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와 함께하는 제61회 동아연극상]
조영규-송인성 연기상 수상 영예
새개념연극상 어린이 연극-오감도
젊은 창작자 참여 늘어 주제 다양
심사위원장 “여러 색채-시선 기대”
상상만발극장2의 ‘하얀 밤을 보내고 있을 너에게’와 제12언어 연극 스튜디오의 ‘화성에서의 나날: 파트1’이 제61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김옥란)는 23일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최종 심사를 진행해 수상작이 없는 대상을 제외하고 작품상 연출상 연기상 등 9개 부문 수상작과 수상자를 선정했다. 올해 본심에는 심사위원 추천작 29편이 올랐다. 김옥란 위원장은 “주목할 만한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 한 해였다. 다채로운 주제들, 젊은 창작진의 신선한 접근은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작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고 총평했다. 이어 “앞으로 국내 연극계에 여러 색채와 시선을 지닌 작품들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작품상을 받은 ‘하얀 밤을 보내고 있을 너에게’는 연출상(박해성)까지 거머쥐었다. 2교대 노동자인 ‘새벽’과 승무원 ‘여정’이 서로 다른 시차로 인해 엇갈리면서도 연결을 모색하는 과정을 그린다. 초연결 시대가 만들어낸 고립의 세상에서 연결의 의미와 가능성을 새로이 짚는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감수성과 세계관을 밀도 있게 담았다. 짧은 장면을 영상적 감각으로 전개해 이들의 슬픔과 피로를 과하지 않고 위트 있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화성에서의 나날: 파트1’은 화성 탐사를 떠난 두 등장인물이 사고를 당하면서 우주에 고립된 상황을 주축으로 한 산문 연극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21세기 버전’이라는 평을 얻었다. 작품에 출연한 백종승 배우는 유인촌신인연기상도 수상했다. “작은 작품이지만 인공지능(AI)과 비인간 담론 등 깊이 있는 주제를 신선한 연극성으로 풀어냈다. 의자를 활용해 유영하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등 연출적 시도도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기상을 받은 조영규 배우(‘진천 사는 추천석’)에 대해서는 “관객이 극 중 설정을 믿고 따라올 수 있도록 진솔하게 연기하는 점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수상자 송인성 배우(‘간과 강’)는 “긴 시간 동안 인물을 창조해야 하는 고독한 작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공연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카르타고’ ‘애도의 방식’ 등에 출연한 최호영 배우와 ‘화성에서의 나날: 파트1’ 백종승 배우는 나란히 유인촌신인연기상을 받았다. ‘카르타고’에서 보호관찰소에서 자란 토미 역을 맡은 최호영에 대해서는 “희곡 분석력과 인물 형상화가 뛰어났다”고 평했다. 백종승은 “희극적 연기 캐릭터를 가졌으면서도 진솔한 연기를 보여주는 점이 눈에 띄는 배우”라고 했다.
희곡상은 ‘비명자들 3막―나무가 있다’를 쓰고 연출한 이해성 작가에게 돌아갔다. 2017년부터 이어진 ‘비명자들’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실체 없는 고통을 비명으로 형상화한 작은 인간들이 거대 권력에 맞서는 이야기다. “국가가 주도한 대학살을 3부작에 걸쳐 집요하게 밀고 나간 힘과 상상력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동창작 실패 다큐멘터리’로 신인연출상을 받은 본주 연출가에 대해서는 “꾸준히 작업을 해오면서 야생적인 힘과 근성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새개념연극상은 ‘이상한 어린이 연극―오감도’를 주최한 종로 아이들극장과 작품을 제작한 공놀이클럽이 받았다. 시인 이상의 대표작 ‘오감도’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공동 창작 다큐멘터리 연극이다. 심사위원들은 “어린이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부쉈다. 어린이극의 창작 방법론을 새롭고 깊이 있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국립극단 ‘활화산’으로 무대예술상을 받은 임일진 무대디자이너에 대해서는 “시각적 스펙터클이 강렬했고 오브제 자체가 작품의 미학을 특정하는 대담한 시도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특별상에는 김민기(1951∼2024)와 ‘학전’이 선정됐다. 김민기는 1991년 대학로 공연 문화의 상징인 소극장 학전을 설립해 33년간 이끌었고, ‘지하철 1호선’ 등을 만들어 국내 창작 뮤지컬의 토대를 닦았다. 심사위원들은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작품을 만드는 데 헌신했고, 젊은 배우를 기용하는 민주적 시스템을 국내 연극계에 자리 잡게 했다”고 말했다.
수상작으로 이름을 올리진 못했으나 완성도 높은 소극장 연극도 다수 언급됐다. 트렁크씨어터프로젝트의 ‘김치찌개 웨스턴’, 그린피그의 ‘역사시비 시리즈’, 국립극단 ‘전기 없는 마을’ 등이다. 시상식은 내년 1월 20일 열릴 예정이다.
“양자역학의 ‘다세계’서 영감… 무한고독 담아”
‘하얀 밤을…’로 연출상 박해성씨
“무한히 연결된 세상은 반대로 무한한 고독을 낳았어요. 이 질서를 받아들이되 우리가 어떻게 공존하고 연대할지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연극 ‘하얀 밤을 보내고 있을 너에게’로 제61회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박해성 연출가(사진)는 23일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연출한 ‘하얀 밤…’은 초연결 시대, 연결성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새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이다. 올해 작품상까지 받아 2관왕을 차지했다. 박 연출가는 “수상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같이 작업해준 동료들 한 명 한 명이 떠올랐다. 마침 ‘하얀 밤…’팀과 회식을 하는 날에 상을 받아 영광스럽고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작품은 2교대 노동자인 ‘새벽’과 그의 연인이자 승무원인 ‘여정’이 각자의 시차로 인해 계속 어긋나면서 시작된다. 저마다의 힘겨운 사정은 불안과 소외로 마음을 소진시키고, 두 사람을 멀어지게 한다. 이때의 시차(時差)는 무대 위에서 시차(視差)로 표현된다. 박 연출가는 “두 사람이 서로 바라보고 있어야 할 장면에서 바라보지 않게끔 연출하는 등 시공간이 확장될 수 있는 개념임을 녹여냈다”며 “이들이 어떤 세계, 어느 곳에서는 함께 존재하고 있음을 무대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연출은 20세기 양자물리학자 휴 에버렛이 제시한 ‘다세계 해석’ 이론에서 영감을 얻었다. 학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박 연출가는 2009년 연극계에 발을 디딘 후 ‘스푸트니크’ 등 여러 우주가 중첩된 세계관을 꾸준히 연출했다. 그는 “현상을 관찰해 가설을 세우고 실패를 거쳐 검증하는 과학적, 수학적 철학 훈련이 밑거름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박 연출가가 꿈꾸는 연극적 목표 역시 그의 ‘다세계 연작’과 연결된다. 통상 개개인으로 나뉘어 작업하는 창작자들이 서로 연대함으로써 고립 아닌 공존을 지향하자는 것. 그는 “함께 창작 의제를 만들고 교류하는 연극 생태계에서는 작품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공존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관객에게도 다채로운 ‘시차’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백 명의 관객에겐 백 개의 연극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정해진 정답이 아니라 관객이 각자의 연극을 생성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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