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는 애먼 선거다. 원인 제공자인 김태우 전 구청장이 또 출마한 것이 곱게 보이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5월 대법원 유죄 판결로 자리에서 내려온 선출직 공직자가 석 달 만에 광복절 사면복권을 받고, 두 달 뒤에 바로 그 자리로 보선 공천을 받는것도 전례가 없다.
하지만 김태우가 구청장직을 잃은 이유를 따지고 들면, 이 선거는 달리 보인다.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김태우는 2018년 당시 조국 민정수석의 감찰 무마 사건과 민간인 사찰 등 ‘김태우 리스트’를 폭로한 공익제보자였다(문 정권 국민권익위원회도 인정한 바다).
‘문재인 청와대’는 가만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의 유전자에는 애초 민간인 사찰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흑석거사 맞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 김의겸이다)은 그때도 허랑방탕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이 더불어 호기롭게 김태우를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고 2023년 마침내 ‘김명수 대법원’은 유죄 판결로 구청장직을 박탈했던 거다.
● 강성 좌파 대법관의 “유죄 확정”
김태우의 공익제보는 거짓이 아니었다. 조국은 유재수 당시 부산 경제부시장의 뇌물수수 감찰 무마가 사실로 인정돼 지난 2월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의 주인공 유재수는 3월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김태우가 폭로한 환경부 ‘블랙리스트’도 진짜였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2021년 1심에서 법정구속 됐다.
그러니 기막힐 노릇 아닌가. 김태우가 입 다물고 있었으면 문 정권은 비리 없는 순결한 집단으로 역사에 남을 뻔했다. 그래서 이번 선거는 ‘김명수 대법원’ 심판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다. 이영작 전 한양대 석좌교수는 “문재인 정권, 김명수 사법부의 희생양이 김태우”라고 했다. 단순히 “김태우를 다시 구청장으로 뽑아달라”고 할 게 아니라 “문재인, 김명수를 심판해달라”고 해야 한다는 거다.
김태우에게 대법원 유죄 확정판결을 때린 주심 박정화는 2017년 6월 문재인 정권 들어 첫 임명된 대법관이었다. 좌파 성향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퇴임 직전의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대통령 취향에 귀신같이 맞춘 모양이다. 최근 동아일보와 서울대 한규섭 교수팀이 분석한 대법관 판결지수성향에 따르면, 그는 7월 퇴임하기까지 -1수준의 강한 진보성을 보였다(지수가 낮을 수록 강한 진보). 강성 순위로 따지면 김영란-오경미(현)-전수안-박시환-이흥구(현) 다음이 박정화다. 공익제보자가 공무상 비밀누설을 했다는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의 하급심 판결을 이런 강성 좌파 대법관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 김태우 사면은 윤 대통령의 승부수
아무리 사법부 판결은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그래서 김명수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다는 거다. 공무원들은 정권 비리를 보고도 입 닫고 있어야 몸보신할 수 있다고 사법부는 땅땅땅 방망이를 두드렸다. 입법부, 행정부는 물론이고 사법부까지, 그렇게 삼권분립을,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대통령이 문재인이다. 그래서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이미 끝장났지만 징글맞게도 흔적을 남기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김명수 대법원을 심판하는 선거라는 얘기다.
(물론 김태우에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기록해 둔다. 대법원은 “범행동기도 좋지 않다”고 적시했다. 문재인 청와대는 김태우가 업자 접대를 받아 감찰받던 중 민간인 사찰을 폭로했다며 ‘미꾸라지’라고 했다. 헹. 그렇게 치면 개인 비리로 인한 구속 수사를 막으려 대선에서 지자마자 보선에 나서고, 당 대표로 나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대왕미꾸라지인가.)
김태우 특별사면은 이런저런 면을 고려한 윤석열 대통령 특유의 정치적 승부수라고 본다. 국민의힘 핵심 관계자는 “공익제보에 대한 사법부 판단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김명수 대법원은 틀렸다는 뜻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9월 김태우 사면에 대한 국회 답변에서 “(윤 대통령이) 조국 전 장관이나 유재수 전 부시장이라든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일부 유죄 확정된 부분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결정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들이 유죄면, 김태우는 깨끗한 거다. 강서구청장 선거에 다시 나가 붙어볼 만하다고 봤을 것이다. 그래서 국힘은 김태우를 공천해 버렸을 터다. ‘일반인의 상식’을 깨고.
●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심판을
나라를 구하는 심정으로 김명수 대법원을 심판해달라는 주장은, 강서구 주민에게 과한 요구일 수 있다. 먹고사는 일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의 이른바 진보(지겹다. 쉽게 말해 좌파)는 호남을 성지(聖地)로 여긴다. 강서구는 호남 지역세가 강한 곳이다. ‘민주당 식민지’처럼 살아온 광주에 괜찮은 쇼핑몰 하나 있던가? 민주당 구청장을 16년씩이나 모신 강서구는 광주와 얼마나 다른가. 하다못해 바로 옆 양천구나 마포구만큼 발전했는가 말이다. 이번이 변화할 수 있는 획기적 기회라면, 잡을 만하지 않은가.
국힘이 하는 일이 매끄럽고 유능한 건 아니다. 윤 대통령이 다 잘하고 있다고 보진 않는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을 엉뚱한 방향으로 몰고 간 문 정권, 사법부에 대한 믿음을 깨뜨린 김명수 대법원, 심지어 ‘개딸 전체주의’를 추종하는 민주당보다는 낫다고 본다. 이번 강서구청장 보선은 정부여당을 정신 번쩍 들게 만드는 이벤트였으면 한다. 강서구 주민들만이 그걸 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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