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판 닫힌 제조업 생태계]
해외 공장 둔 기업인들 하소연
주52시간-전기료 상승 등 문제 지적
전문가 “파격 혜택 줘야 리쇼어링”
“한국에서는 제조업 하기 너무 힘듭니다. 우리끼리(제조업 하는 사람들)는 ‘해외로 나온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라고 해요.”
1972년 제조업을 시작해 현재 인도네시아에 제조 공장을 두고 있는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렇게 말한 뒤 “대기업도 아닌 우리가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외국에 왜 굳이 나와서 공장을 차리겠나”라고 반문했다. 그의 회사는 한국 본사에서 180명을, 인도네시아에서는 1000여 명을 고용하고 있다. 그는 “내가 아는 회사들 90%는 (한국에) 다시 안 돌아올 겁니다”라고도 했다. 인건비가 비싸 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인데, 주 52시간제도 도입 이후엔 발주처의 주문 물량도 제때 맞춰주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수년 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한국에 다시 공장을 세우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대기업들이 미국, 유럽, 중국, 동남아시아 등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건설하는 건 해당 시장 공략을 보다 빠르게 공격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의 ‘탈(脫)한국’행은 대부분 생산 원가 때문이다. 비용 절감이 1차적 목적인 셈이다. 높은 세금 부담에 과도한 산업·환경 규제들도 국내에서 기업을 하기 힘든 이유다.
그나마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싼 수준이었던 전기료마저 최근 크게 오르고 있다. 국내 제조업 전체에 부과된 전기료는 2020년 25조7000억 원에서 지난해 41조6000억 원으로 3년 새 15조9000억 원(61.9%) 늘었다. 정부가 한국전력의 적자를 줄이기 위해 2021년 이후 총 7차례에 걸쳐 전체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렸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생산기지를 다시 이전하는 ‘리쇼어링’ 기업 역시 해마다 감소세다. 산업통상자원부와 KOTRA의 ‘국내 복귀기업 선정 현황’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 기준 리쇼어링 기업은 15곳에 불과하다. 12월 집계가 빠졌지만 △2021년 25곳 △2022년 24곳 △2023년 22곳에서 또다시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KOTRA 관계자는 “아직 심사 중인 기업들이 있어 연간 전체로 몇 곳은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향후 출범할 미국의 트럼프 정부는 관세를 올리고 법인세를 낮추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내세워 자국 기업을 지키고 해외 기업을 유치하고 있다”면서 “한국 역시 국내 제조 기반을 지키려면 그만큼 공격적인 정책과 자금 투입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민아 기자 omg@donga.com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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