테이프를 수집하던 기자도 행복했다.
[소소칼럼]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소소한 취향을 이야기하는 가벼운 글입니다. 소박하고 다정한 감정이 우리에게서 소실되지 않도록, 마음이 끌리는 작은 일을 기억하면서 기자들이 돌아가며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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