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위기의 민주주의’라는 영화 보셨습니까.”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시절 이재명은 브라질의 이 다큐멘터리를 종종 언급했다.
“검찰을 이렇게 키워서 ‘국물도 없다’ 이런 소리를 하면서 국민 갈등 시키고 증오하게 하면, 민주주의 위기가 경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동의하느냐.” 2월 22일 대선 TV토론에서도 그는 국민의힘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따졌다.
다음날도 그는 인천 부평역 광장 유세에서 검찰과 판사가 권력을 찬탈했다는 식으로 이 영화를 말했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이 문재인 정권의 막판 핵으로 떠오른 지금, 검찰이 나라를 뒤흔든 브라질과 이 다큐멘터리가 새삼 관심을 모으는 모양이다.
● 룰라의 노동자당 부패는 사실이다
브라질을 모르면, 이재명 말이 맞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다. 영상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이 죄 없이 잡혀가고,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죄 없이 탄핵당하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룰라 재임 시절, 핵심 측근과 노동자당이 부패한 건 사실이다. 남미 최대의 건설사인 오데브레시는 룰라와 호세프 재임 기간 33억9000만 달러(약 3조9000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국내외 정치인과 정치 관료들에게 제공했었다.
여기엔 룰라와 호세프도 포함된다. 미 연방법원은 해외부패방지법 위반으로 오데브레시에 최소 35억 달러의 벌금까지 선고했다. 브라질 검찰이 이를 밝혀낸 일련의 과정이 ‘라바 자투’, 일명 세차 작전이다.
● “검찰이 대통령 권력도 찬탈한다”
룰라의 첫 임기 때 노동자당은 정책 지지 대가로 여야 정치인들에게 불법으로 매달 공금을 주는 ‘큰 용돈(mensalao)’ 관행을 확립했다. 물론 룰라는 “몰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룰라는 퇴임 후 태연히 오데브레시 돈으로 남미 여행을 다녔다고 4월 9일자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보도했다.
다큐멘터리 속 호세프는 탄핵을 당하면서도 황당하다는 듯 웃는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재정적자가 급증하든 말든, 예산집행법까지 위반하면서 극빈층 지원을 계속하는 대통령이 온당한가.
호세프는 그렇게 했다. 룰라가 복층 아파트 뇌물을 안 받았다고 해서 오데브레시 스캔들이 조작된 것도 아니다. 이재명이 다큐멘터리 한편만 보고 “판검사들이 룰라한테 없는 죄를 뒤집어씌워 권력을 찬탈했다”고 하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판도라’ 영화 한 편 보고 탈원전 정책을 강행한 것과 다름없다.
● 군사독재 경험하고도 검찰을 끼고 있나
심지어 다큐멘터리의 탈을 쓰고 사실을 왜곡시키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군사독재를 경험한 국가들의 민주화 이후 검찰개혁’이라는 조희문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의 2017년 논문에 따르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는 모두 개헌을 통해 검찰을 헌법상 독립기구화했다. 다시는 ‘정권의 개’ 역할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만 검찰이 대통령의 영향력 내에 있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다.
룰라 재임 초기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브라스 스캔들을 중심으로 수사하다 정치권으로 수사가 확대됐고 룰라를 비롯한 전·현직 대통령과 정치권이 연루된 것이 확인됐다. 이처럼 대통령까지 수사가 신속하게 진행된 것은 자백을 하는 대가로 형량을 조절하는 플리바기닝 제도가 큰 몫을 했다는 분석이다(한선희, 이충열 2020년 논문 ‘엘리트 카르텔과 부패’).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9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검찰개혁을 보고받으며 “검찰은 행정부를 구성하는 정부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대개 민주국가에서 검찰개혁이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한다. 문 대통령이 “검찰총장에게 지시한다”며 사실상 조국 수사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건 소가 웃을 일이었다.
● 검찰은 대통령으로부터 분리돼야
그러나 브라질에서도 현실은 현실인 모양이다. 룰라는 우여곡절 끝에 석방돼 오는 10월 브라질 대선에 다시 출마한다. 라바 자투 역시 동력을 잃고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이미 2003~2011년 두 번의 임기를 꽉 채운 ‘흘러간 물’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 것 같지는 않다. 브라질의 지긋지긋한 부패, 노동자당까지 부자들과 다를 바 없이 더러워진 부패가 사라질 것 같지도 않다. 더욱 섬뜩한 것은 노동자당의 부패를 키운 정치 구조가 다당제, 개방명부식 비례대표제 즉 민주당이 추진하는 것과 같다는 사실이다.
김오수 검찰총장이 17일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추진에 반대한다며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 결기를 왜 진작 못 보여줬는지 안타깝다. 브라질의 라바 자투가 남긴 교훈 역시 검찰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착한 대통령으로부터는 검찰이 분리되지 않아도 괜찮을까? 검찰 출신 대통령으로부터는?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검수완박 강행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건 검찰의 권력으로부터의 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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