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이 22일 내놓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을 여야가 받아들였다. 검찰 직접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에서 경제·부패 수사만 남기고 박탈하되,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 폐지한다는 거다.
그러나 검수완박이 검수덜박(덜 박탈)됐다고 할 수 없다. 핵심이 박탈됐기 때문이다.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던 “문재인 청와대 사람 20명은 감옥 갈 수 있다”는 선거 범죄 수사나 공직자 범죄 수사가 홀랑 빠졌다. 여야가 야합해 정치권에 불리한 대목을 들어내고, 국민 보기 면구스러워 방위사업과 대형참사까지 뺀 ‘검수야합’이다.
이날 김오수 검찰총장과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 현직 고검장 6명이 전원 사직서를 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권력비리 수사를 하지 말라는 뜻”이라는 검찰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검수완박에 앞장섰던 민주당에선 만세를 부르는 모양이다. 그럼 국민의힘이 더불어 찬성한 이유는 뭔가.
● 권력의 속성은 어쩔 수 없다
곧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한다. 국힘은 여당이 된다. 벌써부터 윤 정부 초대 내각과 참모진은 윤 당선인의 친구나 지인 아니면 명함도 못 내미는 ‘그들만의 성역’이 되는 조짐이다.
제발 아니길 바라지만, 내 식구 잘 챙기는 윤 대통령의 ‘형님 리더십’을 믿고 여권 관계자들의 공직자 범죄, 선거 범죄, 방위사업 범죄가 마구 늘어날 수 있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개입과 청와대 하명수사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황운하 의원은 “검찰 수사권을 폐지하면 6대 범죄 수사권이 경찰로 가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고 동료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낸 바 있다. 검수야합이 성사되면 여권 인사 관련 수사도 그냥 증발될 공산이 크다.
민주당이든, 국힘이든 권력의 속성은 결국 마찬가지다. 검찰이든 뭐든 권력을 견제하는 건 싫은 것이다. 처벌받는 건 더 싫다. 권력을 내려놓는 건 죽어도 싫다. 새로 생겨날 중대범죄수사청이 얼마나 수사를 잘할지는 모르지만, 그래봤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휘하에 있다. 우하하.
● 문 대통령 의혹 수사는 완전 봉쇄된다
황운하가 증발될 것으로 예견했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을 다시 보자. 송철호 울산시장은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미 경선 없이 민주당 후보로 결정됐다. 동아일보가 2020년 2월 7일 단독 보도한 공소장에 따르면 송철호는 2018년까지 8번이나 각종 선거에 낙선했지만 현 대통령, 그러니까 문재인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청와대 지원을 이끌어냈고 심지어 재선까지 노리는 상황이다.
작년 4월 검찰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이광철 민정비서관에 대해 “범행에 가담했다는 강한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적시하면서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정권이 바뀌면 재수사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셈이다. 그러나 이번 검수야합으로 공직자 범죄 수사가 제외되는 바람에 조국, 임종석 등과 혹시 모를 그 윗선 수사는 영영 묻히게 됐다.
이뿐 아니다. “월성 1호기는 언제 영구 중단되느냐”는 문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촉발시킨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수사도 막히게 된다. 공교롭게도, 아니 짜고 친 듯, 문 대통령 관련 비리 의혹 수사는 완전 봉쇄되는 것이다.
● 대선 전 윤석열 “검찰은 이재명 사수대냐”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은 대장동 사건과 관련돼 고발된 상태다. 성남시장 시절 대장동 개발사업 민간 사업자인 화천대유자산관리에 개발이익을 몰아줬다는 배임 의혹이다. 문홍성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검수완박이 되면 대장동 수사가 종결될 수 있다”고 했다. 검수야합이 되면 공직자 범죄 수사 제외에 딱 걸린다. 이재명이 드디어 발 뻗고 주무시게 되는 거다.
그런데 이상하다. 윤 당선인은 작년 10월 대선 과정에서 “검찰이 유동규를 기소하며 뇌물죄만 적용하고 배임죄를 뺀 것은 이재명 후보에 대한 배임죄 수사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검찰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모든 것이 계약서에서 ‘초과이익 환수조항’을 이재명과 유동규가 뺀 것에서 비롯됐다. 모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런 것이다. 민간 업자들에게 막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했다.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검찰이 이재명을 지키는 사수대가 됐다”고 피를 토하듯 절규를 했었다. “전직 검찰총장으로서 가슴이 아프다. 문 정권의 거짓 검찰개혁이 이렇게까지 검찰을 망가뜨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치 제 몸이 부서지는 것 같다”는 대목에선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국힘은 당시 “친정권 검사들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했다(결국 11월 1일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은 유동규를 배임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재명에 대해선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아직까지 검찰에는 분명 수사권이 있다. 입때껏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검수완박이 되면 대장동 수사를 못 한다”고 엄살을 떤단 말인가.
● 문 정권이 망친 검찰, 대통령이 돼 살린다고 했다
꼭 반년 전, 윤 당선인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검찰총장 시절 저는, 살아있는 권력도 범죄 혐의가 있다면 수사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불행히도 저의 그런 노력은 문재인 정권의 거센 탄압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 대통령이 돼서 해내겠습니다.”
국민은 그런 윤석열에 감동받았다. 윤석열이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를 만들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좋은 나라, 별것 없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나쁜 짓 하고도 뻔뻔스럽게 잘 먹고 잘사는 꼴을 보면 보통 사람은 정말이지 피가 거꾸로 솟는 것이다.
묻고 싶다. 윤 당선인은 여야가 야합한 검수완박이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한다는 원칙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지. 대통령으로 당선된 뒤에도, 그리고 취임한 뒤에도 검찰총장 시절 가졌던 그 원칙이 달라지지 않는지. 그렇다면 저 거지 같은 검수야합 법안을 진정 “존중”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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