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 노무현은 “당정분리 재검토” 작심토로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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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2월 10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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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팩트를 알게 되면 생각과 주장도 달라져야 한다. 나는 ‘당정 분리’가 민주적 원칙 또는 상식이고 따라서 대통령이 당 대표까지 좌지우지하는 것은 반(反)민주인줄 알았다. 그래서 작년 9월 ‘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고 칼럼도 썼다.

▶[김순덕 칼럼]차라리 대통령이 여당 Chong Jae 겸임하시라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20831/115246267/1

참여정부 출범 때 당정분리를 최초로 도입한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2007년 “당정분리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작심 발언했다는 걸 난 최근에야 알았다(이런…). 그렇다면 당정분리 명분으로 대통령의 당 총재 겸임을 금지한 것도 재검토해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 급히 정당개혁과 민주주의 관련 자료를 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동아일보DB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 동아일보DB
● 바쁘신 분들을 위해 요약하면…
결론은 역설적이고 착잡하다. 바쁜 분들을 위해 전체 흐름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7년 당정분리 실패를 공개 인정했다.

②문재인 전 대통령도 2017년 1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취임 후 당정일체를 실천했다.

③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정당개혁은 한국 정당개혁의 원형이 됐다. 그러나 정당기능과 역할을 축소시키고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반면 세계화 정보화 시대의 네트워크 정당모델이라는 논문도 있다.

④‘정당 민주화’가 포퓰리스트를 등장시켰다는 실증적 해외연구는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목도된다. 도널드 트럼프 같은 포퓰리스트는 강한 정당의 ‘걸러내기’ 기능이 작동됐다면 통과될 수 없는 대통령이다.

⑤대통령제+우리 식 양당제에선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교체를 보장한다. 야당은 똘똘 뭉쳐 정부여당 발목을 잡는데 대통령이 당정분리를 고수하는 건 온당한가.
● 노무현 “당정분리는 책임 없는 정치”
2002년 대선 후보 때부터 당정분리를 주장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는 2002년 12월 26일 대통령 당선자로서 “당정분리가 나오게 된 계기가 대통령이 당 총재로서 당을 지배함으로써 빚어지는 하향식 문화를 막자는 것”이라며 “당정분리는 당직임명권과 공천권을 확실하게 배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개념은 계속 바뀐다. 당 운영에 간섭 않기, 정책은 협의하기, 나중엔 그것도 않기…마침내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에선 이렇게 발언했다.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동아일보DB
2007년 6월 8일 원광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에서 특강을 하고 있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 동아일보DB
‘한국식 민주주의’, 말하자면 후진적 제도 몇 개를 개혁해야 됩니다. 박정희 정권 초기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지요….(중략) 한 마디로 5년 단임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민주주의 선진국 아니다는 증명이고요. ‘X팔린다’는 이런 뜻입니다.

당정 분리, 저도 받아들였고 또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만, 그동안 그랬어야 할 이유가 있어서 당정 분리를 채택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정 분리도 재검토해 봐야 합니다. 책임 안 지는 거 보셨죠? 대통령 따로 당 따로, 대통령이 책임집니까, 당이 책임집니까? 당이 대통령 흔들어 놓고 대통령 박살내 놓고 당이 심판받으러 가는데…같은 겁니까, 다른 겁니까? 어떻게 심판해야 하지요? 책임 없는 정치가 돼 버리는 것이지요.
● 문재인은 사실상 당정일체 운영
정치의 중심은 정당입니다.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 개인이 아니고요. 대통령의 정권은 당으로부터 탄생한 것입니다. 당정분리라는 것도 재검토 해 볼 필요가 있다, 이제는. 지난번까지는 부득이했지만 이제는 넘어설 때가 된 거 아니냐. 왜냐하면 당을 지배하는 제왕적 권리는, 이제 권력의 부작용은 많이 해소됐다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스스로 정치개혁 하겠다며 도입한 당정분리였다. 이게 후진적 제도라고 자백하다니…아무리 말을 함부로 했던 대통령이라 해도 막말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노무현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문재인 전 대통령도 인정했다. 2017년 1월 31일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참여정부가 잘못한 부분 중에 하나가 당정분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왼 쪽은 이재명 당시 경선 후보. 동아일보DB
2017년 3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서 토론 준비를 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왼 쪽은 이재명 당시 경선 후보. 동아일보DB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것은 제왕적 (당)총재가 돼서 공천도, 재정도, 인사도 좌지우지하는 제왕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지 당정간 거리를 두는 당정분리는 정당책임정치라는 점에서 우리 현실에 맞지 않다”고. 심지어 2017년 3월 마지막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토론회에선 “당정일체로 ‘민주당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공언을 했다.
● 정당 실패해도 제왕적 대통령 잘 나갔다
실제로 문재인은 집권 후 그렇게 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 민주당 의원 고민정이 7일 방송에서 여당 당 대표 경선 과정을 언급하며 “문 전 대통령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헹. 인간 기억력을 우습게 보는 꾀꼬리 같은 소리다. 당 전체가 거의 친문이어서 누가 돼도 친문 당 대표인데 대통령이 뭐 하러 경선에 관여하겠나.

2020년 4.15 총선에 출마해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는 고민정 당시 후보. 동아일보DB
2020년 4.15 총선에 출마해 거리에서 연설하고 있는 고민정 당시 후보. 동아일보DB
2020년 총선 공천도 그렇다. 고민정 자체가 당정일체의 증거다. 그럼 아나운서 말고 다른 경력도 없는 고민정이 무슨 수로 지역구 공천을 땄겠는가. 2020년 총선 당시 ‘문재인 청와대’ 출신 출마자 무려 30명(민주당 28명+열린민주당 2명) 중 19명이 국회 입성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많은 호위무사를 국회로 보낸 이가 문재인이었던 거다.

