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한 국가 두 체제’ 홍콩, 한국의 미래일 수도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8일 14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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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30년 후 북한과 합치기로 예정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돼 문재인-김정은 남북정상은 2049년 ‘합방’을 합의한다(상상이라고 했다).

이미 2000년 6·15선언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는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돼 있다. 단계가 높든 낮든 여기서 핵심은 일국양제(一國兩制·1국가 2체제)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만큼의 자유는 온전할 수 있을까.



●“공화국 모독은 극형에 처한다”

2년 전 우리 신문은 ‘조선자본주의공화국’이라는 책을 출판코너에 소개한 적이 있다. “북한 주민의 생활이 우리와 완전히 동떨어진 게 아님을 보여준다”는 상당히 호의적 내용임에도 북한은 격앙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 명의로 “우리 공화국의 존엄을 악랄하게 중상 모독한 동아일보 △△△기자와 ▽▽▽사장을 공화국형법에 따라 극형에 처한다는 것을 선고한다”고 부르짖었다.

‘조선자본주의공화국’(오른쪽)의 서평을 다룬 동아일보 2017년 8월 19일자
‘조선자본주의공화국’(오른쪽)의 서평을 다룬 동아일보 2017년 8월 19일자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내용을 보면 웃음이 사라진다. “범죄자들은 판결에 대해 상소할 수 없으며 형은 대상이 확인되는 데 따라 임의의 시각에 임의의 장소에서 추가적인 절차 없이 즉시 집행될 것”이라는 선언은 섬뜩했다. 회사에서도 신변보호 요청을 고려했을 정도다. 만약 남북한 특별협정에 따라 북한이 지목하는 ‘범죄자’는 북으로 보내야만 한다면, 소름이 돋지 않는가.

홍콩이 지금 그런 상태다.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때, 최소한 2047년까지는 일국양제에 따라 홍콩의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영국과 협정을 맺었다. 하지만 홍콩이 누리던 자유는 사라진지 오래다.

●법원이 의원직 박탈…법치는 없다

홍콩의 행정수반 직선제를 2017년 허용하겠다던 후진타오 전임 국가주석의 약속은 진작 깨졌다. 2015년 홍콩의 정치서적 판매상들이 중국 당국에 납치됐는데도 속수무책이다. 반환 20주년인 2017년 7월 1일 중국 외교부는 “영-중 공동선언은 더는 아무런 현실적 의미가 없는 역사적 문서”라며 사실상 무효화를 선언했다.

홍콩 거리에서 이달 16일(현지 시간) 범죄인 인도법안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홍콩=AP 뉴시스
홍콩 거리에서 이달 16일(현지 시간) 범죄인 인도법안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홍콩=AP 뉴시스


홍콩 반환 때 영국이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이 홍콩의 법치였다. 특히 ‘범죄인 인도법’에서 중국을 제외한 이유는 중국에선 법이 공산당 아래 있다는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서구처럼 사법부 독립이나 민주주의로 갈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홍콩법원은 합법적으로 선출된 ‘범민주파’ 의원 4명이 의원 선서식 때 홍콩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우산을 폈다는 이유 등으로 2017년 의원자격을 박탈하는 판결을 내렸다.

마침내 홍콩 시민이 일어섰다. 범죄인 인도법에 중국을 포함시키려는 당국에 맞선 것은 홍콩의 자유, 인권, 법치를 위협하는 시진핑에 맞선 것과 마찬가지다. 15일 행정장관이 이 법의 무기한 중단을 선언한 것도 시진핑의 정치적 후퇴로 봐야 한다. 석 달 전 '[김순덕의 도발] 시진핑이 2019년을 두려워하는 이유'에서 언급한대로 시진핑은 올해 운명의 변곡점을 맞은 것이다.

●중국도 망할 수 있다, 소련처럼

나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미-중 무역전쟁은 단순한 무역 분쟁이 아니라 미국이 작심하고 나선 체제 경쟁이라고 본다(김순덕 칼럼 ‘이것은 美中 무역전쟁이 아니다’). 미국 주류세력에 존경받지 못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결국은 소련을 붕괴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듯, ‘또라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아예 해체할 작정으로 세계전략을 구동 중이다.

설마 중국이 망하기야 하겠느냐 싶을 것이다. 소련이 망하기까지 소련붕괴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점에서 위덕대 박훈탁 교수가 선진국 학자들의 최근 저서와 논문들을 참고문헌으로 챙겨 지난 2월 대한정치학회보에 낸 논문 ‘소련붕괴의 조건과 중국붕괴의 가능성’ 은 매우 흥미롭다.

소련(1922~1991년)의 국기
소련(1922~1991년)의 국기


한때 소련은 개발도상국들의 빛나는 모델이었다. 공산혁명 전까진 농업후진국이었지만 미국과 겨룰 만큼 급속히 발전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무엘슨이 1961년 경제학 저서에서 “1990년대엔 소련경제가 미국보다 커질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국가주도 투자가 처음엔 빠른 성장을 창출해도 투자수익은 곧 감소한다. 공산체제의 경직성 때문이다.

소련의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자본과 노동의 투입 증가 없이 발생하는 체제의 생산성)이 1970년대 제로 가깝게, 80년대는 평균 -0.23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총요소생산성 향상이 필수불가결하지만 소련의 중앙계획경제에선 불가능했다. 단기적 성과 달성에 급급한 공산체제의 경직성이 전반적 생산성 향상을 마이너스로 떨어뜨렸고, 결국 소련 붕괴를 초래했다는 거다.

●공산체제는 나라를 질식시킨다

중국도 다르지 않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2007~2012년 중국의 총요소생산성은 마이너스 영역으로 떨어졌다. 붕괴 직전 소련 수준이다. 3년 전에 국제통화금융(IMF)은 2019년 중국에 금융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결국 시진핑이 공산체제의 경직성을 해소하지 못하면, 중국은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붕괴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게 이 논문의 결론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베이징=신화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베이징=신화 뉴시스

물론 중국의 엄청난 인구와 잠재력을 믿는 사람들은 동의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시진핑이 20일 북한을 찾는 것도 미국부터 홍콩까지 전방위로 조여드는 압박에서 벗어나겠다는 몸부림으로 보인다.

중국이 붕괴된다고 해도 그건 공산체제의 붕괴일 뿐이다. 사람 목숨을 우습게 아는, 인권과 자유와 법치를 억압하는 체제가 유교문명이라는 이유로 성공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소련이 망하자 중국으로 달려가 정신적 위안을 찾았던 중국유학 1세대, 좌파 주류세력은 제발 똑바로 현실을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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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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