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로 시력이 떨어질 때
도수 조절 가능 안경처럼
소비자 요구에 맞춰 변하는
성장형 제품이 뜬다
2017년 미국의 장난감 회사인 라디오 플라이어는 부모가 원격으로 제어할 수 있는 어린이용 자동차를 선보였다. 이 자동차는 어린이의 성장 단계에 맞춰 세 가지 모드로 작동할 수 있다. 1단계는 부모가 자동차를 원격 제어한다. 2단계는 어린이가 운전은 하지만 부모가 언제든지 끼어들 수 있다. 3단계는 안전하든 그렇지 않든 어린이가 운전에 관한 모든 결정을 내린다. 라디오 플라이어는 이 같은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신제품의 이름을 ‘레이서와 함께 성장하는 차(Grow with Me Racer)’라고 붙였다.
이 어린이용 자동차처럼 사용자의 진화하는 요구에 발맞춰 변화하는, 일명 ‘성장하는 제품’이 주목받고 있다. 테슬라는 거의 매달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자동차의 성능을 개선한다. 농기계 기업 존디어는 하드웨어를 변경하지 않고도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만으로 콤바인에 기능을 추가한다. 스마트렌즈 회사인 딥 옵틱스는 도수를 조정할 수 있는 안경 렌즈를 개발해 노인들의 시력 저하를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의료 연구자들은 어린 장기 수혜자들의 신체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심장판막과 스텐트 등 소아용 이식형 기기를 테스트하고 있다.
이처럼 성장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은 소비자의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방식으로 좋은 평판을 얻을 수 있다. 물론 기업이 5년 혹은 10년 후 고객이 무엇을 원할지를 예측해 그에 적응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성장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제이 고빈다라잔 다트머스대 터크경영대학원 교수, 토진 에이펜 크리에이티브 포사이트 센터 창립자 등이 HBR(하버드비즈니스리뷰) 11-12월호에 기고한 내용을 요약해 소개한다.
● 고객과 장기적 관계 구축
기업은 성장하는 제품을 활용해 고객과 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 특히 고객이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참여하게 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정기적으로 얻으면서 브랜드 충성도를 높일 수 있다. 예컨대 오픈AI는 맞춤형 GPT를 출시해 프리미엄 챗GPT 구독료를 지불하는 고객이 기본 GPT-4o 모델을 특정 사용 사례에 맞게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사용자는 이렇게 맞춤형으로 만든 모델을 GPT 스토어에서 판매할 수도 있다. 이런 스토어는 금전적인 외적 보상을 제공할 뿐 아니라 창의성과 자율성, 사회적 연결 등의 내재적 동기를 자극해 사용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성장하는 제품은 기업이 시장 수요와 소비자 선호에 빠르게 대응하는 데도 유리하다. 전자제품 스타트업인 페어폰의 스마트폰은 사용자가 전문가의 도움 없이도 배터리, 화면, 카메라 등 주요 부품을 쉽게 교체하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모듈식 설계를 채택하고 있다. 회사는 이를 통해 기기의 수명을 연장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능을 제공해 시장 트렌드에 적응한다.
● 수명 긴 제품이 수익성도 높아
일부 기업은 성장하는 제품의 수익성이 기존 제품보다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오히려 수익성을 높인다는 증거도 많다. 예컨대 라디오 플라이어의 매출과 수익은 2018년부터 2023년까지 10%의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했다. 또 페어폰은 모듈형 제품의 연간 판매량을 2021년 8만8000대에서 2023년 17만 대로 늘렸으며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기업은 성장하는 제품에 특화된 가격과 비즈니스 모델로 추가적인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일례로 이 제품이 유사한 제품을 여러 번 구매하는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더 비싼 가격을 책정할 수 있다. 또 스마트폰과 같은 일부 제품 제조업체는 새로운 기능을 정기적으로 추가하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기업은 성장하는 제품을 서비스로도 판매할 수 있는데 제품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하면서 고객이 사용할 때마다 요금을 청구하는 식이다. 5세에서 10세 사이의 자폐아를 위한 교육용 로봇을 판매하는 목시 로봇은 구독 모델을 채택해 고가의 학습 도구를 한 달에 100달러에 대여한다.
제품의 수명 주기가 길어지면 보완 제품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도 늘어난다. 페어폰은 헤드폰, 이어버드, 충전기, 보호 케이스 등의 액세서리와 함께 제품 교체용 부품과 설치용 커스텀 드라이버를 판매한다. 또한 기업은 수명이 길어질수록 수리 필요성이 커진다는 점을 감안해 사용자에게 제품 보증을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커피머신 회사인 큐리그는 싱글 컵과 한 병 분량을 모두 추출할 수 있는 올인원 제품을 만들고 유지보수 키트를 제공하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했다.
● 지속가능한 성장에 기여
앞으로 기술이 진보하고 생활의 복잡성이 커지면서 성장하는 제품의 매출은 점점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제품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소구할 수 있으며 기업이 소비자의 취향과 새로운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성장하는 제품은 기존 제품의 폐기와 교체 제품의 출시를 줄이면서 폐기물을 덜 발생시키고 자원을 덜 사용하는 데 기여한다. 이는 소비자들의 친환경 의식이 높아지는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성장하는 제품을 디자인하는 브랜드가 지속가능성의 가치가 높아지는 시장에서 선구적인 기업으로 주목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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