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2위 부자의 ‘뇌물 스캔들’, 인도 모디 정부를 뒤흔들다[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1월 27일 10시 00분


자산이 99조원에 달하는 아시아 2위 부자인 인도인이 있습니다. 바로 가우탐 아다니(Gautam Adani). 인도 아다니 그룹의 창립자이자 회장이죠.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순자산 134조원)과 함께 인도 경제를 대표하는 거물인데요.

이 아다니 회장이 미국 연방 검찰과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의해 기소당했습니다. 혐의는 뇌물 공여와 증권 사기. SEC는 아다니 회장에 대한 소환장을 발부했죠. 그에게 씌워진 혐의는 솔직히 놀랍지 않지만, 이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일지가 궁금합니다. 아다니의 뇌물스캔들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아시아 2위 부자, 인도 자수성가 기업인 가우탐 아다니. AP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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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수성가의 신화. 비결은 친구?
10년 전만 해도 인도 3대 대기업 하면 타타그룹·릴라이언스그룹·비를라 그룹이 꼽혔습니다. 각각 1868년, 1958년, 1857년 설립된 전통 있는 기업들이었죠. 1988년 설립된 아다니 그룹은 그때만 해도 아직 인도에서 10위권 안팎에 머물렀는데요.

이제 아다니는 인도 경제를 얘기할 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3대 대기업이 됐습니다. 항만·광산·공항·발전소·에너지·시멘트·부동산을 포함하는 거대한 제국이죠. 아다니는 인도 최대 민간 전력기업이자 최대 태양광 발전단지 운영업체이고, 인도에서 두 번째로 큰 시멘트 제조사입니다. 아다니의 13개 항구는 인도 컨테이너의 거의 절반을 운송하고, 7개 공항은 매년 9000만명 이상이 이용합니다. 인도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 건설과 인도의 가장 큰 빈민가 재개발을 하는 기업이기도 하죠.

11월 22일 금요일, 인도 구자라트주 최대 도시 아마다바드에서 아다니 그룹이 진행하는 건설공사가 진행 중이다. 아마다바드는 아다니 그룹의 본사가 있는 곳. AP 뉴시스
작은 직물상의 아들 가우탐 아다니는 어떻게 자수성가로 인도 경제를 대표하는 거물로 성장했을까요. 무역업체로 시작된 아다니 그룹이 도약 발판을 마련한 건 1995년. 구자라트주 정부로부터 문드라 항구 운영 계약을 따내면서부터입니다. 당시 문드라는 작고 오래된 적자투성이 항구였습니다. 하지만 아다니 회장은 직관적으로 항만사업이 돈이 된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500명 넘는 개인 토지 소유자와의 협상 끝에 주변 습지와 목초지를 사들이고, 철도와 도로를 연결해 항구를 대폭 확장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 문드라 항구가 이젠 인도 최대의 민영 항구로 성장했죠.

성장 궤도에 오른 아다니 회장은 그의 생애 가장 중요한 인물을 만납니다. 바로 나렌드라 모디, 현 인도 총리이죠. 2001년 모디가 구자라트 주지사로 취임한 뒤, 아다니는 구자라트주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하며 모디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합니다. 이에 모디도 2003년 문드라를 경제특구(SEZ)를 지정하며 아다니 그룹에 날개를 달아줬죠. 20년 넘게 끈끈하게 이어지는 모디-아다니 파트너십이 탄생합니다.

