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이 사법시험에 아홉 번 떨어졌다는 건 유명하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와 충돌하던 검찰총장 시절 “사시를 9수해서 내 인내심은 갑(甲)”이라며 받아넘겼다는 것도 유명하다.
하지만 문파 황교익이 지적했듯, 웬만한 재력 집안 아니고선 사시 9수는 쉽지 않다. 너덧 번 떨어지면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포기하고 일자리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흙수저 출신’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도 “단기간에 사법 고시에 합격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서 고백했었다.
● 국민의힘 벌써 배가 불렀다
굳이 아픈 과거를 들먹이는 건 윤석열이 배가 불러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내년 대선쯤 패배해도 괜찮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부인이 재력 집안이니 사시 9수 하듯 대선 9수를 할 참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후보는 ‘문고리 3인방’ 원성을 듣고도 외면하고, 당 대표는 중2처럼 연락을 끊고 후보 따로 대표 따로 콩가루당이 될 순 없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내고야 말겠다고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이다. 대선에서 망해도 지방선거에서 공천만 따면 장땡이라고 눈이 벌겋지 않다면, 저렇게 자리다툼이나 하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애타는 건 오히려 국민들이다. 윤석열이 좋아서 정권교체 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권세력 잘한 것 없고, 그런데도 당당하게 정권 연장 꾀하기에 못 살겠다 갈아보자 싶은 거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내년 대선에서 실패한다면, 그때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할 염치도 없으니 차라리 이대로 서서 죽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신들이 국민에게 이럴 순 없다.
● 2002년 초 ‘이회창 대세론’처럼
2002년 대선이 치러지기 24일 전까지 선거를 주름잡은 건 ‘이회창 대세론’이었다. 민주당은 4월과 8월, 10월에 각각 이회창 10만 달러 수수설, 이회창 부인 기양건설 뇌물 수수설, 김대업의 이회창 두 아들 병풍(兵風)을 각각 터뜨렸다(그 설설설은 수사와 판결에서 모조리 거짓말로 밝혀졌다. 물론 대선이 다 끝난 뒤였지만).
이회창을 누른 것은 선거 24일 전 전격 실시된 노무현-정몽준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승부수였다. 물론 그 전까지 야금야금 이회창 지지율을 깎아먹은 것이 있었다. 그가 2017년 회고록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선거를 실제로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능력과 ‘이미지’ 연출이라는 거다.
이회창 말씀이 20년 전 교훈이긴 하다. 우리가 탁현민의 연출에 이미 질려 있어서 이재명의 쇼가 빤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고만큼의 설득도, 이미지 연출도 못하는 정치인이다. 같은 당 젊은 대표 이준석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030을 설득한다는 건가. 문고리에 둘러싸인 왕(王)의 이미지로 감히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가.
●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 리더십이다
이 모든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다. 개인, 학연, 지연, 파벌, 친소관계 등 모든 사적 이해관계를 희생하고 오로지 공적 영역만 중시하는 것, 즉 지금 국민의힘으로선 정권교체를 위해서 무조건 포용하는 것이 정치이고, 당장 윤석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안타깝게도 대선에 도전한 이후 윤석열은 우리에게 어떤 설득력도, 리더십도, 감동도 보여준 적이 없다. 지금이 바로 그것을 보여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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