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 붕괴로 임무 수행 불가능
계엄 사태로 고통받은 국민께 죄송
이재명 재판 타이머 멈추지 않았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16일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두고 지도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상황에도 “직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버텼던 한 대표는 선출직 최고위원 5명 전원이 사퇴하며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이 불가피해진 데 따른 것이다. 이에 한동훈 지도부는 7·23 전당대회를 통해 출범한 지 147일 만에 와해됐다. 국민의힘은 비대위 구성에 대한 논의에 본격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30분경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고위원 사퇴로 최고위가 붕괴돼 더이상 당 대표로서 정상적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며 “국민의힘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미리 준비한 종이를 꺼내 약 5분간 사퇴의 변을 전한 한 대표는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받은 모든 국민께 진심으로 죄송하고, 탄핵으로 마음 아프신 지지자 분들께 많이 죄송하다”며 두 차례 고개를 숙였다.
한 대표는 “(국민과 지지자의) 그런 마음을 생각하면서 탄핵이 아닌 이 나라의 더 나은 길을 찾아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그러지 못했다”며 “모두 제가 부족한 탓이다. 미안하다”고 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3일 밤 당 대표와 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제일 먼저 앞장서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의 계엄을 막아냈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킨 것”이라며 “그것이 진짜 보수의 정신이고 제가 사랑하는 국민의힘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최근 대국민 담화에서 비상계엄 선포 이유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극우 성향 유튜버들이 주장해 왔던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고 있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것이다. 한 대표를 이를 겨냥해 “우리가 극단주의자에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 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며 “그날 계엄을 해제하지 못했다면 다음날 거리로 나온 시민과 군인 사이 유혈 사태가 벌어졌을 수 있다”고 했다.
한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 의사를 밝힌 뒤 탄핵안 2차 표결에서 이탈표가 다수 나온 것을 두고 당내에선 책임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러나 한 대표는 표결 직후 열린 의원총회에서 “제가 탄핵안에 투표했습니까. 제가 계엄했습니까”라고 말했고, 이는 적지 않은 의원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한 대표는 탄핵 찬성으로 선회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군대를 동원한 계엄을 옹호한 것처럼 오해 받는 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낸 위대한 나라와 국민, 보수 정신을, 우리 당의 빛나는 성취를 배신하는 것”이라며 “지지자를 생각하면 고통스럽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향해선 비판의 목소리를 남겼다. 한 대표는 “계엄이 잘못이라고 해서 민주당과 이 대표의 폭주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 대표 재판 타이머는 멈추지 않고 가고 있다.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 대표는 지난달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윤 대통령의 탄핵으로 조기 대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를 꼬집은 것이다.
한 대표는 국민과 당원, 국민의힘 당직자 등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그는 “나라가 잘 됐으면 좋겠다”며 90도 인사를 한 뒤 퇴장했다. 4월 비대위원장에서 사퇴할 때와 달리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 않았다.
한 대표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8개월 만에 두 번째 퇴장을 맞게 됐다. 4·10 총선 패배에 책임을 지고 비대위원장 직을 내려놓았던 한 대표는 7·23 전당대회에서 62.84%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집권 여당 대표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윤 대통령 탄핵을 두고 찬성 소수파로 몰리며 당선 147일 만에 내쫓기는 모양새로 직을 내려놓게 됐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5번째 비대위로 전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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