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금융-세제 지원해 경쟁력 강화
석화업계 올해 누적 영업익 반토막
철강도 中 밀어내기에 수익성 악화
일각 “빅딜 같은 구조조정 카드 빠져”
정부가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공장 매각 등 사업 재편을 유도하고 고부가·친환경 분야로의 진출 지원에 나선다. 중국발(發) 과잉 공급과 탄핵 정국으로 벼랑 끝에 놓인 석유화학, 철강, 항공, 이차전지 등 주력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린 셈이다.
● 석유화학 시작으로 주요 산업 지원 본격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중국의 저가 공세에 따른 글로벌 공급 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부의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대책의 핵심은 석유화학 기업의 사업 매각 및 인수합병(M&A) 등 사업 재편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다양한 금융·세제 지원책을 시행한다. 대상 기업에는 지주회사 지분 100% 매입을 위한 규제 유예 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늘린다. 사업 매각 시 기업결합심사가 신속히 이뤄지도록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전 컨설팅을 지원하고 사업 재편에 나서는 석유화학 업계에 총 3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도 공급한다.
석유화학 설비 폐쇄로 지역경제의 어려움이 예상되는 지역에는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 지정도 검토한다. 해당 산업 분야 기업들은 금융·고용 안정, 판로 등의 맞춤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또 대응 지역 내 협력업체와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보증 지원도 강화한다.
정부는 이 밖에 관세를 비롯한 무역 구제 조치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중국산 전기차 수입에 추가 관세를 매기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최근 중국의 전기차 제조업체 비야디(BYD)의 국내 시장 진출을 앞두고 상계관세 부과 가능성을 시사했다. 상계관세는 수출국의 장려·보조금 지원을 받은 제품이 수입된 나라의 산업에 피해를 준다고 판단될 경우 수입국이 해당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조치를 뜻한다.
● 중국발 과잉 공급에 ‘고환율’까지 겹악재
이번 대책은 중국발 공급 과잉 등으로 불어나는 국내 산업계의 피해를 완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중국은 경기 침체 장기화로 자국 내 수요 위축이 심각해지자 정부의 보조금을 받은 상품을 저가에 밀어내기식으로 수출하고 있다. 또 석유화학 부문에선 자급을 목표로 2018년부터 대대적인 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석유화학과 철강 업계의 수익성은 악화돼 왔다. 석유화학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화학 업체 7곳(LG화학,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금호석유화학, SKC, 롯데정밀화학, 대한유화)의 1∼9월 누적 영업이익은 1조553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영업이익(3조644억 원) 대비 49.3% 감소하는 등 반 토막 났다. 실적이 악화된 것은 고물가, 고금리에 따른 글로벌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고 있고, 주요 시장이었던 중국의 기초 소재 자국화 방침으로 에틸렌 등 기초 원료 자급률이 100%에 가까워진 탓이다.
한국 철강 산업도 타격을 입고 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철강 가격이 떨어지며 수익성이 악화된 것이다. 3분기(7∼9월) 포스코홀딩스 철강사업 부문과 현대제철의 영업이익은 각각 4660억 원, 515억 원으로 지난해 3분기 대비 45.4%, 77.5%씩 줄었다.
이날 석유화학 지원 방안에 대해 업계는 대체로 환영하고 있지만 ‘빅딜’과 같은 강력한 구조조정 카드가 빠졌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미 시장에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맡겼다가 실패한 사례가 있음에도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장기간 석화 구조조정을 진행해 온 일본과 유럽연합(EU)의 지난해 석화 설비 규모는 2010년 대비 각각 15%, 9% 감소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석화 설비가 70% 증가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여기에 비상계엄, 탄핵 등에 따른 국내 정세 불안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재집권이 불러온 고환율 현상도 기업의 부담을 키우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각 기업의 원자재 비축분이 있어 지금 당장 타격은 적겠지만 고환율이 장기화될 경우 부담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이상 환율 불확실성도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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