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여름, 그러니까 현 정부 집권 초 윤석열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과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을 비교하는 ‘도발’을 두 번 썼다. 성질 급한 독자들은 제목만 보고 냅다 내려가 ‘비교할 걸 비교하라’고 악플을 달았던 글이다. 어떤 분들은 지금도 내가 윤비어천가(尹飛御天歌)를 썼다고 야단을 친다.
내 글에 책임을 지기 위해 다시 들여다봤다. ‘윤석열의 처칠 스타일’을 찬찬히 읽은 분은 알아챘겠지만 괜히 처칠과 윤석열을 비교했던 게 아니다. 대선 후보 시절 윤석열 자신이 처칠을 제일 존경한다고 했다.
5월 첫 국회에선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에 대해 연설까지 했다.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는 다르지만 위기 때 진영을 넘어 손을 잡았던 ‘처칠과 애틀리의 파트너십’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윤석열은 아주 강조를 했다(그렇다면 왜 국회에 군대를 밀어넣었나요? 왜!).
● “검증 못해 몰랐던 그 점 때문에 대실패”
칼럼에서 독자들이 눈여겨 봐줬으면 했던 대목은 ‘두 지도자의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이 과히 호감 받지 못하면서, 평소라면 가능성이 없었는데도, 시대적 상황에 의해 리더가 된 최극단의 리더’라는 점이었다.
끝부분은 거의 예언적이라 해도 좋다. “꼼꼼한 검증과정을 건너뛰는 바람에 발견 못 했던 바로 그 점 때문에 크게 실패할 공산도 크다. 윤 대통령의 처칠 스타일이 재미있고, 또 겁나는 건 이 때문이다.”
탄핵소추의 직접적 이유는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 때문이다. 하지만 집권 내내 뇌관으로 작용했던 대통령 부인 ‘김건희 리스크’였다. 학력과 경력 부풀리기, 석·박사 논문 표절,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급기야 대선 직전 공개된 인터넷 매체와의 통화녹음에서 김건희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 “우리 남편은 바보”…‘윤석열 리스크’였다
그때 우리가 주목해야 했던 건 김건희의 권력욕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놓쳤던 건, 그래서 우리가 검증하지 못했던 건 따로 있었다. “우리 남편은 바보다. 내가 챙겨줘야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지 저 사람 완전 바보다.” 아내가 챙겨줘야만 뭐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윤석열 리스크’다!
실제로 집권 2년 반 동안 용산 대통령실엔 V1과 V2가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았다(나중엔 김건희가 V제로라는 소리까지). 마침내 2024년 11월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김건희는 윤석열의 스마트폰을 보지만 윤석열은 김건희의 폰을 못 본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두 사람의 권력 관계가 그 정도였던 것이다.
2022년 당시, 문재인 정권을 반드시 종식시키고 보수정권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다수 국민은 ‘윤석열 리스크’ 검증을 안 했던 게 사실이다. 아니 김건희 리스크는 몰라도 설마, 서울법대를 나온 검찰총장 출신 덩치 큰 대통령이, 아무리 애처가 아니라 애처증이 심하다 해도 결국 어부인 때문에 계엄령까지 선포했다 탄핵소추 당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 자기 잘못을 고치려 노력해 봤나
‘처칠 팩터’란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가 2014년에 쓴 ‘처칠 팩터(The Churchill Factor)’란 책에서 따온 말이다. ‘처칠 팩터’ 책은 “성격이 운명이라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말에 나도 동의한다”는 서문으로 시작한다.
“영국인의 국민성은 대체로 처칠의 성격과 비슷해서 유머러스하지만 때로 호전적이고, 무례하지만 전통을 고수하고, 한결같지만 감상적이고…음식과 술에 예민하다”고 했다. ‘그렇게 치면 윤 대통령도 조금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무례하지만 전통적이고 한결같지만 감상적이기도 하다는 점 등은 한국 꼰대의 특징 아니던가’라고 나도 덧붙였다.
존슨은 “처칠이 달성한 가장 크고 중요한 승리는 자기 자신을 이긴 것”이라고 했다. 어릴 적 말을 더듬었던 처칠은 이를 고치려고 자신이 존경하는(그러나 사랑은 받지 못한) 아버지의 연설을 통째로 암기하기까지 했다. 부친에게 대학생 때까지 고무호스로 체벌을 받았다는 윤석열은 잘못을 고치려고 노력해 봤는지 모르겠다. 과도한 음주? 입때까지 못 고쳐 ‘음주성 인지장애’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듣기보다 말을 많이 하는 버릇은? 격노는?
● 위험 뚫고 성공한 리더, 고집부리다 망해
처칠이 위대한 리더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잘못을 인정하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소개했다. 그때 대통령 취임 한지 몇 달 안 된 윤석열이 위대한 지도가가 되면 참 좋겠지만 죽어도(아니 적어도) 실패한 지도자는 되지 말라며 이렇게 썼다.
“리더십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최극단의 지도자는 위험 감수를 통해 성공했고, 그래서 지나친 낙관에 빠져 남들이 말려도 자신의 뜻을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중략)특히 잃을 것이 많은 상황에선 조언자의 판단을 따르는 겸손함이 필요하다. 실수를 인정하는 겸허함이 사태를 헤쳐 나가는 결단력과 짝을 이룰 때, 운 좋은 지도자에서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한다는 거다.”
정말 안타깝게도 윤 대통령은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위인이다. 위험 감수를 통해 대통령이 됐지만 바로 그런 성공 경험에 빠져 대다수 국무위원들이 반대했다는데도 비상계엄 선포를 강행해 이 지경이 되고 말았다.
내가 쓴 ‘처칠’만 기억하고 아부하는 글로만 아는 분들이 있어 다시 썼다. 작은 애프터서비스라고 여기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아무리 급해도 다음 대선에선 꼼꼼한 검증을 건너뛰어선 안 된다는 당부를 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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