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음모론에 잘 빠지는 성격은? 음모론의 심리학[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12월 18일 10시 00분


왜 사람들은 음모론에 휘둘릴까요. 음모론은 어떻게 열혈 추종 세력을 만들고 현실을 혼란스럽게 만들까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내 머릿속에 맴돌던 질문입니다.

사실 음모론은 늘 있었습니다. 6·25 북침설, KAL기 폭파범 김현희 가짜설이 그렇고요.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과 2014년 세월호 참사 역시 음모론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부정선거론은 정치 이념을 가리지 않고, 2012년 대선(박근혜 당선)과 2020년·2024년 총선(더불어민주당 1당) 모두에서 뜨겁게 타올랐죠.

이런 음모론, 그동안은 그냥 무시해 왔는데요. 이번 사태를 보며 음모론이 아주 무서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게 이토록 중요한 일이라면, 음모론을 좀 알아야겠더라고요. 그래서 ‘왜 멀쩡해 보였던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나’에 대한 답을 책에서 찾아봤습니다. 한국에선 올해 10월 출간된 댄 애리얼리 듀크대학교 교수의 신간 ‘미스빌리프(Misbelief)’를 바탕으로 들여다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일인 14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탄핵 반대 집회를 하고 있다. 이들은 2020년과 2024년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을 펼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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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나 음모론은 있다
당신은 음모론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전 세계적으로 상당한 추종자를 가진 음모론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이런 겁니다.

-미국의 달 착륙은 NASA가 영화 제작 스튜디오에서 연출한 가짜였다.
-세계 각국 정부는 외계 생명체의 증거를 은폐한다.
-몇몇 유명인의 죽음 관련 이야기는 거짓말이다. 다이애나 왕세자비, 마틴 루터 킹, 모차르트, 존 레넌, 존 F. 케네디 등.
-기후위기는 없다. 지구온난화 관련 과학은 이념적·금전적 이유로 만들어졌다.
-비밀결사 일루미나티(또는 프리메이슨, 유대인)가 전 세계를 주무르고 있다.
-코로나19는 애초에 중국(또는 미국)의 어느 실험실에서 생물무기로 개발됐다.

‘달착륙 조작설’은 수십년 째 이어지는 대표적인 음모론이다. 동아일보DB  
‘달착륙 조작설’은 수십년 째 이어지는 대표적인 음모론이다. 동아일보DB  
어떤가요. 이 중 몇 가지는 ‘정말 그런가?’라며 솔깃한 적 있는 이야기 아닌가요. 실제 영화나 소설에서 차용할 정도로 흥미진진한 스토리이기도 하고요.

음모론은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나타났습니다. 서기 68년 악명 높은 폭군이었던 로마 황제 네로가 사망했을 때도, 일부는 그가 여전히 살아있고 왕좌를 되찾으려 한다고 믿었죠. 그 뒤로 몇 년 동안 ‘내가 네로’라고 주장하는 사기꾼이 로마에 여럿 나타났을 정도입니다.

세상엔 별의별 음모론이 다 있고, 음모론은 끊임없이 탄생하죠. 음모론은 이념을 가리지 않습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진보와 보수, 모두 거짓정보를 소비하고 퍼뜨리는데요. 특히 양 진영의 극단적 집단일수록 더 심하죠. 그리고 두 극단의 음모론은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한국의 부정선거론(2012년 대선엔 김어준, 2024년 총선에선 전광훈)이 그렇고요. 미국에선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두고는 현대의학을 회피하는 극진보주의자와 정부를 불신하는 극보수주의자가 모두 음모론을 펼쳤죠. 음모론은 시대나 지역, 이념까지 뛰어넘어 나타난다는 점에서 인간 자체의 특성(또는 취약성)에 기인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음모론의 심리학적 해부
아마 이렇게 반문하실 겁니다. ‘난 음모론 따윈 절대 안 믿는데? 난 음모론자들과는 다르다고!’ 과연 그럴까요.

듀크대에서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을 가르치는 스타 교수 댄 에리얼리는 2020년 7월 자신이 ‘코로나19 사기극’의 수괴라는 음모론을 접하게 됩니다. 그가 비밀결사 일루미나티의 일원이고, 빌 게이츠와 공모해서 세계 지배를 위해 코로나19라는 가짜 전염병을 만들어냈단 주장이었죠. 음모론 추종자들은 그를 히틀러에 비유하며 ‘죽여야 한다’고 증오를 쏟아냅니다. 그가 적극적으로 반박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죠.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행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행동경제학적으로 효과적인 정부의 대응 방안을 조언했고, 이것이 음모론자들 공격의 빌미가 됐다. 그는 10대 시절 실험 중 일어난 폭발사고로 큰 화상을 입었고, 얼굴의 반쪽만 수염이 난다. 댄 애리얼리 홈페이지
댄 애리얼리 듀크대 교수는 행동경제학 분야의 권위자로 꼽힌다. 그는 코로나 팬데믹 당시 행동경제학적으로 효과적인 정부의 대응 방안을 조언했고, 이것이 음모론자들 공격의 빌미가 됐다. 그는 10대 시절 실험 중 일어난 폭발사고로 큰 화상을 입었고, 얼굴의 반쪽만 수염이 난다. 댄 애리얼리 홈페이지
그래서 애리얼리는 그들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마침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한 뒤 미국에서 ‘부정선거 음모론’이 퍼지고, 급기야 이듬해 초 의회의사당 난입사건까지 벌어진 시기였습니다. 그는 왜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지 알기 위해 그들에게 연락해서 만나고, 이야기를 들었죠. 그는 자신을 살인마로 묘사했던 그 음모론자들과 ‘친구 비슷하게’ 됐고요. 이를 통해 그가 다다른 결론은 이겁니다.