개혁의 화신 노무현이 2003년 11월 창당한 열린우리당은 이후 모든 정당의 개혁 모델이 됐다. 그러나 2004년 총선에서만 반짝 성공했을 뿐. 그 뒤로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전연패했고 2007년부터 소속 의원들이 줄줄이 탈당하면서 2008년 총선을 치르기도 전 자멸했다. 제왕적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어지는데도.
● 집권당이 국정파트너가 아니면?
열린당은 대통령에게 당정관계 복원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대통령이 당직이나 공천에 관여하지 않는 건 좋다. 하지만 노무현은 2003년 3월 대북송금특검법안에 거부권 행사 않겠다, 4월 이라크 파병, 2005년 6월 야당과의 대연정을 불쑥불쑥 발표했다. 여당과는 한마디 협의도 없이. 대통령이 집권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게 강원택 서울대 교수 지적이다. 여당 의원이 고무도장에 불과하면 국민이 왜 비싼 세비를 세금으로 바쳐야 한단 말인가?

국가 통치자로서 노무현은 국민을 직접 상대했다. 정당을 기반으로 선거를 통해 집권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책투입을 위한 정당의 역할은 최소화하는 역효과를 낳았다는 분석이다(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

노무현이 열린당을 통해 이루고자 했던 정당개혁과 정치개혁은 이후 정당들에 의식적 무의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고 이는 일종의 원형이 됐다는 연구결과는 의미심장하다(김인균 2020년 ‘3김의 퇴장과 정치개혁 담론, 그리고 정당개혁’) 의정논총에 실린 이 논문은 “이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의 정당이 겪고 있는 여러 문제점들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05년 국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발언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2005년 국민과의 대화 행사에서 발언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동아일보DB
노무현이 불러온, 그래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가장 큰 문제는 노사모, 지못미, 개딸 같은 팬덤 정치다. 당정분리론이 산업사회에서 이어진 전통적 혹은 시대착오적 대중정당모델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인데, 요즘 시대에는 딱 맞는 ‘의원-유권자네트워크정당’모델로 보는 시각도 있다(채진원 2014년 논문 ‘노무현의 당정분리론과 비판에 대한 이론적 논의’).
● 독재자 걸러낼 문지기가 정당이여야
바로 이 때문에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등장했다면 어쩔 것인가. 세계적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9년 ‘도발’ 첫회에서 소개한 그 책)는 정당이, 정당 지도자가 포퓰리스트의 등장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나라마다 정당 민주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대선후보 경선 선거인단을 확대 개방했더니 도널드 트럼프 같은 선동적, 잠재적 독재자에게 홀랑 넘어가더라는 거다. 사회가 분열되고, 극단화 양극화되고,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그 다음이다.

우리나라도 그랬다. 선거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도 유독 ‘촛불혁명’을 강조했다. ‘우리 이니’ 빽을 믿고 언론, 사법부, 검찰, 안보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5년 단임제였기에 현명한 다수 국민이 문 정권을 교체할 수 있었지만 4년 중임제라면 체제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는 ‘책임 정당’이라는 책의 결론과도 일치한다. ‘민주주의로부터 민주주의 구하기’라는 부제대로 강하고 위계적인 정당이 민주주의에는 필수라는 역설적 결론이다.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를 위해 정당 내에서 반드시 민주주의를 해야 할 것까진 없다는 연구결과는…섬뜩하다. 관객에게 최고의 발레를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발레리나의 발은 처참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 “대통령이 여당 수장해야 정당이 바로 선다”
왜 우리는 협치를 못 하느냐고 언론은 참 쉽게 썼다. 정치권도 이유가 있다. 학자들에 따르면 우리처럼 대통령제+기율 강한 양당제인 정치문화가 최악이란다. 이대로라면 내년 총선까지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실패가 곧 정권교체’로 믿고 죽자고 반대만 할 공산이 크다.

문제는 여당이다. 이에 당정분리로 대응할지 당정이 연대해 대응할지 국민의힘도, 대통령도, 보는 국민도 복잡하다. 아니 나라가 잘못될까 걱정이다. 용산이 저 난리인 것도 그 때문일 터다(그래서 분탕질 잘했다는 건 절대 아니다).

여소야대 노태우 정부 시절 정무장관을 지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은 “대통령이 여당 대표로 나서 야권과 협치하라”고 진작 말했다(작년 9월 시사저널). 당정분리라는 명분 아래 대통령이 여당에서 분리됐는데 대통령이 여당 수장 역할을 해야 정당이 정당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론적으론 삼권분립 원칙도 있지만 현실정치에선 혼란을 야기한다며 정치학자들이 좀더 생각해줬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 당무개입, 하려면 당당하고 투명하게
물론 윤 대통령은 당무개입 않겠다고 수없이 공언했다. 그러고도 가만있지 않았음을 국민도 안다. 정말 선의였다고 치자. 그렇다면 당당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하는 게 낫다.

헌법 제7조 2항은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 헌법 아래 2001년까지 김대중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지냈다. 이 헌법 아래서 대통령 김영삼(YS) 신한국당 총재도 1995년 총선 때 원희룡 남경필 홍준표 김문수 이재오 김무성 등 ‘새 피’를 수혈해 눈부신 승리를 이끌어 냈다. YS는 친YS만 공천하는 속 좁은 대통령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일 이번 대표 경선에서 어떤 후보가 당헌 7조 변경을 공약할 경우(대통령의 당직 겸임 금지 조항을 겸임 조항으로), 다음번엔 ‘대통령 겸임 당 대표’가 나올 수도 있다. 혹시 아는가. 윤 대통령이 야당 대표와 동급으로 마주 앉아 제대로 협치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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