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라기 공원’의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의 신작 ‘공포상태’엔 환경단체 대표가 등장한다. 환경운동에 대한 통념대로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써졌다면 스릴러 아닌 동화로 분류됐을 소재다. 화제의 작가답게 크라이튼은 주인공을 환경장사꾼으로 만들었다. 기다리던 기후재앙이 안 생기자 인공 해저폭발로 쓰나미를 일으켜 돈을 벌려 드는 거다. 무엄하게도 16일 발효되는 교토의정서와 환경운동을 조롱한 이 베스트셀러는 4년 전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가 나왔을 때만큼 논란이 됐다. 기후과학자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분노하거나 소설 자체를 무시했지만, 하버드대 의대 출신으로 결코 과학에 무지하달 수 없는 크라이튼은 단호했다. “모든 참고문헌은 사실이다. 다양한 환경자료를 살핀 결과 지구온난화는 난센스라고 결론 냈다.”(BBC뉴스) ▼인간은 자연보다 중요하다▼ 지율 스님의 목숨 건 단식으로 천성산 터널공사가 사실상 중단된 뒤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 없던 사람도 환경을 다시 보게 됐다. 유기농야채 좋은 줄 알지만 비싸서 못 먹던 주부도 내가 환경 망치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닌가 죄의식이 생긴다고 했다. 환경은 계속 나빠지고, 인간이 이를 부추기며, 따라서 환경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점엔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다고 조목조목 부정한 이가 롬보르였다. 그린피스 회원이자 통계학 교수인 그는 환경관련 통계를 분석해서 경제 기술발달 덕분에 대기는 과거보다 좋아졌으며, 자원은 풍족해지고, 멸종되는 생물도 적자생존법칙에 따른 극소수임을 밝혀냈다. 교토의정서 발효가 다가오면서 지구온난화에 대한 이견(異見)도 불거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 소속 과학자가 최근 공개서한을 내고 사임할 만큼 의견일치도 안 돼 있다. 의정서에 참여하지 않은 미국을 ‘환경파괴범’같이 보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환경운동을 주도하는 유럽과 미국은 세계관이 다른 게 사실이다. 자연을 동반자처럼 여기는 게 유럽이라면, 미국에선 인간을 위해 다스리고 활용해야할 대상으로 본다. 그 덕에 삶이 풍요로워지고 환경도 개선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환경주의자들은 당연히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환경은 한번 파괴하면 돌이킬 수 없으므로 특별 대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결혼이고, 대통령 선출이고, 중앙청 파괴이고, 세상에 쉽게 무를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던가. 호환(虎患)이 마마처럼 무서웠던 시절을 기억한다면, 자연은 아름답고 환경은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는 ‘신화’도 다시 볼 때가 됐다. 사람에겐 자연적 선천적인 게 좋다는 낭만적 믿음이 굳건해서 자연보호가 도덕적이며 옳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한번 따져보자. 도롱뇽이, 습지가, 환경이 정말로 인간보다 귀중한가를. 환경에 대한 사람들의 죄책감을 대속(代贖)하듯 환경운동해온 ‘천사’의 눈에는 자연만 보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보이지도 않는지를. ▼‘환경黨’을 창당하시라▼ 도덕성을 매우 중시하는 참여정부는 대규모 국책사업 계획 때 환경단체 의견을 반영하라는 환경정책 기본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제 정책당국도, 전문가도, 그리고 민주주의도, 환경만이 선(善)이라는 독선 앞에 무기력해질 가능성이 더 커지게 됐다. 환경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순진무구한 천사의 이미지로 국민의 혈세를 축내기엔, 아무도 뽑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환경운동가들은 너무 많이 국정에 개입돼 있다. 그럴 바엔 환경당 또는 천사당을 만들어 정책을 내고 평가를 받는 게 훨씬 정직하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