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이 자리에 ‘노무현은 “당정분리 재검토” 작심토로 했었다’고 썼다가 목매달 뻔했다. 댓글 수위가 북한 김여정의 “삶은 소대가리…”저리가라였다. 그래도 친윤 쪽에선 반색을 한 모양이다. 윤핵관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3일 “당정이 하나 돼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며 “정당정치의 책임정치가 무엇인지 논쟁으로 승화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도발한 의도가 바로 그거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10일 대통령 당선 바로 다음 날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원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의 사무와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래놓곤 집권당 당 대표 선출에 노골적으로 관여하는 모습을 여러 번 들켰다.
정치인에게는 설명의 의무가 있다. 정 관여하려면 들키지 말든가, 자기 말을 뒤집으려면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래서 차라리 당헌당규를 개정해 대통령이 당당하고 투명하게 당 대표를 겸임하는 게 낫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 누구를 위한 당정분리인가
당정분리가 옳은지, 당정일체가 옳은지는 당정의 입장에선 각각 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민의 편에서 보면 답이 나온다. 작년 4월 22일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중재안 여야 합의 사건을 기억하시는가.
윤 대통령 당선인 시절이었다. 윤핵관 권성동 국힘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중재안을 민주당 원내대표와 덜컥 받아버린 거다. 검찰 직접 수사를 기존 6대 범죄(경제·부패·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에서 경제·부패 수사만 남기고 박탈하되, 중대범죄수사청이 설치되면 완전 폐지한다는 내용이었다. 국힘 의원들도 박수로 추인해 버렸다.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을 친다)”이라며 검찰총장직을 박차고 나온 사람이다. 다수 국민은 “검찰총장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일, 대통령이 돼 하겠다”는 기개에 환호했고,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이 지긋지긋해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문 대통령 퇴임 직전 민주당이 급살 맞게 밀어붙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대로 갈 경우, 6대 범죄는 경찰로 넘어가 수사되는 게 아니라 그냥 증발한다는 분석이 쏟아지면서 국민 분노가 날로 타오르는 것이었다.
● 국민의 편에 서면 답이 나온다
그러자 당선인 반응도 달라졌다. “여야 합의를 존중한다”(22일)→ “일련의 과정을 국민이 우려하는 모습과 함께 잘 듣고 지켜보고 있다”(24일)를 거쳐 25일 “헌법가치 수호가 정답”으로 급선회한 거다. 결국 국힘은 ‘법안 전면 재검토’를 선언했다.
26일 당선인 대변인이 강조했다. “당선인은 원내대표로부터 상황을 보고받은 것이지 어떠한 개입이나 주문을 한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다시 드린다.” 여기서 윤핵관의 위험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성동은 대통령의 관심이나 국민 이익보다는, 자기 이해관계(과거 검찰 조사받은 경험 등)를 먼저 따져 합의안을 받았다. 국힘도 윤핵관이니 당선인과 교감했겠지… 하고 이를 추인했다. 당선인은 내 사람이니 잘 했겠지… 싶어 대충 들었을지 모른다. 심지어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국민투표가 필요하다” 식의 엉뚱한 소리까지 던졌다. 윤핵관이라는 무능한 간신배가 존재하는 한,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
당선인이 국민의 편에 섬으로써 상황은 종결이 됐다. 이것이 당정일체다. 퍽 거칠고도 의미심장한 윤석열 당정관계의 전조이자 예고편이었던 거다. 그러나 묻고 싶다. 국민에게 이득이 되는 일이어도 대통령은 당에 관여하면 안 된단 말인가.
● 당정일체가 꼭 옳은 것도 아니다
당정일체가 반드시 정답이라고도 할 수 없다. 군소리 없이 당정일체만 하다 정권을 잃은 문재인 정권을 떠올리면 안다. 2019년 11월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큰소리쳤다. 2020년엔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선 “‘임대차 3법‘을 비롯해 정부의 부동산 대책들을 국회가 입법으로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책은 언제나 반쪽짜리 대책이 되고 만다”고 협박했다.