둘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진이 있죠. 2014년 선거 승리로 총리직에 오르게 된 모디가 비행기에 올라타며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는 장면인데요. 그 옆에 ‘adani’ 글자가 또렷하게 보입니다. 선거 기간 내내 모디가 이용했던 아다니의 개인 제트기였죠.
2014년 총선 승리가 확정된 날의 모디 총리 모습. 그가 아다니 개인 제트기에 올라타는 이 사진은 둘의 유착관계를 확인해 주는 증거로 남았다. 아다니 그룹에 비판적인 단체인 아다니워치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이다.
모디 정부에서 아다니의 사업 무대는 한층 넓어지고 확장엔 불이 붙습니다. 국가 계약·허가가 필요한 항구·공항·발전소 같은 인프라 분야에서 아다니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죠. 인프라와 신재생에너지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모디의 경제정책 방향은 아다니 그룹 포트폴리오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졌습니다. 정부 규제도 아다니 편이었죠. 2018년 정부가 공항 소유권 규제를 풀자마자 아다니는 단숨에 7개 공항 운영권을 확보하게 됩니다.

모디의 총리 취임에 맞춰 아다니는 글로벌 확장에도 시동을 겁니다. 스리랑카·말레이시아·방글라데시·베트남 같은 아시아는 물론, 탄자니아·케냐·이스라엘까지. 각종 해외 인프라 개발 사업에 뛰어들었는데요. 인도 언론 스크롤에 따르면 아다니의 이런 글로벌 사업 대부분이 모디 총리가 그 나라를 방문하거나 그 나라 지도자와 만난 지 몇 달 안에 양해각서가 체결됐습니다. 참 절묘한 타이밍이죠.

모디 정부와 아다니 그룹의 유착관계를 두고 인도 야당은 ‘정실 자본주의’라며 비난합니다. 특히 2022년 아다니가 정부 비판 매체였던 NDTV(뉴델리TV)를 적대적으로 인수한 건 정경유착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데요(물론 인수 뒤 NDTV의 논조는 180도 달라짐).

솔직히 이런 정경유착, 한국 경제에서도 꽤 오랫동안 고질적인 문제였어서 그리 놀랍진 않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짐작했던 바죠. 문제는 아다니 그룹이 그동안 너무 빠르게 성장하는 바람에 이제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인도 대표 기업이 되어버렸단 점입니다. 굵직한 인프라 사업을 벌이다 보니, 해외 자금 의존도가 높기도 하고요. 그만큼 보는 눈이 많아진 겁니다.

2년 전 힌덴버그발 충격 있었지만
2022년 말, 무섭게 뛴 아다니 그룹 주가는 천장을 뚫을 기세였습니다. 그룹의 중심인 아다니 엔터프라이즈 주가가 2년 반 만에 30배로 치솟았으니까요. 그 시기 가우탐 아다니 회장은 제프 베저스 아마존 창업자와 세계 2위 부자 자리를 두고 겨룰 정도의 거물이 돼 있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1월, 미국 공매도 투자업체 힌덴버그 리서치의 100쪽짜리 보고서가 아다니 제국을 강타합니다. 아다니 그룹이 “수십년간 뻔뻔한 주가조작과 분식회계에 관여했다”는 내용이었죠. 주가는 폭락했고 한 달 만에 그룹 시총의 76%, 1500억 달러나 날아갔습니다. 인도 증시 전반을 휘청거리게 만든 엄청난 충격이었는데요.
아다니 그룹 중심 기업인 아다니 엔터프라이즈의 최근 5년 주가 흐름. 2022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주가가 2023년 1월 힌덴버그 보고서 발표와 함께 추락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상당 부분을 회복했다가, 이번 미국 검찰 발표로 또 꺾였다. 그래도 5년 주가 상승률이 967%. 구글 금융
아다니 그룹 중심 기업인 아다니 엔터프라이즈의 최근 5년 주가 흐름. 2022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던 주가가 2023년 1월 힌덴버그 보고서 발표와 함께 추락했다. 하지만 이후 다시 상당 부분을 회복했다가, 이번 미국 검찰 발표로 또 꺾였다. 그래도 5년 주가 상승률이 967%. 구글 금융
더 놀라운 건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아다니 그룹은 힌덴버그 주장을 전면 부인하고 413쪽짜리 반박 보고서를 내며 역공을 펼칩니다. 인도 집권여당도 ‘외국 자본의 부당한 간섭’이라며 비판에 열을 올렸죠. 인도 투자자들의 민족주의적 투자+저가 매수 움직임도 가세했습니다. 그 결과 주가는 상당 부분 회복됩니다.

