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4월 11일

친일파를 원숭이에 빗댔다며 동아일보 임원들 몰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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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4월 2일 오후 7시, 경성 남산자락의 음식점 식도원에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와 취체역 김성수가 자리 잡았습니다. 취체역은 이사를 말합니다. 두 사람은 유민회라는 단체의 간부인 이풍재의 초청을 받았죠. 이풍재는 자기 말고도 4명이 더 참석한다고 말했습니다. 다들 도쿄 유학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로 좀 뜸했으니 얼굴이나 보며 회포를 풀자는 취지였죠. 두 사람은 꺼림칙했지만 예전 친분을 내세운 초청을 거절하기도 뭣해 갔습니다. 하지만 함정에 발을 들여놓은 결과가 되고 말았죠.

두 사람이 초청을 꺼린 이유는 3월 25일 ‘각파유지연맹’이라는 단체가 설립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국민협회 조선소작인상조회 유민회 노동상애회 조선경제회 교풍회 동광회 유도진흥회 청림교 대정친목회 동민회 소속 34명이 깃발을 들었죠. 각파연맹은 ①관민일치 시정개선 ②대동단결 사상선도 ③노자협조 생활안정의 3대 강령을 내걸었습니다. 그 속뜻은 ①은 총독부에 협조 ②는 독립사상 반대 ③은 사회주의 배격이었죠. 대신 이들은 일본의 지배를 인정하고 참정권을 달라고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각파연맹이 설립된다는 소문에 비판 사설을 실었습니다. 3월 30일자 ‘소위 각파유지연맹에 대하여’에서는 ‘일본과 융화를 선전하고 알선할 테니 대가를 좀 주시오’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혹평했죠. 3·1운동 후 이들 단체가 일제에 아부하다 용도폐기, 토사구팽 될 듯하자 연맹으로 살 길을 찾으려는 파리떼, 개미떼라고 야유했습니다. 4월 2일자 ‘관민야합의 어리운동’에서는 연맹의 강령은 마치 원숭이가 사람 흉내를 내는듯하다고 비유했죠.

식도원에서 송진우 김성수와 마주앉은 조선소작인상조회의 채기두는 연맹은 돈도 많고 총독부 후원도 막강해 밀약을 맺으면 큰 이익이 된다고 유혹했습니다. 조선자치를 위해 손을 잡자는 제안인 셈이었죠. 하지만 독립이 목표였던 송진우는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채기두는 자신들을 파리 개미 원숭이 따위로 비유한 사설에 시비를 걸었죠. 송진우는 인신공격은 유의하겠지만 잘못된 주장에는 비판을 멈출 수 없다고 맞섰습니다.


곧 옆방에 있던 박춘금 등 약 20명이 몰려왔습니다. 박춘금은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놈은 죽인다”고 소리 지르며 송진우를 때리기 시작했죠. 다른 자들도 폭행과 욕설을 해댔습니다. 박춘금은 김성수에게 권총을 겨누며 당장 쏠듯이 협박했죠. 맥주병을 치켜들고 음식접시를 던지려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난동으로 식도원은 3시간 동안이나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특히 폭행에 앞장선 박춘금은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현지 폭력배와 친분을 쌓은 뒤 1921년 상애회를 만들어 동포의 직업소개에 나섰지만 사실은 폭력·착취조직의 우두머리였죠.

박춘금은 간토대지진 때는 동포 노동자들로 봉사대를 만들어 시체를 처리해줘 일제의 눈에 들었죠. 1924년 경성에 노동상애회를 조직했고 총독부 경무총감 마루야마 쓰루키치의 조종을 받아 동아일보를 상대로 재외동포위문금 중 3000원(현재 약 2700만 원)을 자기 단체에 달라고 괴롭혔습니다. 몽둥이와 단도를 지닌 채 떼를 지어 일곱, 여덟 차례나 몰려와 행패를 부렸죠. 박춘금은 식도원에서도 위문금을 내놓으라고 김성수를 위협했던 것입니다.


