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당당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한푼도 챙기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한 달 전 경선 때 “단 1원이라도 부당한 이익을 취했으면 후보 사퇴할 것”이라고 큰소리 쳤을 거다.
야당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이재명을 앉혀놓고 ‘그분’이 누군지 자복하라고 호통 친 것도 작전 미스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노동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다. 부패 잡는 시민운동을 하다 정치에 뛰어든 이재명이 미쳤다고 표 나게 돈 받아먹겠나?
대장동 의혹을 파악하려면 이재명이 20여 년 전 파헤쳤던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괴물을 공격하다 괴물이 돼버리는 것처럼 파크뷰에서 배운 교훈을 대장동에 적용하는 비극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용도변경’이다
‘고위공무원 판검사 국정원직원 등 130여명 분당 고급아파트 특혜분양’. 2002년 5월 3일 동아일보 1면 톱기사다.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탄원서를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한 충격적 기사였다.
분양 첫날부터 1만 명이 몰렸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일부가 빼돌려졌다니! 국민은 분노했지만 성남의 시민운동가 이재명은 혀를 찼다. 특혜분양은 지엽 말단일 뿐 진짜 문제는 용도 변경이라는 거다. 2017년에 낸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선 이렇게 썼다.
‘2000년 5월 성남시는 주민 여론조사를 조작하면서까지 분당구 백궁·정자지구 중심상업지구를 아파트 단지로 바꿔주었다…나는 이 사업이야말로 성남시가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권력을 통해야 용도변경 가능
용도 변경이 중요한 이유는 노다지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대장동도 처음엔 고속도로에, 터널에, 반딧불이 서식지와 인접해있어 2015년 환경영향 평가는 개발밀도를 낮추라고 돼 있다. 중대형 아파트만 지어선 분양도 힘들고, 돈이 안 될 게 뻔하다. ‘권력’은 이럴 때 필요한 것!
유동규가 개발본부장으로 있던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이 택지의 전용면적 조건을 과감히 변경한다. 85㎡초과 중대형 아닌 4인 가족에 알맞은 85㎡이하로 바꾼 거다(성남시장 이재명이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바지저고리다). 화천대유는 대장동 택지 5곳 모두 30평형 이하 중소형을 적용받았고, 결과는 완판이었다.
성남 백현동 ‘옹벽 아파트’도 제2의 대장동 사태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 깎아지른 옹벽이 버티고 있어 도저히 아파트 못 지을 ‘녹지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나 올려 사인했다는 거다. 부동산업체는 2년이나 아파트 못 짓다 2015년 이재명의 선거운동본부장 출신을 영입했더니 금방 용도변경했다는 환상적 성공스토리가 나돈다.
정치와 권력, 그리고 선거
여기서 ‘선거’가 등장한다. 정치인에게는 돈보다, 집권보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당선이 제일 중요하다. 다시 파크뷰 사건으로 돌아가면, 아파트 못 짓는 상업용지를 사들였다 용도 변경을 성사시킨 개발사가 에이치원이라는 급조된 업체였다.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은 당연히 홍원표 에이치원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1998년 성남시장) 선거 때 홍 사장이 직원들한테 휴가를 보내서라도 (나를) 지원하겠다고 한 건 사실입니다. 직원들이 나가 홍보한 거지요. 아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지지하라고.”
2002년 5월 성남시민운동의 이재명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김병량 시장의 전화통화 녹음테이프를 공개해 버린 거다. 홍 회장이 다음달 실시될 지방선거에서도 김 시장의 선거를 돕겠다고 충성 맹세한 육성도 들어가 있다. 용도 변경이라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뭘 못하겠는가.
이재명 선거와 유동규와 대장동
19년이 흐른 2021년.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15일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2014년 4월 남욱 변호사가 성남 대장동도시개발추진위원회 간담회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이재명 시장이 (재선) 되면 아주 급속도로 사업 진행 추진이 빨라질 것 같다. 다른 분이 되면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당시는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 정도면 이재명을 찍으라는 노골적 선거운동 아닌가?
결국 이재명이 파크뷰에서 배운 건 부동산과 선거, 그리고 권력의 끈끈한 관계 아닌가 싶다. 거미줄 같은 생명력을 지닌 그는 죽기 살기로 뛰어 성남시에서 경기도를 거쳐 마침내 청와대 턱밑까지 살아왔다. 다시 파크뷰로 돌아가 보자. 파크뷰 개발회사가 H1이었음을 기억하는가. 유동규가 실소유주인 회사 이름이 우연찮게도 유1홀딩스였다.
대선 1년 전에 터진 대장동 게이트…진상은 규명될 수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이재명은 유동규와 일면식도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사코 측근설을 부인했던 이재명은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마침내 “제 선거를 도와준 건 맞다”고 인정을 했다. 그러면서도 “충성을 다한 게 아니라 배신한 것”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이재명 선거를 도왔던 유동규가 검찰 압수수색 때 약을 먹었다고 이재명이 발설한 것은 실수였을까. 그가 극단적 선택을 ‘당했다’고 믿고 싶진 않다. 이재명의 형 고 이재선 씨가 2012년 6월 5일 이재명 부인 김혜경씨와 했다는 통화가 떠오른다. “(이재명이) 파크뷰를 반대했는데 뭐하러 대장동 개발을 하느냐” “유동규 뭐하던 사람이냐” “이재명이 옆에는 전부 이런 사람(유동규)만 있어요. 협박하고…”
용도변경까지 해주면서 에이치원 대표에게 떼돈을 벌게 해줬던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은 결국 무사하지 못했다. 선거 때 자기를 도와준 건축사무소에 파크원 설계용역을 주라고 에이치원을 압박한 혐의로(제3자 뇌물수수) 2007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 받은 것이다(그럼에도 당시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은 대선 비자금의 진상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고 개탄했었다).
여당 대선후보가 된 이재명이 내년 3월 대선에서 당선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돈만 뇌물이 아니다. 땅덩어리가 꿀단지고, 주민은 그저 표밭에 불과하다면,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면 된다. 괴물을 공격하다 스스로 괴물처럼 되어버린 정치인을 당신은 대통령으로 뽑을 자신이…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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