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다른 생물을 포획하거나 길러서 효율적으로 희생시키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만물의 영장으로서 지위를 갖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쾌감과 함께 죄책감이란 걸 느끼게 되었고, 병이나 재앙이 찾아올 경우 자신들이 희생시킨 것들이 내리는 벌이라고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토템 신앙 같은 게 발생한다고 보았다.
확실히 음식을 먹는 행위는 제의적인 측면이 있다. 풍요로운 문명을 구축한 사회일수록 이 제의는 사치와 야만의 성격을 띠기까지 한다. 노포 얘기를 하면서 왜 이런 거창한 전제를 깔았냐면, 오늘 얘기할 음식이 바로 보리밥과 산채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자동차나 전철을 타고 1시간만 가면 양평이라는 선물 같은 고장과 만난다. 산과 물이 죄다 푸르고 맑아서 도시 사람들이 심신을 정화하기에 양평만 한 곳도 없다. 그런데 여기 양평에는 몇 군데 보리밥 정식을 파는 곳이 있다.
쓴소리 삼아 하는 얘긴데, 서울 사람들은 극성이라고 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에 집착한다. 귀하고 별난 음식에 아낌없이 돈을 쓴다.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서울에 다 있다고 할 정도로 산해진미가 넘쳐난다. 그렇게 탐미적 생활에 젖어 있다가 문득 ‘내가 이렇게 잘 먹어도 되는 걸까’라는 자각과 성찰이 찾아올 때가 있다. 특히 절대적 빈곤을 경험한 50대 이상 세대는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가끔 복잡한 감회에 사로잡힌다. 이때 생각나는 음식이 바로 보리밥 아닐까 싶다. 양념과 향신료 같은 걸 거의 쓰지 않은 채 슴슴하게 무친 산채 나물과 함께 말이다. 그러니까 늘 기름진 음식과 맵고 달고 짠 양념 맛에 길들여진 삶을 한 번쯤 돌아보고 싶을 때, 사람들은 보리밥을 먹으러 간다. 보리밥을 먹으면서 화려한 문명과 자본의 수혜에 찌든 심신을 정화한다고나 할까. 확실히 보리밥은 어느 사이 우리가 잃어버린 순수와 소박함, 겸양과 절제 등을 상기시켜 준다.
경기 양평 보리밥집 ‘사나래’는 건축 일을 하던 60대 후반의 남편이 워낙 손맛이 빼어난 아내의 음식 솜씨를 그냥 묵히기 아까워 채근해서 시작했다는 식당이다. 부부와 찬모 셋, 젊은 알바 한 사람이 부지런히 그리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는다. 1인분 1만2000원인 사나래 보리밥 정식을 시키니 정갈한 산채와 밑반찬, 가자미구이와 된장찌개가 나오는데,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어도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보리밥은 고슬고슬하니 되기가 딱 알맞고 주인 할머니가 직접 간을 하고 무쳤다는 산채 나물은 고급 사찰 음식점의 그것처럼 신선하면서도 나물 본연의 맛이 살아 있다. 보리밥 위에 산채 나물과 계란프라이를 얹고 된장찌개를 떠넣고 잘 비벼서 한입 뜨니, 아, 정말 온몸의 세포가 깨어서 일어나는 느낌이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탁한 영혼이 씻기는 느낌까지 든다.
조금만 방심하면 생존 경쟁의 장에서 나가떨어지는 도시에서, 좀 더 달고 좀 더 짜고 좀 더 매운 것의 자극을 위안으로 삼으며 바쁘게 살아온 서울 사람이라면 이 순연하고 착한 보리밥 앞에서 지극한 안식을 맛보리라. 그런데, ‘사나래’라는 특이한 식당 이름의 뜻을 주인장께 물으니 ‘천사의 날개’라는 뜻이란다. 현대인의 대속과 정화의 음식인 보리밥을 파는 집의 이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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