송진우는 인신공격은 유감이라는 쪽지를 써줬고 “쏠 테면 쏴라”고 버티던 김성수는 개인 돈으로 3000원을 주겠다고 하고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김성수는 이틀 뒤 3000원을 들고 마루야마 경무국장을 직접 찾아갔죠. “이 돈을 박춘금에게 줄 때 당신이 입회하든지 아니면 당신이 직접 주라”고 말했습니다. 박춘금을 배후조종한 마루야마는 당황한 나머지 일주일 안으로 그를 쫓아내겠다고 약속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폭행 사태는 동아일보뿐만 아니라 우리 언론 전체를 욕보인 만행이었기에 곧 전 언론사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기사입력일 : 2021년 02월 23일
所謂(소위) 各派聯盟(각파연맹)의 暴行事件(폭행사건)
言論冐瀆(언론모독)과 人權蹂躪(인권유린)의 重大怪變(중대괴변)
공공히 도당을 지여 흉긔를 가지고 언론긔관에 공갈 폭행

지난 이일 저녁 경성 남대문통 료리뎜 식도원에서 근일에 생긴 쇼위 각파련맹의 발긔인이 모혀서 본샤댱 송진우(宋鎭禹) 본샤 취톄역 김성수(金性洙) 량씨의게 대하야 동아일보가 각파련맹에 반대한다는 리유로 폭행과 공갈을 더한 일이 잇섯는대 이 일이 본샤 자신에 관한 일이요 또한 당국의 태도도 관망할 필요가 잇서 일시 발표를 유예코저 하얏스나 도리켜 생각건대 이 일은 결코 본샤 자신에만 관계되는 일이 아니라 백주 공공히 도당을 짜아 가지고 흉긔로써 사람을 공갈 구타하야 언론긔관을 모독(冒瀆)하고 인권 자유를 유린(蹂躪)하는 근래의 중대 사변임으로 결코 경홀히 지내여 볼 수 업는 일이며 겸하야 각파련맹의 허황한 선전은 세상의 오해를 일으키고저 하고 또한 각 방면 사회로부터 사실 발표의 희망이 간곡함으로 사실 대강을 아래에 정확히 소개코저 한다.

親日團體(친일단체)의 烏合(오합)
독립사상 사회주의 박멸을표방
소위 친일단톄련맹이 생긴 경과

총독부의 원조 아래에 각종의 친일단톄가 련합하야 단결한 큰 세력을 만들어 가지고 한편으로는 독립운동을 파괴하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운동을 압박할 계획이 잇다는 풍설이 세상에 전하기는 금년 일월경부터 시작한 일이더니 그동안 그 의론이 관계 단톄의 자칭 유지 사이에 진행되야 백작 송병준(宋秉畯)의 계통인 소작인상조회 유민회 교풍회 동광회 등과 민원식(閔元植)의 잔당인 국민협회 등속이 중심이 되야 각파의 합동을 실행하기로 결뎡하고 지난달 이십오일 오후 세시 남산뎡 경성호텔에서 경성시내의 각 신문 통신 긔자를 청하야 놋코 각파유지련맹(各派有志聯盟) 선언식(宣言式)이라는 것을 거행하야 독립사상과 사회주의를 공격하며 총독부를 원조하야 그의 시정을 도읍자는 댱문의 선언서를 발표하고

一(1)、官民一致(관민일치)、施政改善(시정개선)
二(2)、大同團結(대동단결)、思想善導(사상선도)
三(3)、勞資協調(노자협조)、生活安定(생활안정)

