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중동 해외 순방(15~22일)을 마친 뒤 금주 중으로 신년기자회견 일정을 계획했다”며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현 상황에서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설 연휴가 끝나봤자 2월 3일이다. 그런데 박수현은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2월 15일부터 대통령 공직선거운동이 시작된다”고 납득 못할 소리를 했다. 2월 3일 다음이 15일이라니, 그의 눈앞에 달력을 들이대 주고 싶다.
박수현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해주시는 언론인 여러분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가 여의치 않게 된 점이 매우 아쉽다는 말씀드린다”고 했지만 그게 아닌 듯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은 기자회견하기 싫은 것이다.
● 기자들이 오미크론 우세종인가
문 대통령이 오미크론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신년회견을 취소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15일 무려 6박8일간 중동 3개국 순방길에 나설 때 이미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우려되는 만큼 국무총리 중심으로 방역 상황을 잘 챙기라”고 환송 나온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국민에게도 방역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렇게 우려스러웠다면 중동순방을 떠나지 말고 청와대를 지켰어야 했다. 순방은 순방대로 다 하고 와서는 뒤늦게 오미크론 대응을 하겠다며 기자회견까지 취소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자들이 무슨 오미크론 변이 우세종 대마왕이라도 된단 말인가.
게다가 문 대통령은 박수현을 통해 24일 “총리가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총력 대응해 새로운 방역 치료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시까지 내렸다. 그럼 됐지 무슨 대응을 더 집중한다고 신년회견까지 취소한단 말인가. 임기 마지막 신년회견에서 나올 질문이 그렇게 겁나고 두려우신가.
● 선거관리위원회가 일어섰다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사표 반려로 위원직을 유지했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2900여명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떠밀려 재차 사표를 내고, 중동 순방 중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사표를 수리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바로 며칠 전에 벌어진 것이다.
나는 3년 전 ‘김순덕의 도발’ 첫 회 ‘독재자 감별법을 아십니까’에서 문 대통령이 대선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를 인사 청문회도 없이 임명 강행한 것을 독재자 조짐으로 소개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3년 간 그는 선관위가 불공정하다는 오명을 얻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히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63년 선관위 설립 이래 전 직원이 조해주의 사퇴를 촉구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선관위는 살아있었던 것이다!
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든, 문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설명과 사과 요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자폭을 해야 마땅하다. 그 기회를 청와대가 신년회견 취소로 원천봉쇄하고 만 것이다.
●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들
기자회견이 별것 아닌 듯해도...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다. 문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때로는 가슴이 철렁해지게 물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우파도, 좌파도 아닌 ‘시민’이기 때문이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선관위 전 직원들이 조해주 재임명에 반대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님께서는 국민 앞에 사과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기자들이,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을 독자들이 여기 아래 댓글로 달아주면 어떨까 싶다. 청와대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년회견을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싶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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