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전설’ 유남규 딸 유예린 “이제 언니들 이기고 싶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8일 15시 19분


3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만난 유예린이 백핸드 푸시 훈련읋 하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유예린(16·화성도시공사 유소년팀)은 지난달 스웨덴 헬싱보리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19세 이하(U-19) 여자 단체전에서 한국의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한국은 4강에서 중국을 만났지만 유예린이 첫 번째와 마지막 다섯 번째 단식을 모두 잡아냈다. 한국은 결승에서 대만에 3-1 완승을 거뒀다. 세계청소년선수권 U-19 여자 단체전에서 중국, 일본이 아닌 국가가 우승한 건 이 대회가 시작된 2003년 이후 2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 역사를 쓴 탁구 청소년 대표팀이 귀국한 1일 인천공항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3일 훈
련을 시작한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만난 유예린은 “그렇게 많은 카메라를 본 건 처음이라 당황했다. 그래도 잘해서 신경 써주시는 거니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중국 킬러’로 떠오른 유예린은 “(국제대회) 단체전에서 늘 3등을 했었다. 이번에도 4강에서 중국을 만나길래 ‘또 지겠구나’ 했다. 그런데 부담이 없으니 오히려 볼이 잘 들어갔다”며 “마지막 단식 때도 지면 본전이고 이기면 대단한 거니 자신 있게 했다. 질 것 같다는 부담이 없었다”고 했다.

유예린의 아버지는 1988 서울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56) 이다. 아버지팀 소속 남자 선수들과 올해 훈련을 종종 함께했던 유예린은 “오빠들한테 ‘센 볼’을 많이 받아봤더니 대회에서 중국 선수들 볼을 받는 게 생각만큼 어렵지 않았다”며 “세계의 잘하는 선수들을 상대로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2024 국제탁구연맹(ITTF)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19세 이하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돌아온 유예린(왼쪽)이 1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버지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에게 축하를 받은 뒤 취재진을 향해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올 2월 중학교를 졸업한 유예린은 일반고 대신 온라인 수업을 주말에 몰아서 들을 수 있는 방송통신고에 진학했다. 중학생 시절에는 오전수업을 마친 뒤 탁구훈련을 했던 유예린은 “실업팀 언니들이랑 똑같이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훈련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 유예린은 정작 탁구를 원 없이 친 올해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가장 많았다”고 돌아봤다.

“대회에 많이 나갔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동생들에게 진 적도 있었다. 안 좋은 결과가 나올 때마다 자신감이 많이 떨어졌다. 연습은 더 많이 하는데 결과가 안 좋으니….”

하지만 아빠의 조언에 마음을 다잡았다. 유 감독은 “예린이가 올해 실업팀 에이스 언니들과 경기를 하면서 많이 지니 유독 힘들어 했다. 예전에는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 다그쳤지만 이번에는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대신 ‘계속하려면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각서를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유예린은 “연습한 게 하루아침에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아빠는 600일 넘게 새벽, 야간운동을 한 번도 안 쉬고 노력해 올림픽에서 1등을 했다더라”며 “저는 그렇게 운동한 게 아직 1년이 안 된다. 뭐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 믿으니 요즘에는 힘들어도 끝까지 하게된다”고 했다.

유예린(가운데)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대회 우승 후 아버지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왼쪽), 어머니 윤영실 씨와 함께 남긴 기념사진. 유남규 감독 제공
유예린(가운데)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한 대회 우승 후 아버지 유남규 한국거래소 감독(왼쪽), 어머니 윤영실 씨와 함께 남긴 기념사진. 유남규 감독 제공

유 감독은 여전히 탁구대에 서면 “라떼는~”으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유예린은 “하도 많이 들어서 제가 많이 참고 있다”며 웃었다. 티격태격하지만 유예린이 훈련 파트너가 필요할 때 ‘SOS’를 치는 사람은 늘 아빠다. 유예린은 “팀 훈련이 없는 일요일은 늘 아빠랑 연습한다. 가끔 평일에도 부족하다 싶으면 ‘야간운동 한 번만 같이 해달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그럴 때마다 아빠가 저녁도 안 드시고 연습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했다.

월드테이블테니스(WTT) 15세, 17세, 19세 이하 컨텐더 대회 단식에서 모두 정상을 밟으며 성장한 유예린은 이제 성인 대표팀에서 활약할 날을 꿈꾸고 있다. 인천=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유예린은 “17일부터 전국남녀종합탁구선수권이 열린다. 국제 대회 연령별 대회에서는 다 우승 해봤지만 아직 국내 대회에서 언니들을 상대로는 좋은 성적을 내본 적이 없다. 올해는 언니들을 이기고 4강권 성적을 내고 싶다”고 했다. 현재 국가대표 상비군인 유예린은 “성인이 되기 전 1군 대표가 돼 (2026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 게임,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메달에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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