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 때였다. 교양과목인 ‘청년심리’ 첫 시간. 머리를 동그랗게 커트한 40대의 ‘귀여운’ 여교수가 딱 하루 보강을 맡았다며 들어왔다.
“평생 자기 일을 갖고 그 일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를 지지하고 후원하는 남자와 결혼하세요. 남편과 아내는 서로가 서로를 마음 놓고, 끝없이 좋아할 수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언제 결혼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런 사람을 만난 때가 바로 결혼적령기죠.”
●“나를 후원해주는 남자와 결혼하라”
써놓고 보니 별로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은 내용이다. 그때는 충격적이었다. 영문학이라는 내 찬란했던 전공과목 강의는 한개도 생각 안 나는데 유독 이혜성 교수의 이 말씀만 기억에 남는다.
평균 결혼연령이 남자 27.4세 여자 23.6세이던 1981년. 사랑이 결혼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믿었던 여대생들에게는 패러다임을 바꿔주는 강의였다. 1983년 말 내가 동아일보에 입사한 다음에도 ‘결혼 적령기는 없다’ ‘남편 혼자만의 일로만 생각되던 돈벌이에 뛰어드는 아내들이 늘고 있다’ 같은 칼럼이나 기사가 버젓이 신문에 등장하곤 했다.
이혜성 교수는 이화여대 기혼 여교수 12명을 심층 연구해 이들에게는 아들딸 차별 없이 길러준 부모와 적극적 후원자가 되어준 남편이 있었다는 ‘여자교수의 성취동기에 대한 사례연구’ 논문을 1985년에 내놓았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해준 강의는 학문적, 실제적으로 입증됐다고 할 수 있다. 여성학이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기 전에 나는 여성학의 정수(精髓)를 세례 받은 셈이다.
●결국 아내 성공은 남편에게 달렸다?
그 결과 나를 후원해주는 남자와 결혼했는지는 묻지 말기 바란다. 다만 내 일을 방해하지 않는 상대를 선택하는 건 중요하다. 실제로 내 또래 주변을 둘러보면, 직장생활을 남편이 반대하는 경우 대개 여자는 직장을 그만두었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이 후원을 해줘야 성공한다거나, 성공 못한 여자는 남편이 후원을 안 해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결국 ‘아내 성공은 남편에게 달렸다’, 쉽게 말해 여자는 시집 잘 가야 한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어서다(좋은 핑계거리는 될 것이다).
여기서 ‘성공’이라는 게 뭘 말하는지 잠깐 짚어보면, 이 교수는 하버드대학 심리학자 루스 쿤드신의 ‘여성과 성공’을 인용해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분야에서 계속 보람과 기쁨을 느끼며 일하고, 주위 동료들로부터 인정받는 상태’를 성공이라고 했다. 그 책의 바탕이 된 미국 뉴욕의 과학 아카데미 세미나가 1972년에 진행됐고, 거기선 ‘결혼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경우’까지 거쳐야 성공으로 쳐주었다는 것을 기록해둔다.
● 열렬한 후원자와 결혼한 이혜성 교수
이혜성 선생님을 근 35년 만에 다시 만났다. ‘2018년에 나는, 나의 팔순 세상의 신입생이 되었다’고 자서전 ‘내 삶의 네 기둥’에 쓴 대로, 선생님은 여전히 동그란 커트머리에 통통 맑게 튀는 소프라노 목소리의 소녀 모습이었다.
내가 강의를 들은 그 때가 선생님한테는 마음 놓고, 끝없이 좋아할 수 있는 남자와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혼시절이었다. 선생님은 어떤 남자와 결혼했는지 궁금했는데 우리에게 강의한 그대로, 남편은 아내를 끊임없이 지원한 후원자였다. 아내의 꿈을 위해 10년 전에는 사재를 털어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라는 ‘아주 특별한 대학원’까지 세워주었다.
국어교사를 하다 1968년 29세의 만학도로 미국에서 상담 교육학을 공부하고 1974년 귀국해 이화여대 교수로 일하던 무렵, 선생님은 스스로도 아주 비현실적이라고 인정하는 결혼 조건을 다섯 가지나 갖고 있었다. 서울대 출신일 것, (내가 작으니) 체격이 클 것, 남자다울 것, (나처럼) 이북출신일 것, 그리고 쩨쩨하지 않을 것.
●남편이 세워준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그런데 과히 친하다고 할 수 없는 분의 소개로 딱 그런 사람을 만나 ‘뿅’ 가버렸다. 3명의 자녀를 둔 46세의 홀아비라는 점만 빼고.
하긴 나도 젊은 여성들에게 진지하게 말하곤 한다. 한 가지만 포기하면 원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단다. 키가 작다거나, 머리숱이 심하게 없다거나, 나이가 많다거나, 아니면 아이가 있다거나.
처음부터 부자 남편은 아니었다. 결혼 당시에도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고, 건설업을 하는 남편이 결혼한 뒤 사우디아라비아로 현장 근무를 떠나는 바람에 새엄마 혼자 아이들과 살기도 했다.
경제적 어려움까지 함께 극복한 삶의 역사가 있어 가능했을 것이다. 기업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지닌 멋진 사업가 우천 오병태 동남주택 회장이 2008년 우천학원을 설립해 2010년 3월 아내를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만들어준 것은. 심지어 서울 서초구 한복판에 자리 잡은 400억 대 동남주택 사옥은 그대로 이 대학원 건물이 됐다(이 얘기를 들은 후배는 탄성을 질렀다. “타지마할보다 멋지다”면서).
●‘팔순 세상의 신입생’이라는 멋진 인생
한국 상담학 1세대인 선생님은 상담이란 좌절한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갖도록 이끄는 학문이라고 본다.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며 진정한 자아실현을 향해 성숙해 나가도록 원동력을 제공해주는 학문이기도 하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의 특별함은 ‘문학상담’ ‘철학상담’ 같은 인문학적 상담에 있다. 선생님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문학상담’을 도입했는데, 내담자들이 인문학적 성찰을 할 수 있게끔 상담자들에게 문학적 통찰력과 표현력을 갖추게 하는 명품 대학원을 추구한다고 말해주었다.
선생님의 남편은 2012년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31년간 행복하게 살았고, ‘그는 내 마음 가는 곳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지금도 선생님은 남편과 함께 사랑 속에서 산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세워준 대학원을 일생의 금자탑으로 알고, 두 사람의 인생을 더 빛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매일매일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일한다는 총장 선생님은 정말 특별해 보였다.
선생님은 필시 전생에 나라를 구한 공주였을 것이다. 이런 사랑, 이런 부부, 이런 삶과 성공은 흔치 않다. 하지만 선생님처럼 ‘환갑을 맞았을 때도 참 기뻤고’ 팔순을 맞아서도 신입생 같다는 마음을 가졌다면 설령 결혼을 안 했어도, 아주 아주 못난 남자를 만났어도 성공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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