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 넘은 의료공백 여론조사
“직접 피해” 24%… 응급실 수용 지연 1위
의료공백 책임, 정부 37%-의료계 32%
“증원폭 유지” 33%-“절충안 마련” 49%… “의-정, 국민 눈높이서 대안 찾아야”
정모 씨(41)의 어머니는 지난달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폐암 수술을 받았다. 암 진행 속도를 고려하면 수술이 시급했지만 지역 대학병원에선 “의료진이 부족해 당장 수술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 씨는 “최소 6개월은 걸린다고 해서 서울 대형병원을 수소문해 3개월 만에 간신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10개월 넘게 이어진 의료공백으로 국민 4명 중 1명은 수술 지연 등의 피해를 직접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지인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피해 사례를 접했다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4명 중 3명이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접했다고 답했다.
● 국민 4명 중 3명 “의료공백 직간접 경험”
동아일보와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 ‘공공의창’이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21, 22일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선 응답자의 23.5%가 ‘의료공백으로 피해나 불편을 겪었다’고 답했다. 또 51.1%는 ‘가족, 친구 등 지인에게 피해나 불편 사례를 들었다’고 답했다. 주된 피해 사례 중에는 응급실 수용 지연이 27.5%로 가장 많았고, 진료 지연(24.6%), 수술 지연(20.3%), 신규환자 접수 불가(12.9%) 등이 뒤를 이었다.
탄핵 정국 속에서 의료공백이 내년에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지면서 응답자의 50.7%는 ‘적절한 진료를 못 받을까 봐 매우 우려된다’고 답했다. ‘조금 우려된다’는 답변은 22.9%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의료공백 피해가 자신에게 닥칠까 봐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무엇이 가장 우려되느냐고 물었을 때 가장 많은 33.3%는 처치가 시급한 상황에서 응급실 수용이 지연될까 봐 걱정이라고 답했다. 수술 지연(26.3%), 진료 지연(19.9%)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장기간 이어진 의료공백의 책임이 누구에게 더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7.4%는 ‘정부’라고 답했고 31.6%는 ‘의료계’라고 했다. ‘양쪽 모두’라는 답변은 29.2%였다. 이에 대해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환자들의 불안은 올해 내내 지속되고 있는데 정부는 버티기로 일관하고 의료계는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주장만 한다”며 “정부와 의료계 둘 다 책임이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대화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 “국민 눈높이에서 대안 합의점 찾아야”
이번 설문조사에선 2025학년도 입시가 사실상 마무리 국면인 만큼 2026학년도 의대 모집정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응답자의 의견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먼저 정부가 이미 발표한 ‘2000명 증원’이나 올해 시행한 ‘1509명 증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33%였다. 또 의사단체 강경파에서 주장하는 대로 2026학년도에 아예 신입생을 선발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는 응답자는 11.9%였다. 나머지 절반가량(49.3%)은 2025학년도보다는 줄이되 일부 선발해야 한다는 절충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대진 조원씨앤아이 대표는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은 의대 증원은 바람직하다고 보지만 그 방법과 규모에 대해선 정부를 신뢰하지 않고 있다. 의료계를 향해서도 무조건 반대가 아닌 국민 눈높이에서 대안과 합의점을 찾길 바라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공공의창은 2016년 문을 연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리얼미터, 리서치뷰, 우리리서치, 리서치DNA, 조원씨앤아이, 코리아스픽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피플네트웍스리서치, 서던포스트, 세종리서치, 지방자치데이터연구소 등 여론조사 및 데이터분석 관련 기업이 회원이다. 정부와 기업의 조사 의뢰를 받지 않고 공익적 목적의 설문조사와 분석을 진행한다. 비용은 회원사들이 자체 분담하는 방식으로 조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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