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아프냐? 나도 아프다”로 끝낼 일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18시 16분


문재인 대통령의 IQ(지능지수)는 모르지만 EQ(감정지수)는 높은 게 분명하다. 취임 직후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 대통령은 민주화 희생자의 따님을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국민은 감동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시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탁현민의 탁월한 연출인 것 같다. 아니면 공감능력만 높고 다른 능력은 없든지. 그렇지 않고서야 북한에 끔찍한 죽임을 당한 공무원의 아들한테 대통령이 달랑 “나도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진 못한다.

북한군에게 피격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의 고교 2년생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낸 A4용지 2장 분량의 자필 편지. 이 씨의 친형 이래진 씨가 5일 언론에 공개했다.  이래진 씨 제공
북한군에게 피격된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원 이모 씨의 고교 2년생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낸 A4용지 2장 분량의 자필 편지. 이 씨의 친형 이래진 씨가 5일 언론에 공개했다. 이래진 씨 제공


● 대통령으로서 책임 통감해야 정상 아닌가
자신을 ‘실종자 공무원’의 아들이라고 밝힌 고2 학생은 “국가는 그 시간에 아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왜 아빠를 구하지 못하셨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아빠를 구하지 못하셨는지’ 구절에서 존댓말을 쓴 걸 보면 “왜 ‘대통령은’ 아빠를 구하지 못하셨는지”라고 대통령에게 물은 게 분명하다.

문 대통령의 답변은 “대통령으로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여야 했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나도 마음이 아프다” 정도는 공감능력 높은 이웃집 아저씨가 할 말이고, 대통령은 국민 보호에 책임을 져야 하는 국가 최고지도자다. 옛날 드라마 ‘다모’도 아니고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니, 무능한 왕의 대사는 진절머리가 난다.

공무원 이모 씨의 아들처럼 나도 죽어도 납득 못 하겠다. 실종 다음 날인 9월 22일 오후 6시 36분 문 대통령은 왜 첫 서면보고를 받고도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나. ‘해상 추락 사고로 실종된 공무원을 북측이 발견했다’고 보고했을 당시는 월북의 ‘월’자도 나오지 않을 때다. 월북했으니 우리 국민 아니어서 신경 껐다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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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과 관련되면 자국민을 포기하는 文정권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을 구출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 관저라서 서면 보고서를 뒤늦게 봤다면 나중에라도 “지금은 어떻게 됐느냐”고 물어야 정상이다. 민간인도 아닌 공무원이 적국(敵國)의 바다에서 실종됐는데 어떻게 일국의 대통령이 궁금해하지도 않고 평화롭게 잠자리에 들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그 똑똑한 고교생이 따진 것이다. “대통령님의 자녀 혹은 손자라고 해도 지금처럼 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번 광복절 기념사에서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지 않았으면 또 모른다. 문 대통령은 2018년 4월 가나 해역에서 피랍된 우리 선원 세 명, 7월 리비아 무장괴한들에게 피랍된 우리 국민 한 명의 구출 등을 줄줄이 언급하며 “그만큼 성장했고, 그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 가지다. 북한과 관련되지 않았다는 것!

6일 조성길 전 이탈리아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지난해 입국 사실이 느닷없이 공개된 것은 정부가 우리 국민을 위협에 빠뜨리는 행위였다. 북한의 공무원 살해사건에서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너무나 비열하다. 작년 11월 남으로 넘어온 북한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는데도 북으로 돌려보낸 것과 다름없는 비인간적 처사가 아닐 수 없다.

헌법상 북한 주민은 귀순 의사를 밝히든 안 밝히든 우리 국민이다. 북한 김정은의 심기를 다치게 할 것 같으면, 문재인 정부에는 자국민의 생명이나 안전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형 이래진 씨(가운데)가 6일 서울 종로구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를 찾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게 보내는 유엔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 요청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요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래진 씨, 하태경 의원. 동아일보 DB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형 이래진 씨(가운데)가 6일 서울 종로구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를 찾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에게 보내는 유엔 차원의 공식 진상조사 요청서를 전달하기에 앞서 요청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 래진 씨, 하태경 의원. 동아일보 DB


● 도끼만행사건이 터져도 文정부는 설설 길 듯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미국식 국뽕이라 해도 부럽기 짝이 없다. 하필 올 광복절 축사에서 문 대통령은 “이국땅에서 고난을 겪어도 국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 국가가 이러한 믿음에 응답할 때 나라의 광복을 넘어 개인에게 광복이 깃들 것”이라고 라이언 일병을 구한 대장처럼 읊었다.

헌법상 북한은 이국땅도 아니지만 북과 관련돼 고난을 겪을 경우, 국가가 구해줄 것이라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북이 제3의 연평해전을 일으켜도 우리 군이 원점 타격 같은 건 안 할 게 분명하다. 괜히 북에 맞섰다가 문재인 정권에 타격당할 공산이 더 클 듯해서다. 만에 하나 북이 도끼만행사건을 저지른대도 문 정권은 미루나무 잔가지 하나도 못 건드릴 게 뻔하다. 문 정부에는 북과 김정은이 가장 중요하기에 문 정부 출범 후 동맹국인 미국과 육·공군훈련 한번 안 한 것 아닌가.

귀한 딸과 손자가 외국서 사는 대통령 내외로선 설령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외교부 장관 강경화 역시 미국서 요트여행을 하는 남편한테 가면 그만이다. 그 밖에도 문 정권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북한 김정은 왕조의 무궁한 영광을 더 위하는 사람 천지다. 북이 그리 좋으면 제발 당신들이 북에 가서 살았으면 좋겠다. 왜 엄한 우리 국민을 괴롭히며 혈세를 써대는 건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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