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신문은 정부의 동반자가 되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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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은 소리’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조직의 장(長) 자리에 앉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과장, 부장, 사장, 하다못해 학교시절 반장도 입바른 소리 들으면 내색은 못해도 속으론 밉다.

왕에게 도덕정치를 설파했던 조광조도 그래서 죽임을 당했다. 간신의 모함이지 왕이 자신을 죽일 리 없다며 통곡했다는 전언에 중종은 코웃음을 쳤다. “조광조는 내 곁에 오래 있어서 내가 잘 안다”면서(참고로 나는 조광조 식의 정치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점을 밝혀둔다).

●권력을 감시 비판하는 존재는 필요하다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제도적으로 필요한 것도 이런 이유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서 어릿광대가 왕의 위선과 어리석음을 조롱하듯, 언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엔 광대가 그런 역할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3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 참석해 기념 떡을 자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63회 신문의 날 기념 축하연에 참석해 기념 떡을 자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저 사람은 싫은 소리 하는 게 직업이라고 인정을 한 뒤, 그 사안을 다시 짚어보면 안 보이던 점이 보일 수도 있다. 피차 개인적으로 미워할 이유도, 필요도 없다. 서로의 업(業)을 살려주니 외려 고맙다.

“혁신적 포용국가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는 어제 문재인 대통령의 ‘신문의 날’ 축사가 불편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감시견 애완견 동반견 그리고 반려견?

태어나서 지금껏 언론은 정부의 감시견(watch dog)이 돼야 한다고 배웠지, 동반자가 돼야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애완견 아닌 동반견이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싶다(이것도 요즘 애완견을 ‘반려견’이라고 하기에 쓴 단어가 아닌가 모르겠다).

물론 지난해는 그냥 넘겼던 대통령이 처음 신문의 날 기념식을 찾아준 건 고맙기 짝이 없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축사라고는 할 수 없는 가시돋힌 대목이 적지 않다.

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습니다.
정권을 두려워하는 언론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다시 높아지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진실한 보도, 공정한 보도, 균형있는 보도를 위해
신문이 극복해야 할 대내외적 도전도 여전합니다.


●“언론자유 억압하는 정치권력 없다”는 대통령

영어로 challenge라고 번역되는 ‘도전’이라는 단어는 영미권에서 ‘문제’ 대신에 쓰는 말이다. ‘문제가 많다’는 것을 그들은 ‘극복해야 할 도전이 적지 않다’는 식으로 쓴다.

대통령이 보는 언론의 문제는 언론자유, 신뢰성, 그리고 공정성 세 가지였다. “정치권력 외에도 언론자본과 광고자본, 사회적 편견, 국민을 나누는 진영논리, 속보 경쟁 등 기자의 양심과 언론의 자유를 제약하는 요인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이다.

앞에서 분명 대통령은 “이제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정치권력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신문사주와 광고주, 사회적 편견, 진영논리와 속보 경쟁에 기자들이 양심을 파는 바람에 언론자유가 훼손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두 번째와 세 번째, 신뢰성과 공정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과 연결된다.

●박정희도 정부에 협조하는 언론 원했다

대통령은 친절하게도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신문은 존경받는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런가? 정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제대로 할 때가 아니고?

물론 대통령이 언급했듯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을 기초로 한 비판,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설정’은 중요하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비판은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이 아니고,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설정’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언론이 국가발전 과정에서 정부에 협조하는 ‘건설적 태도’를 가지고 ‘개발 언론’이 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대한민국은 ‘공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혁신적 포용국가’다. 이를 신문이 ‘함께 만들어가는 동반자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는 말씀은 박정희 때와 거의 같은 의미로 들린다.

●기자는 아첨꾼 아닌 회의론자가 되어야

남의 나라 얘기를 하고 싶진 않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17년 퇴임 이틀 전, “여러분은 아첨꾼이 아니라 회의론자가 돼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기자회견에서 말한 적이 있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국민들에게 책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임을 오바마는 알고 있었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에게 “여러분이 이 건물에 있다는 사실이 우리의 정직함을 유지하게 하고,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든다”고 했던 그 나라 대통령이 존경스럽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나는 그것이 진정한 동반자의 태도라고 생각한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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