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부 작센안할트주 마그데부르크의 성탄마켓 행사장에서 ‘난민 포용 정책’에 불만을 가진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남성이 차를 몰고 돌진해 최소 5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용의자인 탈렙 알 압둘모흐센(50)은 2006년 독일로 건너왔고 2016년 영주권을 얻은 뒤, 마그데부르크에서 약 45km 떨어진 소도시 베른부르크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해 왔다. 현지 수사 당국에 따르면 압둘모흐센은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고, 평소 독일의 포용적 난민 정책에 불만이 컸다. 또 사우디 출신임에도 이슬람에 대한 혐오도 깊었다.
● ‘反이슬람’ 난민이 범행 저질러
21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전날 오후 7시경 압둘모흐센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몰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성탄마켓을 400m 이상 고속 질주하면서 발생했다. 사망자 중에는 9세 어린이가 포함돼 있고, 부상자 중 41명은 중상을 입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 체포된 압둘모흐센이 보수 이슬람 사상이 강한 사우디 출신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처음에는 이번 사건이 이슬람 극단주의 영향을 받은 테러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성탄마켓은 유럽의 뿌리 깊은 기독교 문화를 보여주는 행사로 꼽힌다.
하지만 그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자신을 “(이슬람교) 배교자”라고 밝혀 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압둘모흐센이 소셜미디어 X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메르켈(전 독일 총리)이 유럽 이슬람화를 목표로 난민을 대거 받아들였다” “독일이 전 세계 사우디 출신 여성 망명자를 찾아내 이들의 삶을 파괴하려고 든다” “독일이 우리를 죽이려고 든다면 그들을 학살하고 영광스럽게 죽거나 감옥에 가겠다” 등의 극단적인 주장을 펼쳐 왔다고 전했다.
그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서도 강한 반(反)이슬람 성향을 드러냈다. 2019년에는 독일 현지 매체에 “나는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이슬람 비판자”라며 “이슬람에 반대한다고 인터넷에 적었다가 살해 협박을 받아 망명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독일 이주 후에는 박해받는 사우디 출신 여성의 망명을 돕는 활동에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낸시 페저 독일 내무장관도 “사건을 조사 중이나 용의자는 확실한 이슬람 혐오자”라고 밝혔다.
유로뉴스는 그간 독일 당국이 압둘모흐센을 위험인물로 분류해 왔다고 전했다. 그는 2013년에도 협박죄로 독일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또 이번 범행 전날에는 다른 혐의로 재판이 잡혀 있었으나 불출석했다. 사우디 정부도 독일 정보 당국에 압둘모흐센의 극단성에 대해 세 차례 이상 경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 獨, 이념-종교 갈등 격화될 듯
압둘모흐센이 이민자 배척을 핵심 정책으로 내세우는 극우 독일대안당(AfD) 지지자였다는 점이 알려지자 독일 내 이념 및 종교 갈등이 격화될 것이란 우려도 커진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21일 마그데부르크에선 불법 이민자 추방을 요구하는 AfD 등 극우 세력의 집회가 약 2100명(현지 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고, 일부 집회 참석자들은 경찰과 몸싸움도 벌였다. AfD는 시위를 앞두고 당원들에게 “추모소로 나와 달라”며 결집을 호소하기도 했다.
독일은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 시절 100만 명 이상의 불법 이민자를 수용하는 등 적극적인 난민 포용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극우세력을 중심으로 반이민 정서가 거세지고 있다. 올 9월 AfD는 옛 동독 지역이던 튀링겐주와 작센주 지방선거에서 1, 2위를 차지하며 나치 패망 79년 만에 처음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극우 정당으로 부상했다.
한편 수도 베를린 등 독일 각 지역은 성탄마켓 경비를 강화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조기 폐장에 들어갔다. 독일에서는 앞서 8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20대 시리아 망명 신청인이 흉기 난동을 벌여 3명이 숨졌다. 또 2016년에는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트럭을 몰고 성탄마켓에 돌진해 13명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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