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거의 국민 기억력 테스트다. “언제 그런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파탄 난 지금의 남북관계를 생각하면 안타깝고 착잡하기 짝이 없다.” “북한의 계속된 도발에 더해 최근의 외교행보까지 한반도의 위기를 키우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9일 서울 여의도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식’에서 인사말로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집권할 때는 남북관계가 보드랍기 한량없었는데 최근의 외교행보가 위기를 키웠다고, 윤석열 정부에 대놓고 도발했다. 부탁한다. 그렇게 잘했다면 정계 복귀하시라. 그리하여 과거의 태평성대를 재현하시라고 말이다.
● 남북관계 파탄은 문 정권 때다
사실을 적시하건대, 남북관계가 파탄 난 것은 문재인 정권 때였다. 이건 역사왜곡이고 뭐고 없다. 문 당시 대통령(너무 길므로 이후 文으로 표기)이 애면글면 노심초사 성사를 원했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비핵화 협상이 ‘노딜’로 끝난 다음, 북한 김정은이 관계를 끊어버린 거다.
북-미 회담장에 김정은이 들고 나간 건 영변 핵시설 해체, 달랑 한가지였다. 낡아빠진 영변 시설 폐기를 대가로 미국한테 대북 제재 해제와 김정은 체제 보장 등 자기네가 원하는 걸 모조리 얻어낼 심산이었지만 트럼프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영변 말고도 더 많은 핵을 제조하는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음을 훤히 꿰고 있어서다.
북에 복귀하자마자 김정은은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에서 북측 인사들을 철수시켰다(2020년 6월엔 시설 폭파).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文이 “남북 평화경제”를 외치자 바로 다음날 북조선은 그 유명한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하늘을 보고 크게 웃을) 노릇”이란 조롱을 퍼부었다.
● 삶은 소대가리는 왜 북을 감쌌나
그 소리에 文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기억하는가.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신중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이고. 대통령이 그 반의반이라도 나라의 안보와 국민안전을 걱정했다면 그딴 소리는 못했을 것이다.
우리 공무원이 서해에서 북측에 피살당한 것이 2020년 9월 22일, 꼭 3년 전이었다. 그 시각 文은 관계장관회의 결과 보고를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녹화 방송된 유엔 연설을 통해 북이 오매불망하는 종전선언을 선전하고는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잠꼬대같은 종전선언에 국제여론이 호응할 리 만무다.
퇴임 전까지 文은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했다며(개뿔이다), 영변 핵시설만 폐기되면 북핵 비핵화는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거라며(이 역시 못 믿는다), 한미동맹이 거의 와해될 만큼 미국에 끈질기게 대북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그때 만일 트럼프가 문-김에 넘어갔다면, 아니 만에 하나,내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다면 북조선은 꼴랑 영변 폭파로 대북제재 해제 등 모든 걸 얻어내고, 우리는 발가벗은 채로 북한과 맞서게 될 판이다.
그래서 정말 궁금한 거다. 자유지수로 치면 세계 끝에서 세 번째인 북조선으로부터 ‘삶은 소대가리’ 소리까지 들음으로써 文은, 그를 안 뽑은 국민까지 삶은 소대가리 밑에 산다는 치욕감을 갖게 만들었다(프리덤하우스 2023년 세계자유보고서. 210개 국가 중 꼴찌는 남수단과 시리아, 꼴찌에서 두 번째는 투르크메니스탄). 삶은 소대가리는 왜 애먼 국민에게 굴욕감까지 주면서 그토록 북한을 싸고돌았던 걸까.
● “리영희 제자들이 남측 쥐고 흔든다”
여기서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을 했던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민·형사재판에서 2022년과 올해 최종 무죄판결을 받았음을 굳이 언급하고 싶진 않다(훗날을 위해 기록해두자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1부는 2023년 9월 8일 파기환송심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지칭이란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에 대한 비판적인 문제제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문 전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만을 부각해 표현의 자유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다만 文이 ‘대학 시절 나의 비판의식과 사회의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분’이라고 했던 리영희가 2007년 북측 인사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내가) 20~30년 길러낸 후배·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나중에 대통령이 된 文이라면? 文이 존경하는 또 하나의 인물이 통일혁명당 연루자 신영복이고 새천년민주연합이란 당명도 그가 작명한 대로 더불어민주당으로 바꿨다면(그의 저서 ‘더불어숲’에서 따왔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따왔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운동가로 위장”
스무 살 안팎에 좋아했던 음악은 평생 심장을 뛰게 만든다. 젊은 날 빠졌던 이념도 마찬가지다. 중국 문화혁명을 찬양한 리영희처럼 文은 대통령 시절 중국 주석 시진핑에게 “중국은 높은 산봉우리, 우리는 작은 나라”라고 속국같은 소리를 했다. “레닌은 소련인민에게 빵을 제대로 주지 못했으나 삶의 의욕과 꿈을 주었고 스딸린은 빵과 함께 이데올로기를 입에 넣어주었다”고 ‘전환시대의 논리’에 썼던 리영희처럼 文은 “한반도와 유라시아 공동번영”을 외치며 남북러 삼각 경협에 골몰했다.
같은 의식, 같은 이념을 지닌 친문세력이 아직도 곳곳에서 윤석열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여의도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연구기관, 노동계와 일부 매체까지 먹이사슬을 놓치지 않으려 죽을 힘을 다하는 모습이다. 그래서 ‘공산전체주의’ 소리가 나오는 거다. 윤 대통령이 “공산전체주의 세력이 민주주의 운동가, 인권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고 거칠게 공격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文은 현 대통령의 이런 공격에 마침내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하필 북한과 손잡았던 9·19 기념식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 좋았던 것을 확인했다”고 강조를 했다. 전술적 착오다.
● 총선-대선에 나와 평가 받으라
집권능력이 그렇게 출중했다면, 文은 책방이나 하기엔 아까운 초능력자다(드라마 ‘무빙’ 보셨는지? 북한 기력자들은 우리 초능력자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내년 총선에 출마하기 바란다. 정치 1번지 종로도 좋고, 당신의 본거지 양산도 좋다. 어차피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체제로 총선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게 여의도로 복귀한 뒤 대통령 중임제로 개헌을 주도해 다시 이 나라를 맡아도 될지, 국민 평가를 받기 바란다.
말이 안 된다고? 전직 대통령이 막대한 연금까지 받으면서 현실 정치에 따박따박 훈수 놓는 전례는 있었던가? 자신 없으면 제발 입을 닫으시라. 그게 싫다면 월 1400만원에 세금 한 푼 안 내는 연금이라도 반납하시라. 안 그래도 피곤한 다수 국민의 눈과 귀를 더 괴롭히진 말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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