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현지 시간) 세상을 떠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영결식이 워싱턴DC 국립대성당에서 9일 열렸다. 100세를 일기로 떠난 카터 대통령 추모행사가 국장으로 진행된 가운데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건 고(故)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 추도사였다.
카터 전 대통령이 포드 전 대통령에게 직접 장례식 추도사를 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따른 것이다. 2006년 타계한 포드 전 대통령은 이날 공개될 추도사를 미리 써놨다. 포드 전 대통령의 추도사는 셋째 아들인 스티븐 포드가 대독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이를 통해 “그를 떠나보내는 슬픔이 크지만 미국과 세계는 이 특별한 사람을 알게 된 것으로 위안을 얻게 될 것”이라며 “지미 카터가 남긴 평화와 연민이라는 유산은 시대를 초월해 독보적인 가치로 남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앞서 언급한 발언도 덧붙였다.
이날 포드 추도사는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졌다. 둘이 한때 대통령직을 두고 맞선 최대 정적이었기 때문이다.
포드 전 대통령은 부통령이던 1974년 닉슨 대통령 사임 이후 닉슨에 의해 대통령직을 임명받는 형태로 대통령직에 올랐던 인물이다. 미국 대통령 역사상 유일하게 선출되지 않은 대통령이다. 그는 2년 여에 불과했던 임기를 마친 뒤 공화당 대선 후보 자격으로 1976년 미국 대선에 나섰으나, 베트남전 패전으로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 민주당 후보 카터에게 패했다.
당시 대선 레이스를 언급한 추도사 발언도 있었다. 포드 전 대통령은 추도사에서 “1976년 선거에서 지미는 저의 약점을 파고들었습니다.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 선거 덕분에 오래 가는 우정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둘은 TV 토론 때에도 날선 말들을 주고 받았다. 소탈한 이미지를 강조하던 카터 전 대통령은 포드의 엘리트적인 이미지를 물고 늘어졌고, 인플레이션에 대처하지 못했다며 공세를 퍼부었다. 당시 설전을 두고 워싱턴포스트(WP)는 “지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때치곤 발언 수위가 높은 정치 공방”이었다고 평했다.
둘은 1981년 10월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장례식에 함께 참석한 뒤에 친해졌다. 둘은 돌아오는 길에 같은 비행기를 탔는데, 여기서 신앙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었다고. 그후 그동안 날선 발언들을 모두 잊기로 약속했다.
퇴임 후 카터 전 대통령은 포드 전 대통령을 자신의 비영리재단 ‘카터센터’의 자문위원으로 초빙했다. 두 사람은 선거 개혁 등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추진하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카터 전 대통령이 포드에게 추도사를 부탁하자, 포드도 카터에게 추도사를 부탁했다. 이에 카터 전 대통령은 2007년 포드 전 대통령의 장례식 때 “우리를 묶어준 강렬한 우정은 우리가 누린 큰 축복”이라는 취지의 추도사를 읽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뛰어넘는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날 추모행사에서 자주 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과 속닥이듯 대화하는 모습,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대선 라이벌이었던 앨 고어 전 부통령에게 악수를 건네는 모습도. 정치적 대립을 뛰어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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