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카 62년간 운영한 민간기업, 공사 집행정지 신청해 법정 다툼
엔데믹 이후 외국인 관광객 증가세
케이블카-버스 대기 시민 불편 커
시민 80% “공공 곤돌라 도입 찬성”
“버스 꽉 찼습니다. 기다렸다 다음 차 타주세요”
17일 일요일 오후 5시 반 서울 남산 서울타워 버스 정류장. 남산 구경을 마치고 산 아래로 내려가려는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 등 40여 명이 줄을 섰다. 전날보다 기온이 10도 정도 떨어져 추운 날씨 속에 시민들은 옷깃을 여민 채 버스를 기다렸다. 01A번 순환버스는 도착할 때 마다 금세 승객들로 가득 찼다. 기자는 버스 2대를 보낸 뒤 3번째 버스를 타고 남산을 내려갈 수 있었다.
이날 남산 케이블카 앞에도 장사진이 펼쳐졌다. 매표소 유리 벽엔 ‘대기 60분’이라고 적힌 안내문이 붙어 있었고, 건물 밖으로 시민 20여 명이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시민들은 “안에 들어가서도 한참 기다려야 해. 케이블카는 그냥 다음에 타자”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 서울시 남산 곤돌라 사업, 법원서 제동
최근 외국인 관광객 급증으로 남산에 관광 인파가 몰리자 서울시는 지상부터 남산 정상부까지 오가는 ‘남산 곤돌라’ 설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기존 남산 케이블카 운영사 측 반발로 곤돌라 공사에 제동이 걸렸다. 케이블카 운영사가 “곤돌라가 생기면 케이블카는 손해를 본다”며 법원에 공사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지난달 서울행정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케이블카 운영사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운영사인 한국삭도공업은 1962년부터 남산 케이블카를 독점 운영해 온 민간기업이다. 사업권 획득 당시 종료 시한을 규정하지 않아 현재 일가친척이 세습 운영하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남산 곤돌라는 시민 편의 확보라는 공공복리를 위한 공공 서비스”라고 주장하며 항고할 계획이다.
남산 관광 수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증가세다. 서울시가 파악한 지난해 남산 이용객 수는 약 963만 명으로 2022년(801만 명)보다 20% 늘었다. 5년 전인 2018년(882만 명)과 비교하면 9% 늘었다. 관광 수요는 늘었지만 남산 순환버스 등 대중교통을 증차하는 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남산 둘레길은 최고 경사 15.3도에 180도 급커브 구간도 있어 교통 사고 우려가 크다. 올해 8월에도 남산 둘레길에서 01B번 버스가 미끄러져 뒤집혔다. 여름 장마철에 비가 쏟아지거나 겨울에 폭설로 도로가 얼어붙으면 사고 위험이 더 커진다.
● 시민들은 80% 사업 찬성… 공익 차원서 봐야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1월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0.7%가 ‘공공 곤돌라 도입’에 찬성했다. 시가 추진하는 남산 곤돌라는 사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에 해당하기 때문에 공익 차원에서 보다 두텁게 사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사한 서울시의 공공서비스 사업으로는 실내 놀이터인 ‘서울형 키즈카페’와 온라인 학습 사이트 ‘서울런’ 등이 있다. 돌봄 시설 부족과 양육자 고비용 부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서울형 키즈카페는 시민들로부터 인기를 끌면서 2026년까지 400곳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서울런도 취약계층 가구 학생들로부터 사교육비 절감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사업 모두 도입 당시 민간업계로부터 시장 침해라며 거센 반발에 부딪혔으나 관련 업체 및 기관 설득과 상생·협력 방안 마련으로 계속 추진할 수 있었다. 서울시 균형발전본부 관계자는 “남산 곤돌라는 휠체어나 유모차도 들어갈 수 있어 장애인 등 교통약자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며 “운영 수익은 전부 남산공원 보전과 생태 회복, 시민 여가 등에만 쓰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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