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흑백으로 이등분하면 안 된다는 거 안다. 사람이 단순무식해지면서 더 복잡한 문제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기준점을 놓고 갈라 보면 사안이 명쾌하게 이해되는 것도 사실이다. 갈수록 심해지는 싸움질을 보면서 나는 세상엔 크게 두 종류의 인간군(群)이 산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인간은 변할까, 안 변할까▼
하나는 ‘인간은 변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이다. 수렵채집 시절이나 현대나 유전자가 면면히 이어지는 한, 2세 번성을 꾀하는 이기적 인간본성은 그대로라는 거다. 인간 자체에 결점이 있으므로 민주주의 같은 사회제도 역시 결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대표적이다. 미국 헌법이 삼권분립을 엄격히 규정하고도 언론자유를 또 강조하는 건 인간을 그만큼 못 믿어서다. 미국학자 토머스 소웰 씨는 이를 ‘강제적 비전’이라 불렀고, 스티븐 핑커 씨는 ‘비극적 관점’이라고 했다. 시장경제론의 원조 애덤 스미스도 경제학자로 유명해지기 전에 이미 인간본성을 바꾸려는 건 헛된 시도라고 썼다. 다른 하나는 ‘인간은 변한다’는 이들이다. 인간본성이란 사회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는다. 도덕적으로 우월한 선각자들이 해결책을 제시하고 더 나은 세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거다. ‘비강제적 비전’ 또는 ‘유토피아적 관점’이다. 이렇게 보면 ‘변한다’파가 훨씬 반듯하고 희망적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혁명은 등장 용어부터 아름답다. 결과보다 의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이에 비해 ‘안 변한다’파는 실속을 우선한다. 재산권을 중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속물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민중을 착취 억압하는 구체제를 뒤엎고 자유 평등 박애의 횃불 아래 이상적 사회를 처음부터 다시 건설하자는 구호다. 프랑스만 아니라면 꽤 낯이 익지 않은가. 맞다. 우리의 이른바 민주화세력, 자칭 개혁집단과 비슷하다. “평등과 분배, 민족화합과 남북공조, 공공선과 윤리적 가치를 위한 일련의 개혁정책에 반대한단 말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도 할 말이 없을 판이다. 비슷한 건 또 있다. 우리의 개혁집단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소웰 씨는 마르크스주의도 강제적 비전과 비강제적 비전의 혼합이라고 했다. 과거를 해석할 땐 인간은 안 변한다이되 미래의 인간은 변할 수 있다. 개혁파가 훌륭한 정책을 펴서 변하게 만들겠다는 얘기다. 정부 여당이 강박적으로 관철하겠다는 ‘개혁 입법’은 인간과 사회의 개조 비법이 될 터이다. ‘종이었던 아비’ 덕에 오늘의 내가 됐음을 부정하면 주류세력 교체는 더 자연스러워진다. 국가보안법을 없애 국제사회와 상관없이 북한과 가까워지고, 사학법을 바꿔 사학을 전교조 세상으로 만들면 20년 장기집권은 간단해진다. 신문법까지 고쳐 비판 신문을 압살하면 200년 집권도 가능하다. 그리하여 모두가 잘사는 대한민국이 도래하면 얼마나 좋은가 말이다. 여기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다시피 발달해 온 과학에 따르면 인간본성은 ‘안 변한다’ 쪽에 가깝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이렇게 주장했던 과학자나 인종차별주의자들이 호된 비난을 받은 걸 익히 아는 바다. 프랑스혁명 지도자들이 자기가 더 도덕적이라면서 과거 지도자들을 차례로 단두대로 보낸 사실이나, 인간본성을 개조하겠다는 마오쩌둥과 스탈린이 독재와 대량 학살로 오명을 떨쳤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다. ▼정부不潔 감시가 신문 사명이다▼
다만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지는 아무도 부인 못할 거란 말은 해야겠다. 질량불변이랬다. 결벽증 있는 사람 중에 상처 있는 사람 많고 어딘가는 더 불결하다. 개혁한다는 정권이 구린내 나는 낙하산인사를 하는 걸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의도하지 않은 정책 결과도 그래서 나온다. 평등 강조하는 사회가 되레 불평등해지는 건 외환위기 수준으로 악화된 우리의 빈부격차가 입증한다. 더 겁나는 점은 양극화를 해결하겠다고 정부가 나서는 거다. 무능한 정부에 힘이 집중된다면 ‘쥐라기 공원’이 따로 없다. 문제는 아직도 3년이나 남았다는 사실이다. 정부 여당이 ‘개과천선’할 리는 없다. 한나라당은 죽을 쑤는데 대안세력도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 이 마당에 ‘신문 악법’까지 통과되면 여권의 병적인 결벽증도, 감춰진 불결함도 드러날 수 없다. 정말이지 피를 토할 노릇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