1.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감정적 취약성과 인지적 한계가 음모론의 배경이다.
2. 하지만 특별히 더 음모론에 깊이 빠지게 만드는 성격과 상황이 있다.
3. 음모론이 판치지 않게 하려면, 음모론자를 ‘미쳤다’고 조롱하거나 무시하기보다는 그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해와 공감’이라는 키워드를 보고 솔직히 좀 놀랐는데요(과연 그게 가능할까요?). 우리가 사이비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그래도 ‘뭔가 그렇게 된 사정이 있겠지’라고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은 있잖아요. 음모론자도 이와 비슷하게 봐달라는 게 애리얼리 교수의 주장입니다.

통제감 회복과 인지적 편견
그럼 왜 인간은 음모론에 끌릴까요. 예로부터 인간은 악당을 사랑합니다. 그리스 신화부터 어벤져스 영화까지, 악당의 존재는 세상을 단순하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니까요. 실제 세상은 너무 복잡해서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으니 불안합니다. 하지만 모든 잘못된 것의 원흉인 악당이 생기는 순간, 뿌옇고 모호했던 회색빛이 걷히고 세상은 흑 또는 백으로 명확해지죠. ‘이제야 이 사건의 전모를 온전하게 파악했다’며 안도하고 통제감을 되찾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음모론이 세월을 뛰어넘어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 느낌은 일시적으로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죠.

하지만 악당은 찾아도 진짜 현실의 문제(혼란·공포·불안 등)가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은 다시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 그 음모론에 더 집착합니다. 관련된 동영상과 자료를 끊임없이 찾으며 점점 깊이 빠져들죠. 집착이 만드는 파괴적 순환입니다.

음모론은 안도감을 줄 뿐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합니다. ‘능동적인 게임’이라 할 수 있죠. 그저 정보를 흡수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정보하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악당을 제압하는 헌신적이고 중요한 존재’로 스스로를 느낄 수 있습니다.

2021년 1월 미국 의회 의사당에 난입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모습. 이들은 2020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음모론을 믿었다. 동아일보DB
이렇게 보면 음모론은 마치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는 셈인데요. 다만 음모론자들은 음모론을 정말 진실이라고 확신한다는 게 마약과는 다른 특이한 점이죠. 왜 수많은 과학적 증거와 반론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들은 허황한 주장을 굳건히 믿을까요.

이런 인지적 편견과 관련한 심리학적 연구는 사실 차고 넘칩니다. 몇 가지를 꼽자면.

확증편향 : 사람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대 증거는 쉽게 무시해 버리고, 기존 신념을 합리화하죠. 따라서 같은 사람이어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가 패배하면 ‘개표기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승리하면 ‘민주적 선거’라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면 되니까요.

동기화된 추론 : 또 사람들은 원하는 결론에 들어맞도록 현실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인지과학적 용어로는 ‘동기가 부여된 추론’을 하는 건데요.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하루에도 몇번 거짓말을 했지만 지지자들은 그걸 신경 쓰지 않았죠. 왜? ‘그가 이런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걸 보면 그는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사안을 밀어붙이는 데 필요한 일은 뭐든 다 할 거야’라고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대의를 위해서라면 약간의 과장과 왜곡은 상관없다는 인식이죠.

더닝-크루거 효과 : 무식하면 용감한 법입니다. 어떤 사안을 너무 잘 알 때보다 그저 조금만 알 때,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히 많이 안다고 착각하죠. 자신의 지식을 너무 과신하다 보니 위험한 짓도 서슴없이 합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거죠. 가짜뉴스와 관련한 대규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건의 실체를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그와 관련한 가짜뉴스에 쉽게 넘어갈 뿐 아니라, 이를 SNS에서 더 많이 퍼뜨립니다.

미신과 음모론의 상관관계
자신이 ‘외계인에 의해 납치됐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위눌림’이라고 흔히 얘기하는 수면마비 현상을 외계인 납치로 착각하는 건데요. 이들을 정신 감정해 보면 정상으로 나오죠.

실험연구 결과, 이른바 ‘외계인 피랍자’는 뚜렷한 성격적 특징을 보였습니다. 일단 자신이 경험한 것과 경험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더 겪었고요(잘못된 기억). 또 정신적이거나 환상적인 것에 유독 잘 끌렸습니다(예-부적 또는 저주는 효과가 있다). 이런 특징이 이들을 음모론에 더 쉽게 빠져들게 하는 거죠.

