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활용부터 시작된 ‘무인 무기’
BC 4세기 마가다에 코끼리 부대… 蘇, 폭탄 매달고 전차 뛰어드는 개
美는 비둘기 유도 폭탄-방화 박쥐… 우크라전 ‘로봇 vs 로봇’ 첫 대결
러시아의 지뢰 매설 무인궤도차… 우크라가 보낸 드론 폭탄이 파괴
《2024년 3월 29일, 도네츠크 북쪽에 위치한 아우디이우카에서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군 일부를 식별했다. 전쟁 중인 두 나라 군대가 마주치는 건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날의 조우가 특별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군인 간 전투를 대신하는 무인 무기 체계끼리 맞선 최초의 역사적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즉, 이날은 로봇 대 로봇의 첫 번째 대결이었다. 전쟁은 유사 이래 인간의 고유 행위였다. 동물 사이의 생존 경쟁은 전쟁은 아니었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했다. 인간은 인간의 전쟁에서 동물에게 보조 역할을 맡겼다. 가령 사람을 태우고도 사람보다 몇 배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은 기병에게 필수였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는 6000마리의 코끼리 부대가 있는 마가다 원정에서 휘하 군대의 항명으로 화살 한 발 못 쏘고 물러났다. 마가다는 오늘날 인도 서부에 위치했던 나라였다.》
인간의 전쟁에 끌려온 동물은 말과 코끼리로 그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935년 소련은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이반 파블로프의 조건 반사 원리로 훈련된 개로 부대를 편성했다. 개들의 임무는 적군 전차 밑으로 뛰어드는 거였다. 개에게 매단 10kg의 폭탄으로 전차를 파괴하려는 계획이었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대전차 개는 실전에 투입되었다. 전과는 신통치 않았다. 디젤 엔진이 달린 소련 전차로 훈련된 탓에 개들은 휘발유 엔진이 달린 독일 전차가 아니라 소련 전차 밑으로 뛰어들었다. 또 총포 소리에 놀란 나머지 사육병이 있는 참호로 되돌아와 터지기도 했다.
소련에 대전차 개가 있다면 미국에는 비둘기 유도 폭탄과 방화 박쥐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하버드대의 버러스 스키너는 폭탄을 실은 글라이더에 태운 비둘기가 화면에 비치는 목표물을 쪼면 글라이더가 목표물을 향하게 비둘기를 훈련했다. 치과 의사인 라이틀 애덤스가 백악관에 편지를 보내면서 시작된 방화 박쥐는 박쥐에 달아 놓은 시한 인화 물질로 목조 건물인 도쿄의 가정집을 불태우려는 시도였다.
말과 개는 목표는 같았지만 전쟁에 기여하는 원리는 달랐다. 말은 인간의 달리기보다 빠른 속도와 돌진할 때 나오는 큰 운동량 때문에 전쟁에 사용되었다. 반면, 개는 잘만 되면 인간보다 싼값으로 전차 파괴가 가능했다. 즉, 무기 분석에 사용하는 경제학의 비용-효과 분석 관점에서 전자가 전투의 효과를 높이는 쪽이라면 후자는 비용을 낮추는 쪽이었다.
비용 관점에서 효과적인 수단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노예였다. 인류 역사에서 노예가 사라진 건 채 200년도 되지 않았다. 가축과 비슷하게 취급되던 노예는 사고파는 대상이었다. 또 전쟁을 통해 이민족을 정복하면 노예를 얻을 수 있었다. 근세 이전까지 전쟁의 명백한 두 가지 목표물은 영토, 그리고 노예로 잡아갈 사람이었다. 일례로, 왜는 임진왜란 때 결국 영토는 얻지 못했지만 대신 많은 조선인 도공을 납치했다.
고대 로마는 그렇게 잡은 노예 일부를 구경거리로 삼았다. 노예로 하여금 콜로세움 같은 원형 투기장에서 맹수와 싸우거나 혹은 저희끼리 칼 들고 싸우게 한 거였다. 그런 노예, 즉 검투사들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가령 마케도니아 서쪽의 트라키아 태생인 스파르타쿠스는 기원전 73년 봉기했다. 한때 7만 명에 달하는 병력으로 선전하던 스파르타쿠스의 부대는 결국 2년 후 마르쿠스 크라수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에 전멸됐다.