인도증권거래위원회는 이 사건을 조사했지만, 올해 7월 되레 힌덴버그가 보고서를 “고의적·선정적으로 왜곡했다”며 부정거래 혐의로 제소했죠. 아다니에 대해선 아직 아무 조치가 없습니다. 이렇게 잠시 떠들썩했던 힌덴버그와의 싸움은 사실상 아다니의 판정승으로 끝나고 묻히는 듯했습니다.

“아다니 회장을 뇌물 공여로 기소한다”
이제 투자자들 기억에서 힌덴버그 보고서 기억이 희미해지던 지난주. 미국 뉴욕동부 연방 검찰청의 수요일 오후 발표가 바다 건너 인도의 목요일 새벽을 깨웁니다. “인도 대기업 회장과 7명의 고위 기업 임원을 뇌물 공여와 증권사기 혐의로 형사기소한다”는 내용이었죠. 공개된 피고인 명단 맨 위가 가우탐 아다니였습니다.

기소장 내용은 구체적입니다. 아다니그룹의 두 재생에너지 기업(아다니그린에너지와 애저파워글로벌) 최고경영진들은 지난 4년 동안 태양광 에너지 프로젝트를 수주하면서 인도 정부 관리들에게 2억6500만 달러(약 3700억원)의 뇌물을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정부가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전기를 구매해 주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두 기업은 미국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을 때, 회사가 뇌물방지 원칙을 준수한다고 거짓말했습니다.
아다니 그룹이 건설 중인 카브다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전경. 동아일보DB
미국 법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외국기업이 해외에서 뇌물을 주는 건 불법이고요. 미국 투자자들에게 허위 진술로 자금을 모으는 것도 불법입니다. 인도 기업이 인도에서 저지른 뇌물공여 사건이 미국 사법기관 관할인 이유입니다.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유죄판결을 받으면 수년간 감옥에 갇히게 될 겁니다.

아다니 그룹은 쑥대밭이 됐습니다. 이 발표 이후 아다니 엔터프라이즈 주가는 20%, 아다니그린에너지는 30% 넘게 급락했죠. 그룹 계열사는 임박했던 6억 달러 규모 채권 매각을 취소해야 했습니다. 그룹 측은 미국 검찰 기소가 “근거가 없고 우리는 모든 법률을 완벽하게 준수한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했는데요. 하지만 상대는 무려 미국 검찰입니다. 기소의 여파가 전 세계적일 수밖에요.

가장 먼저 움직인 건 케냐입니다. 미국 검찰 발표가 나오자마자 케냐 대통령이 아다니 그룹과 맺었던 공항 확장, 송전설 건설 계획을 전면 취소했죠. “부패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있다면서요.

프랑스 기업 토탈에너지SE는 24일 발표한 성명에서 “결과가 명확해질 때까지 아다니 그룹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겠다”고 밝힙니다. 이 기업은 아다니그린에너지의 주요 주주이자 합작투자 파트너이죠. 아다니 그룹의 해외 자금줄이 막히기 시작한 겁니다.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번 사태가 “그룹 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경고도 내놨죠.

결정권은 트럼프 법무부에?
자, 그럼 이제 어떻게 될까요. 미국 SEC가 아다니 자택으로 소환장을 발부했다는데요. 설마 이대로 아시아 2위 부자가 미국에서 체포되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은 작아 보입니다.