2012년 총선 당시 ‘나꼼수’ 총수였던 김어준(오른쪽)이 나꼼수 번개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의 18대 대선을 두고 조작된 선거라는 음모론을 펼쳤다. 동아일보 DB
2012년 총선 당시 ‘나꼼수’ 총수였던 김어준(오른쪽)이 나꼼수 번개 모임에 참석했다. 그는 같은 해 12월의 18대 대선을 두고 조작된 선거라는 음모론을 펼쳤다. 동아일보 DB
그럼 어떤 성격이 특히 음모론에 쉽게 넘어갈까요. 

패턴을 열심히 찾는 사람은 음모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동전 던지기 같은 무작위적인 결과를 놓고도 굳이 패턴을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죠. 이렇게 아무 인과관계가 없는 일들 사이에도 패턴을 찾는 것, 즉 미신적인 의식에 의지한다는 건 음모론과 연관이 큽니다.

직관에 의존하는 사람들도 음모론자가 되곤 합니다. 트럼프는 과거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죠. “내겐 직감이 있다. 내 직감은 때때로 다른 사람의 뇌가 말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말해준다.”

지적 겸손 수준이 낮으면 위험합니다.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 ‘남이 더 많이 알 수도 있다’라는 열린 태도가 음모론에 휩쓸리지 않게 하니까요.

나르시시스트일수록 위험한 음모론자가 되곤 합니다. 일이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 때, 그들은 자기에겐 분명히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에(나르시시스트는 원래 그렇게 생각함) 비난을 받아야 마땅할 대상을 찾죠.

친절한 음모론 집단
부정선거 음모론을 펼치는 극우 유튜버 영상의 댓글을 혹시 보신 적 있나요? 영상마다 수천개 댓글이 달리는데, 어쩜 이리도 영상 제작자에 대한 지지와 응원, 감사와 축복이 가득한지 모릅니다. 참 친절하고 따뜻한 집단처럼 보이죠. ‘적을 박살 내자’는 썸네일 속 과격한 문구와는 정반대 분위기가 아닐 수 없는데요.

주변 가족과 친구들은 내 얘기를 무시하고 따돌리는데, 이 집단에선 내 말에 귀 기울여주고 지지를 보낸다면 어떨까요.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일수록, 이 따뜻한 음모론 집단에 더 깊이 빠져듭니다. 소속감과 충성심을 표현하기 위해 주장은 한층 더 과격해지죠. 진실(팩트냐 아니냐)보다는 충성심(어디 소속이냐)이 중요합니다. 정보가 좀 부정확하고 다소 황당하더라도 눈 감아버리죠. 이들이 느끼는 사회적 유감은 그들을 음모론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만듭니다.

16일 광화문에서 극우 집단이 벌인 ‘부정 조작선거 수사촉구’ 집회의 모습. 뉴스1  
그렇기 때문에 음모론의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 사람은 다시 끌어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이비종교’라는 비유가 과장이 아닌데요. 하지만 에이얼리 교수는 “내가 희망을 찾는 곳은 인간”이란 낙관론을 잃지 않습니다. 그는 음모론의 인간 심리를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려 노력한다면 그 파괴적인 영향력을 줄여갈 수 있다고 말하죠. 그들의 진짜 이야기(왜 음모론에 빠졌는지)를 들어주면서 조금씩 다가가란 겁니다.

정말 그럴까요. 냉소와 무시만으론 음모론의 폭풍을 잠재울 수 없다는 건 한국과 미국 정치 모두가 이미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이해하려 다가가기란 솔직히 부담스럽기도 하죠. 음모론자까지도 품을 수 있는 그런 열린 사회란 과연 가능할까요. By.딥다이브

이 글을 읽으면서 ‘역시 나는 음모론에 빠질 위험은 없어’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반대로 ‘나도 음모론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지적 겸손)이 음모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하니까 말이죠. 지나친 과신은 금물입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자면.

-왜 멀쩡해보였던 사람이 음모론에 빠질까요. 음모론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나타납니다. 이념적 양 극단의 음모론은 서로 닮아있죠. 음모론이 인간이 누구나 가진 특성에 기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진 취약성이 음모론을 만들어냅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통제감을 되찾으려는 욕구의 반영이죠.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는 확증편향, 대의를 위해서라면 진실의 왜곡쯤은 넘어가는 동기화된 추론이 음모론을 신뢰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유독 음모론에 잘 빠지는 위험한 성격이 있습니다. 패턴 찾기와 미신을 좋아하고, 지적 겸손 수준이 낮은 나르시시스트가 특히 그렇죠. 일단 한번 음모론에 빠지면 거기서 느끼는 사회적 유대감이 그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이끕니다.

-그래서 필요한 건 조롱과 무시가 아닌 이해와 공감입니다. 그들과 대립하는 게 아니라, 소통하며 서서히 스며들어야만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요.

*이 기사는 17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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