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제목 아닙니다. 실화입니다(아…좀더 솔직하게 붙이려면 ‘늙은 여자’ 혼자 여행하기라고 해야겠네요). “일기는 일기장에 써랏!”하는 분들은 오늘은 여기서 멈춰 주세요^^. 인터넷 공간 좋은 점이 뭐겠어요. 주말이니 저도 좀 편하게 써보려구요.
실은…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쓸 게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우리 독자님들 좋아하는 걸 쓸작정이었는데(윤석열 대통령 잘하고있다, 이런 거 좋아하시죠?) 대한민국 군 서열 1위인 합참의장부터 육·해·공군참모총장 등등 4성장군 7명을 모조리 파직하고 중장(3성 장군)을 대장으로 전격 진급시켜 합참의장에 임명한 것도 불안불안한 마당에, 그렇게 앉힌 김명수 합참의장 후보자가 근무시간에 50번 넘게 주식거래질이나 했던 사람이라면서요.
심지어 작년 3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쏜 날도 오후에 골프를 쳤다니, 이것만 가지고도 욕이 한 바가지 나올 판이예요(그래 놓고 “참모총장 되면 군대다운 군대를 만들겠다”고요? 자기는 근무 중 실컷 딴짓 해놓고, 군 기강 잡히겠느냐고요. 군필 아닌 대통령이 알 리가 있을까요?).
● 우리는 ‘정치 중독’에 걸린 게 아닐까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윤핵관과 지도부를 향해 매일 ‘희생’을 요구하는 것도 지겹고 괴로워요. TK 꿀단지 비워달라는 건 알겠는데 그럼 그 자리에 누굴 앉힐 건데요? 용산 출신인가요? 아님 검찰 출신? 하이고, 그렇게 잘났고 그토록 잘 해왔으면 당당하게 서울-수도권 험지로 나와야죠. 윤 대통령 얼굴 배지로 만들어달고 나와야지, 왜 안전한 TK에 낙하산 타고 양탄자 깔아 내려 보낼 짱구나 굴리느냐구요.
이렇게 쓰기 시작하면 또 욕이 한바탕 나올 것 같아서 슬픈 거예요. 근데…언제는 국힘이 내 삶에 도움이 된 적 있었나요? 아, 반대로 생각하면 답이 나오긴 해요. 더불어민주당은 그놈의전세3법으로 우리 삶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 게 분명했죠. 그러고 보면 국힘은 민주당의 계속 집권을 막아준것만으로도 고마운 정당이구요. 다만, 더 이상의 기대는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겠다 싶어 또 슬퍼지네요.
어쩌면 우리는 모두 ‘정치 중독’에 빠진 건 아닐까요. 내 문제는 들여다보지 않고, 내가 해결하려고 애쓰지 않으면서 그저 정치 탓, 대통령 탓만 하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내가 살기 어려운 것도 대통령 때문이고,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못(또는 안)하는 것도, 취직 못하고, 집 못 사고, 전세 사기 당하고,아이들 안 낳는 것도 다 정치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거죠. 정치만 잘하면 해결이 될 텐데, 대통령만 잘 뽑으면 졸지에 잘 살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니 얼마나 답답해요!
● 댓글창은 일종의 신경정신과 병원
더구나 윤 대통령은 “국민이 늘 무조건 옳다”고 했어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미국과의 튼튼한 안보동맹을 중시하는 윤 대통령이 우리 궁민(窮民)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준다는 거 아니어요? 그런데 저 거대야당 민주당 사람들이 발목만 잡고 있으니 나라 꼴이 제대로 되겠느냐구요! 화가 나시죠?
그럼 냅따 악플을 달면 된답니다^^ 인터넷 시대, 모두가 섬처럼 외로운 고독의 시대, 정치가 우리의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정치중독의 시대, 악플달기는 스트레스 해소 및 치매예방용 국민 e스포츠로 자리잡았거든요(노무현 시절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라고 욕하던 게 국민스포츠였던 거, 기억나시죠?) 우리 동네 신경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그러더라구요. 모두가 병원에 올 순 없으니까 인터넷 댓글 창에 각자의 욕구불만을 내뿜는 것이라구요.