로마는 기본적으로 군율과 착취로 지탱되는 국가였다. 일례로 크라수스는 스파르타쿠스 상대의 전투가 잘 풀리지 않자 제비를 뽑아 열 명당 한 명씩 무작위로 죽이는 이른바 데키마티오를 휘하 레기온에 시행했다. 또 극소수의 귀족이 소유한 광대한 농장은 로마 전체 인구의 최소 25%로 평가되는 노예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았다. 즉, 로마의 경제는 군대가 새로운 영토와 노예를 계속해서 획득해야 돌아가는 일종의 다단계 구조였다.
9세기 아라비아에서 새로운 시도가 나타났다. 다른 지역에서 잡아온 노예로 아예 군대를 편성하는 거였다. 맘루크는 아라비아어로 노예를 뜻했다. 노예인 탓에 주인의 군사적 성공 외에 다른 희망이 없었던 맘루크 군대는 막강한 전투력으로 명성을 떨쳤다. 예를 들어, 카자흐스탄 태생의 튀르키예인 맘루크 바이바르스는 1250년 알만수라 전투에서 성당기사단을 섬멸했다.
맘루크의 전투력은 그 주인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1258년 칭기즈칸의 손자 훌라구 칸의 몽골군이 바그다드를 함락하자 마음이 급해진 이집트의 술탄 쿠투즈는 바이바르스를 불러들였다. 1260년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70km 떨어진 아인잘루트에서 이집트군은 몽골군에 승전했다. 그 직후 바이바르스는 쿠투즈를 암살하고 스스로 술탄이 되었다.
배신하지 않으면서 값싸게 구할 수 있는 노예는 모든 노예 주인의 꿈이었다. 1920년 체코의 카렐 차페크는 ‘로숨의 범용 로보티’라는 희곡을 썼다. 로보티는 체코어로 부역 및 농노를 뜻하는 단어 로보타를 가지고 만든 단어였다. 로보티는 인간처럼 생겼지만 시키는 일만 하도록 로숨이 인공적으로 생산한 존재였다. 로봇이라는 영어 단어는 로보티에서 유래했다. 그리고 노예인 로보티는 희곡에서 반란을 일으켜 주인인 인간을 거의 몰살했다.
시간이 흘러 무선 혹은 원격으로 조종되는 이른바 무인 무기 체계가 등장했다. 판단과 결정은 인간의 두뇌가 내리기에 스스로는 망가져도 그만인 꿈의 노예였다. 물론 무인 무기 체계가 실현되기 이전에도 말 잘 듣는 노예를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 있었다. 가령 1898년 니콜라 테슬라는 텔레오토마톤이라는 원격조종 배를 만들어 시연해 보였다. 오토마톤은 로봇을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였다. 오늘날 어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텔레오토마톤을 알아보기에는 당시 미국 해군의 수준이 높지 않았다.
무인 무기 체계의 개발 과정은 무혈의 과정은 아니었다. 일례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4년 8월 12일 미국 해군은 작전 앤빌을 개시했다. 앤빌은 9.6t짜리 폭탄이 실린 폭격기 B-24 리버레이터를 무선으로 조종해 프랑스 미모예크의 독일군 V-2 로켓 개발 기지에 직격하는 작전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드론으로 삼은 B-24를 이륙시킬 방법이 없어 두 명의 조종사가 일단 올라타 이륙한 후 적정 고도에서 낙하산으로 탈출할 생각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드론 B-24는 예정된 고도에 도달하기 전에 공중에서 폭발했다. 그렇게 죽은 두 명의 미국 해군 대위 중 한 명이 바로 나중의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친형 조지프 케네디 주니어였다.
요즘 기술로는 군인이 이륙을 위해 드론에 올라탈 이유가 없다. 금년 3월 아우디이우카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식별한 러시아군은 30mm 자동 유탄 발사기인 AGS-17로 무장하고 대전차 지뢰 TM-62를 매설할 수 있는 두 대의 무인 궤도 차량이었다. 이들 러시아 육상 드론에 맞선 건 자살 폭탄 공격을 할 수 있는 1인칭 시점 드론, 이른바 가미카제 드론이었다. 두 대의 무인 궤도 차량은 폭탄을 빼면 제작 비용이 50만 원 정도인 가미카제 드론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들 드론이 그저 원격조종되는 무기일 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로봇은 아니라고 위안을 삼을지도 모르겠다. 헛된 일이다. 인공지능이 부여된 튀르키예군의 공중 드론은 2020년 리비아 내전에서 칼리파 하프타르의 리비아국민군을 인간의 명령 없이 공격했다. 또 2022년 우크라이나군의 미그 29는 이란이 개발한 공중 드론과 공중전을 벌이다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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