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연애 어리석다 한 니체도, “출산은 뛰어난 사람 만드는 일”
상대 배우자 공경하라고 당부
헤겔 법철학의 ‘인륜 3단계’… 가족-시민사회-국가로 나눠
사회 원리 성립시키는 출산 강조
《철학자들이 보는 결혼과 출산
우리나라가 처한 가장 큰 위기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출산율 저하다.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자의 수도 인구가 줄면 낮아질 것이다. 일론 머스크도 “출산율 낮은 한국의 인구는 지금의 3분의 1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은 전 세계 국가 중 ‘인구소멸 위험 국가’라는 부끄러운 타이틀을 달고 있다. 태어나는 아기가 줄어든다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없다. 후손이 없다면 한국 자체가 정말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독일 철학자 헤겔은 ‘법철학’ 3부에서 인륜의 단계를 가족, 시민사회, 국가로 나누고 있다. 가족은 사랑을 통해 맺어진 공동체다. 가족의 사랑은 법이나 이성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고유한 특성이 있다. 우리의 전통과도 유사한 헤겔의 가족을 성립시키는 조건은 결혼이다.
결혼은 세 가지 계기를 갖는다. 첫째는 성적 관계, 둘째는 남녀의 자유로운 의지적 결합, 셋째는 애정이다. 하나의 인격체인 가족을 구성하는 결혼은 일부일처제를 기본 형태로 하는데, 중요한 점은 결혼으로 이뤄진 인륜적 애정이 자녀 출생에 의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사실이다.
부부는 자녀를 통해 서로 하나 됨을 확인한다. 친자관계를 형성하면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윤리적 의무를 갖게 되고 자녀는 양육 받을 권리를 자연스레 획득한다. 자녀가 성년이 되어 결혼해 분가하면 가족①에서 가족②가 생기면서 가족과는 다른 시민사회의 생활 원리가 성립한다. 만약 자녀가 혼인하여 분가하지 않거나, 분가하더라도 자녀가 생기지 않으면 가족은 ①뿐으로, 사회와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
많은 사람이 결혼을 거부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혼이 행복이 아닌 불행에 이르는 길이라 믿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의 부양과 자녀 교육, 내 집 마련 등 결혼과 함께 의무와 책임이 커지기 때문이다.
비싼 집값과 물가, 일자리 등 경제적인 비용과 구속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감안하면 독신이 좋다.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 철학자 가운데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 니체는 루 살로메라는 여인을 짝사랑했지만 결국 결혼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다. 결혼을 ‘안’ 한 것이 아니라 ‘못’ 한 것이다.
니체는 연애와 결혼을 둘 다 어리석은 짓이라고 본다. 눈먼 사랑은 이성의 작용이 마비돼야 가능하므로 연애든 사랑이든 모두 어리석음의 산물이다. 인간은 결혼이라는 ‘긴 어리석음’으로 ‘한때의 어리석음’인 연애를 끝낸다.
그러나 출산은 어리석은 짓이 아니다. 니체에 따르면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을 통해 더 나은 아이를 낳기 위한 목적을 지닌다. 따라서 결혼하기 전에 자신에게 한 아이를 원할 자격이 있는지 우선 물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혼인은 당사자들보다 더 뛰어난 사람 하나를 산출하기 위해 짝을 이루려는 두 사람의 의지’라고 불린다. 생식의 목적은 고상한 신체를 창조하는 것, 다시 말해 ‘최초의 운동, 제힘으로 돌아가는 바퀴를 창조’하는 일이다. 스스로 구르는 바퀴는 초인에 비유된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자율적인 주체가 바로 우리의 후손인 아이다. 장차 다가올 미래는 아이의 생명에서 시작된다.
연애할 때 성교는 순간의 쾌락을 위한 도구일 수 있지만 결혼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다. 따라서 결혼이 더 나은 생명을 창조하려는 의지라면, 상대 배우자에게 ‘서로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또 결혼해 아이를 낳으려면 위대한 사랑을 해야 한다. 사랑으로 원하는 것을 행하려면 먼저 원할 줄 알아야 하고, 이웃을 나 자신처럼 사랑하려면 앞서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랑의 조건에는 욕망 자체보다 자신의 욕망을 인식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며 이웃 사랑보다 자기 사랑이 먼저다.
결혼은 개인이 선택할 자유이지 국가가 강요할 의무가 아니다. 따라서 국가를 근간으로 한 헤겔의 사회철학이나 초인을 산출하려는 다소 위험한 니체의 우생학이 우리 한국의 출산율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없다면 한국의 미래가 없어진다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성에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남녀가 호감을 갖고 눈빛이 마주칠 때 미래 아이의 상이 이미 그려진다고 쇼펜하우어는 말한다. 물건을 구입할 때보다 결혼 상대를 구할 때 유달리 엄격하고 까다로운 이유는 사랑이 현재의 삶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배우자의 외모와 성격, 지성 등을 그렇게 따질 필요가 없다. 각자의 기준에 들어맞아 생기는 작은 호감이 사랑의 불꽃으로 타오르면 자연스레 결혼과 출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니체의 조언을 고려하면 광기를 빼고 이것저것 조건을 따지는 이성만으로 타인을 깊이 사랑하는 일은 쉽지 않다. 미쳐야 진짜 사랑할 수 있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아이를 낳는 일은 기대 이상의 현명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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