거대 여당이 “아니되옵니다” 한번 없이 악법까지 통과시켜준 결과, 문 대통령은 매일 신났겠으나 문 정권은 망했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의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이슈’ 연구를 보면, 투표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가 부동산정책 실패였다.
문 정권에서 부동산 정책을 건설교통부도, 민주당도 아닌 청와대가 주도한 것도 비정상이다. 정당법 2조는 ‘정당이라 함은 국민의 이익을 위하여 책임 있는 정치적 주장이나 정책을 추진하고…’로 나와 있다. 민주당이 과연 부동산 정책을 만들고 추진하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대체 대통령 보좌에 불과한 청와대비서실에 왜 정책실장까지 두고 내각을 지휘했는지부터 기형적이었다. 결국 ‘국민의 대표’인 집권당 의원들이 대통령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못했기에 문 정권은 실패했던 것이다.
● 이낙연 당 대표, 통합 메시지 냈다가 사과
문 정권 초대 총리였던 이낙연 당 대표가 제 목소리를 낸 적은 있다. 2020년 1월 총리직을 떠나 4월 의원, 8월 당 대표가 된 다음이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가 됐으니 국민을 내 편, 네 편으로 갈라 자기편만 보며 정치했던 민주당과 차별성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2021년 1월 1일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적절한 시기에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 문 정권 아킬레스건인 ‘통합’의 메시지를 날린 것이다.
결과는 지지율 반 토막이었다. 신중하기 짝이 없는 이낙연이 청와대와 사전교감 없이 대통령 권한인 사면에 관해 공개 발언을 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당정 반응은 싸늘했다. 그해 5월 광주에서 이낙연은 “국민의 뜻과 촛불정신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했다. 아픈 성찰을 계속했고 많이 깨우쳤다”며 사과해야만 했다.
친문 지지자들은 이재명에게 옮겨갔다는 분석이다(그러나 중도 및 보수는 완전 떠나갔다). 대선 과정에서 민주당 후보 이재명은 그 당을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지금은 ‘이재명의 볼모’로 만들고 있다). 그럼 뭐하나. 민주당도 싫지만 이재명은 더 싫다는 유권자가 많은데. 갤럽 대선 사후 조사에 따르면 윤석열에게 투표한 이유는 첫째가 정권교체(39%), 둘째가 상대 후보가 싫어서(17%)다. 결과는 이재명 대선 패배였다.
● 대통령만 기쁘게 하다간 망한다
당정일체로 대통령만 기쁘게 하다간 정권이 망한다. 문재인 정권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당정분리가 옳다는 것도 아니다. 당정분리도 잘만하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딛고 차기 대통령이 될 수 있다. 그게 정권 재창출이다. 하지만 여당 속 야당같이 당 대표가 대통령을 들이받아야만 차기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낙연처럼 실패한 경우도 있다(어쩌면 윤석열처럼 제대로 저항하지 않아 실패했는지도 모르지만).
윤 대통령이 가장 두려워(혹은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이것일 터다. 차기 대통령을 노리는 당 대표가 탄생해 나를 들이받지 않을까 하는 것! 그러나 앞에 구구절절 썼듯, 국민한테 이익만 된다면, 당 대표는 대통령과 당정일체가 되는 게 옳다.
당 대표가 자기 정치 하겠다고 대통령과 각을 세우면, 국민이 용서치 않는다. 공천을 놓고도 마찬가지다. 깜도 되지 않는 인물을 대통령 사람이라고, 당 대표 사람이라고 밀어붙이면, 국민은 반드시 총선에서 표로 심판한다.
● 당 대표가 “아니다” 해야 할 때가 있다
단, 정책이든 인사든 대통령의 방향이 틀릴 경우 당 대표는 “아니다” 말해야만 한다. 그것이 당정분리이고, 견제와 균형이다. 그러려면 주 1회는 정기적으로 회동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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