아다니 회장은 트럼프 당선 직후 “깨지지 않는 강인함의 화신”이라며 트럼프를 칭송하는 글을 X에 올리기도 했다. AP 뉴시스
일단 아다니가 제 발로 미국 검찰에 출두할 리야 없고요. 남은 방법은 미국 법무부가 범죄인 인도 절차에 돌입하는 건데요. 물론 인도 정부가 설마 순순히 아다니를 넘겨주지도 않겠지만, 더 중요한 건 지금 미국이 대통령 교체기라는 점입니다. 아다니의 인도를 요구하느냐 마느냐, 기소를 유지하느냐 마느냐 결정이 내년 출범할 트럼프의 법무부에 달려있죠.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 입장에선 이 얼마나 좋은 협상카드인가요. 아마도 인도와 거래할 기회로 볼 겁니다. 안 그래도 인도는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엔 전략적으로 중요한 국가니까요. 아다니 회장도 이런 분위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2주 전 그는 X를 통해 “미국의 에너지 안보와 인프라 프로젝트에 100억 달러를 투자하고 최대 1만5000개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공개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웬 깜짝 발표인가 싶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미국 검찰 발표에 앞서 선수 친 거였죠. 미국 싱크탱크 윌슨센터의 남아시아 연구소 소장인 마이클 쿠겔만은 이렇게 내다봅니다. “트럼프는 아다니를 동맹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트럼프를 칭찬하고 모디와 친하며 미국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약속한 동료 사업가니까요.”

물론 아다니 그룹의 해외 사업 야망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해외 자금 조달에서도 차질이 빚어질 수 있죠. 그렇다 해도 아다니가 인도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당장 크게 달라지진 않을 겁니다. 인도 경제의 너무 많은 부분이 아다니가 진행 중인 각종 개발 프로젝트에 달려있기 때문이죠. 이미 인도에서 아다니는 ‘실패하기엔 너무 큰’ 존재입니다.

11월 22일 인도 콜카타에서 야당인 인도국민회의당 지지자들이 인도 억만장자 가우탐 아다니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뉴시스
더 크게 흔들리는 건 경제보단 정치입니다. 이미 야권지도자 라훌 간디는 “총리가 부패에 연루돼 있다”며 모디 총리를 맹공격하고 나섰고요. 25일에도 야당 지지자들은 뉴델리 국회 앞에서 “모디와 아다니는 하나”, “모디의 우정이 나라를 거덜 낸다”며 항의 시위를 벌였습니다. 쉽사리 잦아들 사건이 아닌 듯한데요.

기업친화적 정책을 기반으로 한 인도 경제의 고도성장은 모디 총리의 가장 큰 정치적 자산으로 꼽혀왔죠. 하지만 이제 그 성장의 밝음에 가려졌던 부패와 정경유착의 짙은 그림자가 그를 덮치고 있습니다. 모디 총리는 어떻게 정치적 난관을 돌파할까요. 모디와 아다니의 20년 우정이 이제 정치적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By.딥다이브

가우탐 아다니 회장은 두차례 죽을 뻔한 위기를 넘긴 인물로도 유명하죠. 1998년엔 차에 탄 채 무장 괴한에 납치됐었고, 2008년엔 뭄바이 호텔에서 테러리스트의 인질로 잡혔었는데요. 어쩌면 이번이 그의 기업인 인생에 있어선 가장 큰 위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아시아 2위 부자, 아다니 회장은 창업 30여년 만에 경제계 거물로 성장했습니다. 그의 공격적인 기업 확장 배경엔 지난 20여년 동안 모디 총리가 있었습니다.

-무섭게 성장한 아다니 그룹은 2023년 1월 공매도 세력 힌덴버드 리서치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비호와 인도 투자자의 지지 속에 아다니는 큰 충격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엔 미국 검찰이 나섰습니다. 뇌물 공여 혐의로 아다니 회장을 기소하며 소환장을 발부했습니다. 다만 그가 체포되는 일이 실제로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이는데요. 대신 아다니 그룹의 거침 없는 해외 확장에 제동이 걸리고, 공고했던 모디-아다니 파트너십에 균열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이 기사는 26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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