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조2000억’ 세포 지도로 맞춤형 의료 시대 연다

인간세포아틀라스 국제 연구 성과
고관절 관절염과 관련된 유전자
두개골 성장 저해 돌연변이 밝혀
대장암 일으키는 장 세포 등 주목

골격에 관여하는 세포의 유전자 발현을 나타낸 인간 세포 지도. 네이처 제공

37조2000억 개에 달하는 인간 세포의 고유한 기능을 규명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국제 공동 연구 프로젝트가 속속 성과를 내고 있다. 인간 세포의 역할을 샅샅이 알면 세포 수준에서 질병의 발병 원리를 규명하고 개별 환자에게 적합한 ‘맞춤형 의료’의 토대를 닦을 수 있다. 기존 의료기술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생체모방 소재를 개발하거나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수명과 노화의 비밀을 푸는 단서에도 접근할 수 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21일 인간 세포의 전체 지도를 작성하는 연구 컨소시엄 ‘인간세포아틀라스(HCA)’의 새로운 연구 성과들을 잇달아 공개하고 이 중 10개를 핵심 성과로 지목했다. 2016년 출범한 HCA 컨소시엄에는 100개국 이상에서 35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참여하고 있다. 인체 모든 세포를 종류별로 분류해 각 세포가 발현하는 유전자를 정리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1억 개 이상의 세포 기능 분석을 완료했다.

가장 주목받는 연구는 골격의 초기 발달에 관여하는 모든 세포와 이 세포들의 경로를 확인한 연구다. HCA 컨소시엄에 참가하는 영국 웰컴트러스트생어연구소 연구팀이 공개한 인간 세포 지도 이미지는 인간의 두개골 상단을 제외한 골격 전체에서 뼈가 성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세포를 정확히 나타냈다. 유전 정보를 전달하는 리보핵산(RNA)의 발현량을 분석하는 공간전사체 기술로 세포의 위치와 유전자 발현 정보를 자세히 밝혀낸 것이다.

작성된 인간 세포 지도에 따르면 성인의 고관절 관절염 발병에 관련된 특정 유전자가 어린 뼈세포에서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혔다. 어린 연골 세포의 유전자는 연골을 복구하는 역할을 하면서 무릎 관절염 발병 위험의 증가와 관련돼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또 두개골 발달에 관여하는 새로운 유형의 어린 뼈세포를 확인했다. 이 세포는 두개골이 충분히 자라나지 않는 증상과 관련이 있다. 유전적 돌연변이가 이 세포를 어떻게 파괴해 두개골 성장을 방해하는지 메커니즘을 밝혔다는 평가다.

연구팀은 약물이 골격 발달에 미치는 영향도 살폈다. 임신 중에 권장되지 않는 65가지 약물에서 골격 발달을 방해할 수 있는 약물을 골라냈다. 연구진은 “골격 형성의 ‘청사진’을 확보하는 것은 뼈와 관련된 질병 치료법을 개발하는 데 잠재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HCA 컨소시엄에 속한 또 다른 웰컴트러스트생어연구소 연구팀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자세한 장 세포 지도를 공개했다. 160만 개 세포의 위치 정보와 개별 세포의 기능을 모두 규명했다. 장내 세포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어떤 종류가 있는지, 주변 조직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줬다.

연구팀이 작성한 장 세포 지도는 위장관 질환이 없는 환자와 위암이나 대장암, 셀리악병, 궤양성 대장염, 크론병 환자의 조직 샘플 데이터로 제작해 다양한 장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장내 세포를 구분해 내는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예를 들어 위장관 세포와 유전적 유사성을 지닌 한 장내 세포는 위벽을 치유하는 데 관여하면서도 동시에 장내 염증 반응의 원인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번에 공개된 연구 중에는 유전자 발현 양상을 바탕으로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세포를 찾아내는 기계학습(머신러닝) 기반 분석 도구도 있다. 아비브 레게브 HCA 공동창립의장은 “지금은 인간 세포 지도의 초안을 완성하기 위해 나아가는 중요한 순간”이라며 “향후 건강과 질병 치료를 위한 인체의 이해를 발전시키고 모든 사람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