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언(直言)은 쉽지 않다. 신현수 민정수석처럼 직(職)을 걸고 직언을 해도 권력 앞에선 말한 사람만 우스워지기 십상이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조은희가 15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나와 “교통방송을 정권의 나팔수 아니라 시민의 나팔수로 하겠다”고 밝힌 건 용감했다. 심지어 김어준 앞에서, 대놓고 말한 것이다.
김어준은 권력자다. 1년 반 전 ‘나꼼수가 주름잡는 대한민국’(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191023/98032047/1)을 쓴 적도 있지만 지금은 더하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누굴 뽑아야 할지 헷갈린다면 이 프로에 대한 판단을 보고 결정해도 좋을 듯하다.
● 출연자부터 친정부적인 뉴스공장
교통방송을 정권 아닌 시민의 나팔수로 만들겠다는 조은희 말에 김어준은 “그러면 저는 뉴스공장 관둬야 되는 겁니까?” 물었다.
조은희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요.” 김어준 “나한테 잘 보여라(라는 뜻이군요).” 조은희 “대신 진중권, 서민, 서정욱 변호사 코너도 만들면 되죠.”
조은희가 뉴스공장 공장장을 살릴 대안을 제시한 건 중요하다. 김어준을 무조건 퇴출시키겠다는 것도 아니고, 진중권 같은 특정 인물을 출연시키라는 외압도 아니다. 출연진부터 너무나 친정부적이니 균형을 맞추라는 발랄한 제안이다.
당장 뉴스공장 출연자만 봐도 1월 1일부터 2월 23일까지 더불어민주당 의원만 9명이었다. 정청래(민주당)-하태경(국민의힘)처럼 제1, 2당 의원이 같이 나오는 코너나 통일부 장관 이인영,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정세현 같은 정부 측 인사는 제외하고도 지독하게 편향적이다.
● MBC 출신 박영선이 틀렸다
다음 날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조은희처럼 김어준에게 대놓고 말한 건 아니고 다른 방송에서 “방송이라는 건 시청률로 시민의 호응도를 말하는 건데 교통방송 청취율이 굉장히 높은 것으로 안다”며 “한 방송을 시장이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과거 독재정권 시절에나 있었던 발상”이라고 민주화운동 투사처럼 말했다.
언론 자유란 대개 정부 비판언론이 쓰는 말이다. 민주주의란 한마디로 비판이 제도화돼 있는 제도이고, 그래서 언론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고 김영평 고려대 명예교수는 ‘민주주의는 만능인가’에서 강조했다. 더구나 tbs는 서울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대놓고 정부 편향적인 공영방송 뉴스공장은 과거 독재정권 시절 땡전뉴스의 웃기는 버전과 다름없다.
역시 조은희는 지지 않았다. 다음 날 “뉴스공장 패널 구성이라도 살펴보고 말하는 게 도리”라고 팩폭(팩트 폭격)을 가한 거다.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청취율이 좋으니 문제없다거나 공정한 방송이라는 방송사 출신 정치인 박영선 후보의 철학이 안타깝다”며 “서울시장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방송을 들을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정직해야 한다”고 똑 부러지게 지적했다.
● 제1야당 다른 의견은 들을 필요 없다?
교통방송은 서울특별시 산하 미디어재단에서 운영한다. 1년 예산 500억 원 중 서울시 출연금이 2021년 무려 375억 원이다. 국정감사 때 서울시장에게 감독 책임을 묻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울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영(公營)방송이니 정부여당의 사정을 충실히 알리는 게 당연하다는 해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걸 바로 편파방송이라고 한다.
방송법 6조는 ‘방송에 의한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특히 정부 또는 정책 등을 공표하는 경우 의견이 다른 집단에 균등한 기회가 제공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방송법은 적시해 놨다.
뉴스공장은 대통령 신년회견 관전평을 듣는 데도 정의당 의원을 등장시켰다. 올해 두 달이 다 가도록 국민의힘 의원은 단 한 명도 단독으로 나오지 않았다. 미얀마 대학생도 나오는 판에 이 정도면 ‘아무리 느슨한 기준을 적용해도 공정하다고 하기 어렵다’(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관련 방송의 공정성을 분석한 한국언론학회 보고서에서 따온 문장이다).
● 차베스를 숭배하는 사람들 모여라
출연자 균형을 맞춘다 해도 공정성이 확보될지는 의문이다. 김어준의 독특한 캐릭터 때문이다. 무소속의 금태섭 전 의원은 민주당을 극단주의적으로 몰고 가는 음모론자의 대표적 인사가 김어준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예비후보, 국민의힘 나경원 예비후보 역시 교통방송이 취지대로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서울시 조례에 따르면 미디어재단 tbs 사업 중 첫째가 ‘교통 및 생활정보 제공’이다.
하지만 tbs가 김어준을 제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tbs 이강택 대표이사는 “tbs에서 김어준은 한마디로 킬러 콘텐츠”라고 했다. 한국경제에 비유하면 삼성전자 정도의 비중이라는 거다. 뉴스공장이 벌어들인 수입으로 tbs 다른 프로를 먹여 살릴 정도다.
이 대표가 그대로인 한, tbs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언론노조위원장 출신 이강택이 2004년 KBS PD 시절 ‘신자유주의를 넘어―차베스의 도전’을 만든 걸 보면 그의 성향을 알 수 있다. 민주당 예비후보 우상호는 김어준 방송에 문제가 있으면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거를 것이라고 싸고돌았지만 이강택이 차베스 칭송 프로를 만들 때 KBS 사장이던 정연주가 방송통신심의위원장으로 예정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견제할 삼권분립이 무너졌듯, 김어준의 tbs도 견제할 길이 없는 형국이다.
● 방송도 정치도 영원한 권력은 없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웃기는 뉴스공장의 재미를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청취율 높다고 껌뻑 죽는 건 지지율 높다고 문 대통령 앞에서 껌뻑 죽는 풍토와 다르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의 극단주의를 키운 음모론도 그래서 끊임없이 기어 나왔고 종국엔 미국 민주주의까지 뒤흔들었다.
음모론으로 범벅된 인터넷 매체로 시작해 일국의 대통령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김어준은 미국 브레이브바트 뉴스의 스티브 배넌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배넌은 트럼프의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들어가 공적 책임을 졌지, 공영방송 마이크를 쥐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적 영향력을 휘두르진 않았다.
‘트럼프 혁명’을 일으켰던 배넌이 공적 목적을 빙자해 모금한 돈을 빼돌려 구속됐다 트럼프 퇴임 19시간 전에 사면받았다는 사실은 슬프기 짝이 없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한국의 배넌이 진짜 배넌의 운명까지 닮지는 않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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