이라는 세 조목의 강령이라는 것을 가결하얏는데 당일 그 선언서에 서명한 발긔인의 소속 단톄와 성명을 보면

▲國民協會(국민협회) 金明濬(김명준) 李炳烈(이병렬) 李東雨(이동우) 李永錫(이영석) 禹成鉉(우성현) 高羲駿(고희준) 金丸(김환) 金禹植(김우식) 姜麟祐(강인우)
▲朝鮮小作人相助會(조선소작인상조회) 朴海黙(박해묵) 李東爀(이동혁) 李昌煥(이창환) 李容漢(이용한) 李啓浩(이계호) 羅弘錫(나홍석) 蔡基斗(채기두)
▲維民會(유민회) 朴炳哲(박병철) 李豊載(이풍재) 柳秉龍(유병룡) 金泰勳(김태훈) 閔甲植(민갑식)
▲勞働相愛會(노동상애회) 朴春琴(박춘금)
▲朝鮮經濟會(조선경제회) 朴海遠(박해원) 李升鉉(이승현)
▲矯風會(교풍회) 劉文煥(유문환) 劉秉珌(유병필) 金重煥(김중환)
▲同光會(동광회) 李喜侃(이희간) 鄭圭煥(정규환)
▲儒道振興會(유도진흥회) 鄭鎭弘(정진홍)
▲靑林敎(청림교) 金相卨(김상설)
▲大正親睦會(대정친목회) 芮宗錫(예종석) 千英基(천영기)
▲同民會(민회) 申錫麟(신석인)
등으로 소위 십일단톄의 삼십사 유지련맹이라는 것이 성립되얏다.

二個月間(2개월간)을 繼續(계속)한
박춘금 일파의 위협과 공갈

이 사건의 경과를 말하기 전에 사건의 순서로 먼저 이 단톄에 가맹한 로동상애회 부회댱(勞働相愛會副會長) 박춘금(朴春琴)이가 본사를 위협하든 경과를 대강 소개할 필요가 잇다. 박춘금이가 지난 일월 하순에 경성에 들어온 후 아모 리유도 업시 본사에 와서 저의 단톄를 무시하느니 저의 대우를 낫비하느니 경위도 닷지 아니함을 불계하고 덥허노코 본사와 본사의 간부에 대하야 각종으로 모욕을 하다가 나종에는 본색을 들어내여 본사의 발긔로 금전을 보관하야 잇는 재외동포위문회(在外同胞慰問會)의 돈을 저의 사업에 뎨공하라고 강요하야 본사에서는 이를 거절하얏더니 그후는 도당을 모라가지고 수건으로 머리를 동이고 몽동이를 휴대하고 본사 안에 침입하야 협박을 더하고 혹은 일본 로동자의 복색에 단도를 휴대하고 본사댱을 위협하는 등 저의는 무엇을 밋는 바가 잇든지 청텬백일의 아래 공연히 이와 가치 공갈 위협의 행동을 계속한 것이 전후 이개월 동안에 칠팔차이나 되얏다.

詐欺電話(사기전화)로 誘引(유인)
본사의 사셜에 분개한 련맹에서
흉악한 음모를 품고 뎐화로 사긔

이러한 분자가 모혀서 이러한 목뎍을 표방하고 이러난 이상에는 그의 해독이 세상에 미침이 실로 적지 안코 또한 민중의 당하는 손실이 막대할 일이라 이에 박춘금 일파의 위협 공갈에는 일이 우리 신문사에 관계되는 것으로 침묵을 직히든 동아일보도 이러한 단톄가 새로히 생기는 것을 보고는 사회를 위하야 민중을 위하야 분연히 일어나 삼월 삼십일과 이일의 이틀 동안 본보의 사설란에 소위 각파련맹이라는 것을 엄정히 비판하야 민중의 현혹지 안키를 경고하얏든바 뎨이차 론문이 발표되든 이일 오후에 련맹에 참가하얏다는 유민회의 리풍재(李豊載) 자신이 본사댱 송진우(宋鎭禹) 취톄역 김성수(金性洙) 량씨의게 뎐화로 말하기를 『오늘 저녁 일곱 시에 식도원에서 저녁이나 먹고 격조한 남아지에 간담이나 하는 것이 엇더하냐 무론 개인의 자격이오 합석할 사람은 자긔 이외에 채긔두(蔡基斗) 박병텰(朴炳哲) 박해원(朴海遠) 라홍석(羅弘錫)밧게 업슬 것이라』 함으로 소위 련맹 관계라면 본래 맛나볼 필요도 업지마는 순전한 개인의 자격이라고 할 뿐 아니라 당일 합석한다는 사람은 전부가 송、김 량인의 동경 류학시대부터 친하게 알든 사람이오 또 저편에서 전일의 정분으로 맛나자고 하는데 구태여 이것을 거절하는 것도 우수운 일임으로 『엇지하야 그러한 단톄에 가맹을 하얏는지 하여간 이야기나 들어보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두 사람은 출석키를 승낙하얏다. 그러나 이 뎐화의 속에 무서운 음모가 포함되얏슴이야 인심의 돌변을 조석난긔라는 이 세상이기로 엇지 짐작하얏스랴.

