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1심 선고가 두 차례 있었습니다. 지난 15일엔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가 있었고, 열흘 뒤인 25일엔 위증교사 혐의 1심 선고가 있었죠. 이 대표는 15일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고, 25일엔 무죄를 받았습니다. 애초 민주당 안팎에선 공직선거법 무죄, 위증교사 유죄를 내다보는 전망이 많았는데 서로 반대의 결과가 나온 셈입니다.
두 번의 이 대표 재판을 바라보면서 국회의원들도 참 극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가 개개인이 헌법기관인데, 제아무리 헌법기관이어도 조직 생활은 만만치 않은 듯 보이더군요.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이번 재판 전후로 보여준 슬기로운(?) 사회생활 한 번 같이 보겠습니다.
1. 오지 말랬다고 진짜 안 가면 안 된다
사회생활 할 때 가장 고민되는 점 중 하나죠.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릴 때는 민주당 의원들처럼 일단 다들 갑시다. 오지 말라 했다고 정말 안 가면 안 되는 거였습니다.
이 대표는 두 차례의 재판에 앞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굳이 자신을 배웅하러 법원 앞으로 나오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공직선거법 때는 재판 당일 오전, 이렇게 공지했습니다.
오늘 오후 이재명 대표의 선거법 선고 공판과 관련해, 대표께서는 의원님들이 현장에 오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의향을 밝히셨고 언론에도 공지하였습니다. 참고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증교사 재판 때는 사법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었는지, 전날 저녁부터 미리 아래처럼 공지했고요.
내일 오후 이재명 대표의 위증교사 선고 공판과 관련해 조금 전 이해식 비서실장이 대표께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의원들께서는 현장에 오시지 않는 게 좋겠다는 입장임을 의원단에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의원들이 현장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될 때 정답은? 가는 거였습니다.
15일에는 무려 71명의 현역 의원이 찾아 경쟁적으로 법원에 들어가는 이 대표와 눈을 마주치며 악수를 했습니다. 이런 걸 ‘눈도장’이라고 하는 거겠죠. 사석에선 “나는 안 갈 것”이라던 의원들도 25일 현장에 적지 않게 나타났더군요.
당 지도부와 당직 의원을 비롯해 60여 명의 전현직 의원들이 이 대표를 배웅 나왔습니다. 오지 말라는 말만 믿고 정말 안 간 사람만 민망해질 듯합니다. 한 수도권 지역 의원은 “이 대표가 오지 말라고는 했지만, 많은 의원이 개별적으로 판단해 법원 앞으로 모였다”고 전했습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오지 말란다고 진짜 안 오는 게 바보”라며 “이 대표도 사람인데, 재판이 끝나고 나온 뒤에 그대로 기다리고 있는 모습에서 감동하지 않겠냐”고 하더군요.
2. 자리 선정이 반이다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리 선정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결혼식 가서도 꼭 인증 사진은 찍어야 하죠. 남는 건 결국 사진뿐이거든요.
제가 작년 1월 이 대표가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러 나갈 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요. (▶ ‘찐명’부터 ‘탈(脫)명’까지, 사법리스크 이후 ‘이재명계’ 석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230115/117446669/1) 그날도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의원들 간 치열한 어깨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이왕 사진 찍히는 거 제대로 찍히자는 생각이었는지, 코로나가 이어지던 때였는데 마스크도 벗은 채 찍힌 사람들이 많았었죠.
이날도 상당수가 밤 10시 40분 넘어 조사가 끝날 때까지 현장에 남아 이 대표를 기다렸습니다. 당시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사람들은 박홍근(당시 원내대표), 정청래 서영교 박찬대(당시 최고위원), 조정식(당시 사무총장). 천준호(당시 당대표 비서실장), 김성환(당시 정책위의장), 김병기(당시 수석사무부총장), 이해식 김남국(당시 사무부총장) 임오경(당시 대변인) 등이었는데, 지금도 한 자리씩 차지하시는 분들이죠.
박찬대 의원은 올해 5월 역사상 유례없는 단독 출마로 원내대표가 됐고, 당시 이 대표 비서실장이었던 천준호 의원은 최근까지도 이 대표의 무한 신임을 받으며 당 전략기획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이해식 의원은 천 의원에게 당 대표 비서실장 바톤을 넘겨받았고요.
이번에도 많은 의원들이 자리 선정을 두고 희비가 갈렸습니다. 특히 법정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나온 이 대표 근처에 서려는 자리 경쟁이 치열하더군요. 앞 사람에 자신의 얼굴이 가리자, 필사적으로 고개를 들어올리던 한 의원이 기억에 남습니다.
이 대표가 무죄를 선고받자 자축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의원들도 많이 포착됐죠. 눈물을 흘린 의원들의 이름은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지라시’로 빠르게 돌았고, 페이스북엔 이들의 명단이 열거됐습니다.
3. “충성은 공적 순이 아닌 선착순”
최근 한 지인이 “충성은 공적 순이 아닌 선착순”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민주당 의원들의 페북 메시지 행렬을 보며 또 한 번 배웠습니다.
열흘 전엔 ‘사법 살인’이라고 사법부를 맹비난하더니 이번엔 사법부를 극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재판부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했고, 친명계 원외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도 “무도한 검찰 독재정권의 폭정 속에서도 상식과 양심에 따라 정의롭고 공정한 판결을 내려준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했더군요.
이밖에도 원내정책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김용민 의원은 “사건 조작으로 야당 대표 탄압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한 최종 책임자 윤석열 대통령은 즉시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적었고, 5선의 박지원 의원은 “험한 파도는 노련한 선장을 만든다. 김대중 대통령도 (도널드) 트럼프(미국 대통령 당선인)도 살아 돌아왔다”고 썼습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사필귀정!, 너무나 당연한 결론이다”라고 썼고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올리려는 마음이었는지, 일단 한 줄만 먼저 간단하게 올리고 추후 수정하는 경우들도 보이더군요.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이날 페이스북에 ‘다행입니다. 안심입니다. 자의적이고 부당한 검찰권의 행사가 온 나라를 뒤흔들었습니다. 이제는 제발 민생입니다’라며 무죄를 환영하는 메시지를 올렸는데요. 문 전 대통령은 앞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유죄 때는 입장을 내지 않았죠. 지난 20일엔 자신의 평산책방 페이스북에 고양이와 뽀뽀하는 사진을 올렸다가 “혼자 한가하냐”는 친명 지지자들의 거센 반발을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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