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언론의 한국 보도는 때때로 바깥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는 창을 열어준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도 그랬다. 긴급 상황을 사실 위주로 다루던 외신 보도에서 비판적 견해가 늘어났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4일 “윤 대통령은 즉각 사임하라”면서 “윤 대통령은 한국 같은 주요국 대통령직은 물론이고 어떤 자리에도 안 맞다(unfit)는 걸 입증했다”는 주장이 담긴 익명의 칼럼을 실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사의 모든 글에는 회사의 집단지성이 담겼다는 이유로 글쓴이 이름을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계엄 선포를 “미국의 (한미일) 태평양 동맹을 위협할 만한 행동”이라고 평가했다. 그런 뒤 “윤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 노래를 부르던 시절은 갔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자사 칼럼니스트 3인의 대화 형식의 글을 실었다. 거기에는 계엄 선포를 “완전한 오판”으로 평가하고, “대통령은 누구와 상의했고, 누구의 조언을 들었나. 그것이 1만 달러짜리 질문”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한국의 국격과 민주주의 성숙도에 비춰볼 때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는 뜻이었다.
▷언론사의 공식 견해인 사설도 여럿 등장했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첫날 “민주국가에서 있어선 안 될 사태가 한국서 벌어졌다”는 사설을 쓴 데 이어 이튿날에도 “윤 대통령은 북한과 긴장이 지속되는 한반도 정세에 해를 끼칠 수 있는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뻔뻔하고도, 위헌적으로 보이는 (민주주의) 전복 시도가 한국 민주주의를 진짜 위협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힘들게 이룬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험에 빠뜨린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언론뿐만 아니라 한반도 정책을 다루는 미국의 싱크탱크도 의견을 표명했다. 워싱턴 소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윤 대통령의 종말(demise)을 부를 수 있다”고 예측했고, 스팀슨센터는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평가했다.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례적으로 이번 일을 “심각한 오판”이라고 비판한 것과도 맥을 같이하는 견해들이다. 미국은 한국을 일본과 함께 ‘권위주의 중국’의 팽창을 막는 핵심 동맹으로 여긴다는 점에서, 안보 전문가들의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국 가운데 경제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성숙시킨 유일한 국가다. 미 블룸버그통신이 “민주주의의 등대로 여겨졌던 한국에서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묘사한 것도 그런 이유다. 대통령 한 사람의 독단이 오랜 시간 쌓아올린 한국의 국격에 손상을 입혔다는 것은 외신의 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법을 마련하고, 이것이 외신을 통해 보도되는 것을 지켜보는 방법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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