陰謀歷歷(음모역력)
두 쳐소에 모혀
폭행을 쥰비해

약조한 시각에 본사의 두 사람은 남대문통 식도원에 가본즉 과연 리풍재의 뎐화대로 몃 사람이 모혓스나 형편을 시찰한 결과 다른 방에 국민협회댱 김명준과 상애회 박춘금을 위시하야 련맹선언에 서명한 소위 각파유지가 만히 와서 들어안젓슴을 알게 되얏다. 오후의 뎐화는 분명한 사긔로 두 사람을 식도원으로 끌어내이랴는 음모에 지나지 못하고 소위 각파련맹이라는 것이 본사에 대하야 폭행을 하랴는 준비가 잇슴이 명백하게 되얏스며 또 그 전날 저녁에 이 패들이 식도원에 모혀서 처음에 련맹에 가입하마고 승낙을 하고 나종에 탈퇴를 광고하얏다는 류문환(劉文煥)을 불러다가 폭행을 더하얏다는 말을 들어도 이날 저녁의 회합이 심상한 결과로 마치지 못할 것은 짐작하얏다.

合力毆打(합력구타)와 拳銃脅迫(권총협박)
前後(전후) 三時間餘(3시간여)를 繼續(계속)한 團體的(단체적) 暴行(폭행)
채긔두의 참모 하에 삼파 거두의 조직뎍 폭행

본사의 두 사람이 합석한 곳에서 먼저 소작인상조회의 채긔두는 본사댱의게 향하야 이 단톄의 출생은 매우 근거가 깁흐며 경비로 말할지라도 몃십만 원의 리권을 어더서 풍족히 쓸 수도 잇서 매우 유력한 것이라고 총독부 당국자의 후원이 만히 잇는 것처럼 의사를 보이며 동아일보와 밀약을 뎡하면 매우 리익이 잇슬 것이오 동아일보가 반대를 하면 멸망을 당하리라는 의미로 유혹도 하고 협박도 하얏스나 본샤댱은 당초부터 이를 절대로 거절하얏스며 또 채긔두는 신문지상에 자긔들의 인신공격을 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공격함으로 본샤댱은 인신공격은 그대들의 일에 대한 것뿐 아니라 본샤의 주의로 피코저 하는 바이며 주의주장의 틀린데 대하야는 어듸까지든지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

회답한즉 채긔두는 점차로 흥분하야 실내실외로 들낙날낙하더니 다른 방에 기다리고 잇든 무리가 풍우가치 몰려들며 예뎡한 계획대로 각파련맹의 폭행은 시작되얏다. 각파로부터 이 자리에 모힌 자는 뎐화로 말하든 사람 이외에 국민협회로부터、김명준 이하 상애회로부터 박춘금、동광회로부터 리희간 이하、기타 각 단톄의 근 이십 명이라.

