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수백발 로켓 공습이 일상… 가족 납치 트라우마 시달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5일 03시 00분


‘전쟁 1년’ 이스라엘 북부 르포
대부분 상점 열려 있고 교통체증도… 현지 대형 병원엔 부상 시민-군인들
연일 레바논-가자 공습 사상자 속출… “전쟁 끝내야” “계속” 여론은 갈려

18일 오후 6시 반경 이스라엘 북부 이스피야. 해가 져 어두워진 하늘 한 구석이 별안간 번개가 친 듯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워졌다. 멀리서 아주 희미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레바논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를 겨냥해 발사한 로켓이 이스라엘의 단거리미사일 방어체계 ‘아이언돔’에 요격된 것이었다. 이 지역 주민인 바흐지 만수르 씨는 “오늘만 80발 가까이 로켓이 레바논에서 발사됐다. 지난주엔 하루에 200발이 날아왔다”고 말했다.

공습경보가 울리면 주민들은 각 집이나 건물마다 설치된 대피소로 이동한다. 여기서 최소 10분가량 머물다가 나와야 한다. 대피소가 있는 건물이 로켓에 타격돼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만수르 씨는 “2주 전엔 주민 2명이 로켓에 맞아 사망했다”고 말했다.

‘가자전쟁’(지난해 10월 7일 발발) 발발 1년을 넘긴 17∼21일 방문한 이스라엘에서 전쟁은 일상이 된 모습이었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간 교전이 거세지며 거의 매일 로켓이 날아오지만 사람들은 크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가자전쟁 발발 직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경험했고, 가족들이 인질로 붙잡힌 주민들은 여전히 트라우마 속에 살고 있었다.

하마스의 거점지 가자지구도 폐허로 변해 있었다. 이스라엘과의 접경 지역에서 바라본 가자지구에는 온전해 보이는 건물이 없었다. 지금도 이스라엘은 계속 가자지구를 공습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도 수도 베이루트를 포함해 다양한 지역을 공습하고 있다.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사상자가 늘고 있다.

● 일상이 된 전쟁

18일 찾은 하이파는 레바논 남부 국경에서 40여 km밖에 떨어지지 않은 이스라엘 북부 거점 도시다. 겉으로 보기엔 헤즈볼라와의 전쟁 중이라는 게 느껴지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점이 열려 있고, 교통체증도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열자 현 위치가 요르단 암만에 위치한 퀸 알리아 국제공항으로 나타났다. 헤즈볼라의 로켓 발사를 방해하기 위해 이스라엘군이 발신하고 있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교란 신호 때문이었다.

현지 대형 병원인 ‘람밤 헬스케어 캠퍼스’(람밤 병원) 지하주차장은 거대한 병동으로 변화해 있었다. 이곳은 전술 핵공격도 버텨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헤즈볼라의 공격으로 부상한 시민들과 다친 군인들이 여기서 치료를 받는다.

하마스에 납치된 가족 20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국경에서 약 5km 떨어진 이스라엘 남부 베에리 키부츠(집단농장)에서 아옐레트 하킴 씨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에 의해 납치된 형부(왼쪽 현수막)의 집 앞에 서 있다. 베에리 키부츠는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을 받아 주민들이 납치됐다. 베에리=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가자지구 국경 인근 마을에선 전쟁 트라우마가 일상이었다. 20일 찾은 베에리 키부츠는 가자지구 국경에서 5km가량 떨어진 곳으로, 지난해 10월 하마스가 집중 공격한 마을 중 하나다. 집들 곳곳에는 총탄 자국이 남아 있었고, 일부 집은 불에 타 뼈대만 남아 있었다. 이 마을에선 주민 1300명 중 102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납치됐다.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아옐레트 하킴 씨(56)는 당시 세이프룸으로 대피해 있었다. 하마스 대원들이 집으로 들이닥치자 그의 남편은 17시간 동안 문고리를 잡고 문이 열리지 못하도록 버텼다고 한다. 하킴 씨는 “세이프룸에 갇혀 있던 경험이 떠올라서 이제 엘리베이터도 탈 수 없다”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하마스에 붙잡혀 간 형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킴 씨는 “형부의 생일은 크리스마스이브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일어나길 바랄 뿐”이라고 했다.

● 연이은 가자지구·레바논 공습에 국민 여론은 양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이어 나가고 있다. 베에리 키부츠에 머무는 한 시간 반가량 동안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인한 폭발음이 10여 차례 들렸다. 가자지구 국경으로부터 1km가량 떨어진 지역에서 바라본 가자지구 북부 셰하이야의 건물들은 초토화돼 있었다. 23일 알자지라 방송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습으로 최근 48시간 동안 최소 120명이 사망하고 205명이 부상당했다”고 보도했다.

스라엘, 레바논 공습 최소 20명 사망 22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있는 한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받아 무너지며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3일 레바논 보건당국 등에 따르면 베이루트 중부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최소 20명이 목숨을 잃었다. 베이루트=신화 뉴시스
레바논에서도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인한 사상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23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수도 베이루트 중부를 겨냥한 이스라엘 공습으로 최소 20명이 사망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은 레바논과 국경을 맞닿고 있는 시리아 중부 지역에도 폭격을 해 최소 4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쟁 장기화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여론은 크게 나뉘어 있다. 텔아비브 인근에 거주하는 네타 슈포렌 씨(41)는 “공습 경보가 울릴 때마다 극도로 긴장해야 한다”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제 전쟁을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오페르 슈메를링 씨는 “우리는 하마스에 의해 국가를 잃을 뻔했다”며 “계속해서 전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가자전쟁#공습경보#전쟁 장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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