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이맘때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같아선 저 사람이 대통령 되면 우리나라 참 좋겠다 싶은 대선 주자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 맘 속에 있긴 한데 당내 경선을 통과할 것 같지가 않다.
내 안타까움과 상관없이 당내 경쟁을 뚫고 등장할 후보는 사이다 아니면 콜라, 또는 감자 아니면 고구마일 것이다(순서에 의미 없음). 더불어민주당의 사이다 이재명은 요즘 언변이 통쾌하다 못해 잔인해지기까지 해서 불안하다. 국민의힘의 (홍카)콜라 홍준표는 고질적 막말을 못 고치고 있어 볼 때마다 불편하다.
● 청와대가 엄중하게 보고 있다
매사 엄중하게 지켜보기만 하던 민주당 고구마 이낙연이 뒤늦게 드라이브를 걸기는 했다. 시원한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뒤늦게 청와대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메시지도 내놓았다. ‘엄중 낙연’으로선 동아줄이라도 잡은 기분일 것이다. 국민은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다.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건가, 가려서 하라는 건가?
그럼 감자는? 국힘당 윤석열이 감자나 먹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굳이 짜내자면, 감자를 닮았다는 느낌이어서 붙여본 별칭이다(스스로 ‘엉덩이탐정’을 자처했으니 외모 차별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내년 이맘때 우리는 이 중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찍고 싶은 후보가 없어 과거 대통령선택에 관한 논문을 뒤져봤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뭘 보고 투표했기에 이토록 손가락 자르고 싶어 했을까.
● 가장 큰 선택요인은 지역주의
시대정신을 잡는 자가 승리한다고들 한다. 국가비전이나 정책이, 인물이, 구도가 중요하다는 분석도 줄을 잇는다. 다 맞는 말일 게다. 2017년 전임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끝, 3자 구도 선거에서 문재인 아닌 누가 당선될 수 있었겠나(그렇게 뽑은 대통령이 ‘남자 박근혜’처럼 불통이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14대(1992년)~19대(2017년) 대선을 두루 살핀 ‘정체성의 관점에서 본 대통령 후보선택요인’(2020년 강명세) 논문에 따르면 우리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지역주의였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정당정체성을 의미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을 가깝게 느끼는 이들의 특징은 호남이라는 출신지역(또는 거주지역)이고, 이는 진보적 이념과 중첩된다는 거다.
이 지역주의가 2017년 대선에서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영남 출신의 민주당 지지경향이 2000년대 초에 줄어들다가(맞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2012년 대선에서 상승한 뒤 2017년엔 급격히 증가했다. 맞다. 탄핵 때문이다. 그 결과 19대 대선에서 지금의 국힘당과 홍준표는 역대 가장 큰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 흔히 ‘망국적 지역주의’라며 개탄했던 한국적 특성도 탄핵 같은 역사적 사건 아래선 힘을 잃은 것이다.
● 대장동 사태에도 ‘명빠’가 뭉치는 이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민주당은 ‘호남이 미는 영남후보’로 집권해왔다(호남 출신 김대중 대통령 빼고). 사이다 이재명이 TV예능프로 ‘집사부일체’에서 공개한 집 역시 경기도지사 공관도, 분당의 164㎡ 아파트도 아닌 고향 안동의 마을회관이었다. 선거공식을 아는 이재명으로선 자신이 영남출신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해야만 했던 모양이다.
호남 출신 이낙연 총리는 민주당 ‘영·호남 전략동맹’의 충실한 상징이었다. 당 대표에 당선돼 ‘호남 대망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으나 부자 몸조심은 역시 고구마였다. 호남도 계산이 복잡했을 것이다. 광주·전남 순회경선 결과는 눈물겹다. 영남의 아들(46.95%) 아닌 호남의 아들(47.12%) 선택! 바로 다음날 전북은 다시 이재명에게 54%라는 압승을 안겨주었지만.
대장동 의혹 사태가 터지고도(심지어 터질수록) 이재명에 쏠리는 이유가 불가사의한가. 우리 편이 아무리 나빠도 상대편 당선은 더 끔찍하다는 감정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다. 문파가 ‘명파’ 되면서 결선까지 고생 안하게 확실히 밀어주자는 전략적 투표가 더 기승을 부릴 공산도 크다. 최종 경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한다면 광주·전남에 빚지지 않은 첫 민주당 대선 후보가 탄생하는 셈이다.
● 트림 나올까 걱정, 소화 안 될까 걱정
속이 더부룩할 때 사이다나 콜라를 마시면 속이 뻥 뚫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시적 기분일 뿐, 탄산가스 들어간 음료를 계속 마셔 몸에 좋을 건 없다. 소화 장애에다 심하면 역류성 식도질환, 위벽이 상할 수도 있다. 당분과 콜라 속 카페인이 해로울 건 뻔한 이치다. 무엇보다 트림처럼 못 참고 터져 나오는 ‘삑사리 정치’는 국민적으로 창피하고 국가적으로도 위험하다.
그렇다고 고구마나 감자가 안심스러운 것도 아니다. 고구마의 운명이야 며칠 새 결정되겠지만 감자 역시 검찰총장 시절 집권세력에게나 지금 야권지지층에게나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다. 뱉자니 정권교체 실패할까 걱정이고, 삼키자니 체할까봐 걱정스럽다(요즘 ‘대깨윤’은 대깨문 뺨치고 있다).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싶진 않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가 제3후보를 외치며 나오진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가 희망이던 때는 지났다. 광 팔고 정권교체에 기여하면 몰라도 잘못하면…괜히 역적이 되는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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