그러고 보면, 신문 인터넷판 댓글창은 동네 신경정신과 병원 같아요. 우리들의 정치중독을 고쳐주진 못하지만 중독자들을 받아주는 역할은 아주 잘 하고 있죠. 낮엔 하이드 씨였던 분들이 밤엔 지킬 박사가 돼서(사실은 밤낮을가리지않고) 온갖 감정을 쏟아내면 묵묵히 받아주는 거예요.
● 악플의 바다…또는 감정의 시궁창
가슴 가득한 애국심과 울분을 나누고 싶은데 나눌 사람이 없는 분들, 너튜브를 보고선 공감은 했으되 쏟아낼 데가 없는 분들, 그런 분들이 주로 댓글창을 찾죠. 제가 열심히 쓴 기사는 보지도 않고(어쩌면 제목과 이름만 보고는) 냅따 아래로 내려가 다다다 댓글부터 다는 분들도 계시다는 걸 알아요(그래도 고맙답니다 ,하하). 궁민 여러분의 감정 수렴…정치인들은 안하고, 못하는 일을 인터넷 댓글창이 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남의 불평불만 들어본 분은 잘 알겠지만 당하는 사람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랍니다(그래서 의사들도 돈을 받고 들어주는 거에요^^;). 댓글창이 궁민들 감정을 다 받아주는 바람에 그나마 신경정신질환이 이 정도에서 유지되고, ‘묻지마 폭력’도 그 정도 선에서 그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좋게 말하면 바다처럼…거칠게 말하면 감정의 시궁창처럼ㅜㅜ).
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저의 여행 가이드도 그러더라구요 “저도 사람인지라…”) 방향을 180도 바꿔 이번엔 저의 여행기나 쓰기로 했답니다. 죄송하게도 특별한 건 없구요(심심해서 읽은 분들이 아니라면, 제발 여기서 멈춰주시어요). 혼자 다녀왔다는 거예요. 코타키나발루. 3박 5일. 여행사 상품이죠. 저까지 29명이었는데요. 저와 눈이 딱 마주치면 사람들이 그러는 거예요. “혼자 오셨어요? 용감하네…”
● 나홀로 여행? 용감하게, 청승맞게
아프리카 정글 탐험도 아니다. 바람의 딸로 유명한 한모 씨처럼 오지 배낭여행을 한 것도 아니다. 비행기 타고 얌전히 날아가 호캉스 하다가 가이드 따라 낮에는 섬 투어, 밤에는 반딧불 투어하는 여행사 상품을 구입한 거다. 그런데 대체 왜 남들은 날더러 용감하다고 하는 걸까.
혼자 해외출장을 안 가봤으면 또 모른다. 1994년 세계 가정의 해를 앞둔 꼭 30년 전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20일간 혼자 취재한 적도 있고, 2001년 뉴욕 해외연수도 혼자(처음엔 딸과), 2013년 벨기에 연수도 혼자 갔다. 그런데 관광지에 혼자 왔다고 말로는 용감하다면서도 내심으론 여자 혼자 웬 청승? 하는 티가 역력했다. 신문을 그리 열심히볼 것 같지 않은 그들에게 “제가 직업상 혼자 출장도 많이 다녀서요” 할 수도 없다.
학구열에 불타는 나는 돌아와 논문을 찾아봤다. 올해 나온 경희대 이동옥 후마니타스칼리지 강사의 ‘해외 자유여행에서 50,60대 여성의경험:휴식, 치유, 자아인식’이라는 논문을 보니 알것 같다. 비혼이 아닌 여성들은 주로 가족, 대체로 남편과 여행을 하는데 “가족여행에서 여성들은 돌봄(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가족이벤트로 참여한다 하더라도 가족간의 갈등과 불편한 감정을 감수해야 했다”는 거다. 쉽게 말해 아직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여자는 가족과의 여행이 당연했다(무슬림 국가에서 여성은 스카프로 얼굴을 감싸는 것이 의무인 것처럼) . 가족들과 여행하면 엄마라는 여자는 일일히 가족들을 챙겨주거나 신경을 써야 한다. 타고난 여왕님이 아닌 이상.
