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이라는 말은 문재인표 관용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대통령 취임사 자체는 명연설이었다. 작년 연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란 부제가 붙은 책이 나왔다. 번득 문 대통령을 연상시키지만 실은 고종에 대한 책이다. 제목은 황공하게도 ‘매국노 고종’.
역사 발굴 기사로 이름난 저자 박종인은 고종을 만악의 근원이라고 했다. “오로지 자기 목숨과 권력과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버렸다”며 서문부터 “누가 고종을 자주 독립을 염원한 개혁 군주라고 찬양하는가” 일갈했다.
고종의 개혁성을 강조해온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가만있지 않았다. 일간지 칼럼을 통해 “고종 황제 무능설은 일제가 1905년 ‘보호조약’ 강제 후 저들의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이라고 지적한 거다.
● 어쩌랴, 역사도 제 눈에 안경인 것을
고종에 대해선 문 대통령도 언급한 적이 있다. 조기 대선이 가시화했던 2017년은 마침 정유년이었다. 유력 대선주자로서 그는 정초 페이스북에 1597년 정유재란과 1897년 정유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를 적시했다.
“2017년 정유년 대한민국은 이순신 장군의 비장한 재조산하(再造山河)와 고종의 이루지 못한 새로운 나라 꿈이 합쳐져 우리 역사상 가장 큰 도전과 변혁이 시작되는 해로 기록될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된다.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는 모든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동등한 주권과 독립성을 갖는 ‘새로운 나라의 꿈’으로 볼 수 있다. ‘매국노 고종’에서처럼 모든 권력과 경제력까지 장악하겠다는 시대착오적 황제의 꿈으로 볼 수도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나 정권 차원의 ‘과거사 바로잡기’가 전체주의로 흐르기 십상인 이유다.
● 과거 뒤집기에 골몰한 무능한 지도자
굳이 밝힌다면 나는 의도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본다. 어떤 멍청한 지도자가 내 나라 팔아 부귀영화를 누리겠다는 의도를 거죽으로 드러내겠나. 사회와 국가는 이상(理想)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역사학자 윌 듀랜트가 알려준 역사의 교훈이다. 자연과 역사는 살아남은 것이 선, 몰락한 것이 악이다. 이 기준에 비춰보면 고종은 선했다고 봐주기 어렵다.
더구나 지리는 역사의 기반이다. 한반도가 일본과 중국,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다는 지리적 영향은 기술이 발달하면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오직 지도자의 상상력과 진취성, 추종자의 강한 근면함만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고 듀랜트는 지적했다.
무능한 지도자가 나라를 망국으로 이끄는 역사의 법칙이 여기서 나온다. 부친 대원군의 10년 집권을 종식시킨 뒤 고종이 한 일이 대원군 정책을 판판이 뒤집는 ‘적폐청산’이었다는 사실은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상상력과 진취성 없는 무능한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밖에 없었던 거다.
● 앞뒤 안 따진 적폐청산… 경제가 파탄 났다
1873년 말 친정을 선포한 고종은 인사부터 대원군과 반대로 시작했다. 영의정 이유원은 경복궁 재건을 놓고 대원군에 반대해 좌의정 직을 박탈당했던 인물이다. 대궐도 대원군이 복원한 경복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겼다.
적폐청산 중에서도 획기적인 건 친정 두 달 만에 선언한 청나라 돈(淸錢) 철폐다. 청전은 돈 풀어 물가를 앙등시킨 대원군의 대표적 악정이었다. 고종이 앞뒤 따지지 않고 폐지하는 바람에 당장 화폐경제가 마비된 것이다. 심지어 왕조가 보유한 재정 비축분은 하루아침에 고철덩어리가 돼버렸다. 적폐청산하다 재정 파탄을 자초했다는 얘기다.
‘매국노 고종’의 부제대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지도자의 적폐청산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문 대통령이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붙인 탈원전정책이 단적인 예다.
군주제에선 왕명이 법이었지만 공화제에선 대통령도 법치 아래다. 문 대통령은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하느냐”는 한마디로 장관부터 공직자들이 줄줄이 법의 담장을 타게 만들었다. 전기요금 인상, 기업의 에너지비용 증가, 탄소배출 증가 등은 온 국민의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온다. 특히 40년 이상 대한민국이 쌓아온 세계적 기술과 원전 인프라를 포기함으로써 북핵 앞에 사실상 무장해제를 자행한 죄상은 언젠가 반드시 규명돼야 할 일이다.
● 고종 때와 달리 우리에겐 선거가 있다
열강의 제국주의가 밀려들던 고종의 시대는 강대국 패권경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오늘의 세계와 다르지 않다. 일본군함 운양호가 강화도 앞바다로 밀고 들어온 1875년, 조선은 재정난도 재정난이지만 뱁새눈에 밴댕이 속으로 방위력도 외교적 선택지도 키울 수 없었다. 대한민국이 그때에 비해 놀랍게 부강해진 것은, 고종이 갔던 길과 정확하게 반대로 갔기에 가능했다.
문 정권은 오늘도 한명숙 전 총리의 전임 정권 때 유죄 판결을 뒤집기에 분주하다. 과거 정부가 어렵게 지켜낸 삼권분립의 법과 제도를 뒤흔들고, 재정은 물론 한일관계를 파탄 내고 한미동맹을 뒤집으려 든다.
조선과 달리 우리에겐 다행히도 선거가 있다. 2020년 총선은 선거법이 뒤바뀌는 바람에(또 솔직히 야당도 문제였다) 정권심판을 피할 수 있었지만 4·7선거는 달라야 한다. 적폐청산으로 망한 지도자를 경험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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