● 붙어 있으면 싸운다…효도여행이 이혼여행
돈 많은 ‘지갑’과 함께 여행하면 참 편할 것 같긴 하다. “동행없이 여행하지 말라”는 명언도 있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근사한 말도 있지만 “효도여행이 이혼여행 된다” 같은 살벌한 우스개도 있다. 터키를 갔을 때다. 당근 나홀로였는데 관광버스에선 대개 처음 앉은 자리가 고정석이다. 그런데 이튿날 부부끼리 온 분들이 붙어 앉지 않고 뚝뚝 떨어져 앉는 바람에 내가 앉을 자리가 없어진 것이었다(씩씩).
남편이야 인간성은 물론 지갑 사정까지 다 아는 처지지만 친구는 또 그렇지 않다. 친한 친구들끼리 와서도 방까지 같이 쓰며 몇일씩 같이 있다보면 감정을 상하는 일이 없지 않다(주로 여자친구끼리다. 골프여행도 부부동반이지, 남자끼리는 별로 못 봤다).
모녀 사이도 꽤 있다. 나도 딸과 다녀봐서 아는데 애인하고 똑 같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지만 또 애인처럼 싸우기도 많이 싸운다. 애인과 다른 점은 엄마가 일방적으로 구박 받는다는 것. 나도 지난달 제주도 갈 때 공항에서부터 딸과 싸웠다. 저쪽 줄이 짧다고 딸이 먼저 가서 보고는 전화를 해왔기에 허겁지겁 갔더니 어떤 줄인지, 글쎄 애가 안 보이는 것이었다. 막 찾았는데 나중엔 그것도 못 찾는다며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 눈물이 다 나왔다(그래서 이번엔 그런 감정노동 안 하려고 혼자 여행을 했던 것이다!).
● 행복의 비결은 ‘좋은 관계’
물론 혼자 떠나 있지만 마음까지 혼자인 건 아니다. 좋은 걸 보면 딸과 함께 보면 얼마나 좋을까 싶고, 맛있는 걸 먹어도 딸과 먹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그래서 자식의 마음엔 역적이, 부모의 마음엔 충신이 들어있다고 돌아가신 엄마는 말했었다. 눈물나게 아름다운 풍광을 사진 찍어선 결국 보내는 것도 딸한테였다(불의의 비극으로, 내 목숨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에게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고 싶다. 스마트폰 같은 기계를 통해서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족에게로.
그래서 85년간 진행된 하버드대 연구는 인생에 관해 이렇게 한 줄로 요약된다. 좋은 관계는 우리를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해준다. 끝.
요새 핫한 책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탐사보고서’의 핵심이 바로 이거다. 그 좋은 관계가 내 사랑하는 사람들, 특히 가족들과 좋은 관계면 제일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아도 괜찮다. 잘 모르는 사람과 가볍고 친절한 대화를 하는것도 긍정적 경험으로 남는다. 이건 매번, 매일, 매주, 매년, 수없이 새롭게 해도 괜찮은 선택이라고 했다. 그래서 참 다행이다.
사족-‘도발’을 시작한 2019년에도 나홀로 이집트 여행을 갔었다(‘하늘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 저는 지금이집트로 가요’). 마침 생일이 끼어 있는 걸 알고 가이드가 내 방으로 케익 한상자를 보내줬다. 난감했다. 이 큰 케익을 혼자 어떻게 다 먹으라구ㅜㅜ. 그땐 솔직히 안 반가웠다.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관심도(그리고 사랑도)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해야 좋은 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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