양복 속옷만 입은 박춘금、우통을 버서제친 리희간、팔뚝을 부르뽑는 김명준 등이 압장을 서고 우리의 사업을 방해하는 놈은 죽인다고 박츈금이가 먼저 악성을 지르고 본샤댱의게 달려들어 구타의 폭행을 하며 리희간 김명준 등도 가진 욕설과 폭행을 하매 가튼 무리는 이에 화하야 『죽여라、따려라』 하고 고함을 치는 등 식도원 안은 살풍경의 수라장을 이룬 후 다시 박춘금은 본사 취톄역 김성수 씨의게 향하야 모욕、협박을 시작하며 륙혈포를 겨누어 당장에 쏘을 뜻을 보여 극단의 공갈을 행하얏슬 뿐 아니라 혹 엇던 자는 맥주병을 둘너메고 혹 엇던 자는 음식접시를 집어던지랴는 등 가진 추태의 폭행을 거듭하얏스나 시종여일히 추호도 개의치 아니하는 본사의 두 사람의게 대하야는 저의도 다시 엇지할 길이 업든지 그대로 혜여지기까지 이 무리의 『각파련맹』이라는 명칭 하에서 단톄뎍으로 행한 폭행은 약 세 시간을 계속하얏다.

窮鼠反嚙(궁서반교)의 蠢動(준동)
긔관지를 리용하야 허셜 젼파
금일 발표 이외의 긔괴한 내막

이 사실이 세상에 전파되야 소위 각파련맹에 대한 공분의 여론이 사방에 놉하가매 저의들은 또다시 세샹을 속여서 사회의 이목을 가리울 흉계로 혹은 변명서를 발표하야 혹은 단톄의 행동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오 폭행한 것이 아니라는 등의 거즛말을 하나 단톄행동이라 함은 박춘금이가 폭행을 할 때에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언하얏고 또 김명준 리희간 등이 동아일보가 국민협회와 동광회를 공격하얏다고 욕설을 할 때에 채긔두는 『오늘은 각파련맹의 일이지 국민협회이나 동광회의 일은 아니라』고 말을 중지케 하는 등으로도 명백할 뿐 아니라 누구가 보든지 이날 이 일이 소위 각파유지가 모혀서 단톄뎍 조직뎍으로 행한 것임은 조곰도 음폐할 수 업는 일이며 또 이 자들은 총독부의 긔관지인 매일신보(每日申報)를 리용하야 동아일보 사댱이 사과댱을 써노앗느니 무근지설을 자아내여 세상의 이목을 현혹하고저 노력하나 이러한 선전에 속을 자는 아마 각파련맹 저의들 이외에는 업슬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 소개한 것은 당일 저녁 광경의 대강에 지나지 못하며 그 외에 본사에 대하야 긔괴한 협박 공갈을 더한 등 극히 복잡한 내용의 사실이 만히 잇스나 그 무리의 금후 행동을 두고 보기 위하야 아즉 후일을 기다리거니와 만일 이 뒤에도 여전히 준동(蠢動)을 계속하야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때에는 그 내용을 뎍발하야 다시 청텬벽력을 나릴 것은 무론이며 이후에 이 각파련맹이라는 것이 엇더한 행동을 취하든지 엄정한 비판을 계속할 것은 본사의 당연한 직책임을 다시 말하야 두고저 한다.


우리 使命(사명) 아레
최후까지 우리는 분투

◇모진 비 사나운 바람 맹호 가튼 파도 악마 가튼 됴류 이가치 험악한 세상에 사선(死線)에서 잇는 이천만 민중의 선봉에 나선 우리 동아일보의 동인. 과거에 잇서 고군분투로 허다의 위험을 무릅썻스며 장래에 대하야도 과거보다 몃 배 몃 십 배 되는 위협과 박해가 잇슬 것을 또한 예긔하는 바이라.

◇그러나 도리켜 우리의 중대한 사명을 생각할 때에 엇지 구구히 우리 종사하는 사람의 생명을 앗기랴. 우리의 사명을 실행함에 대하야 외면의 압박과 장해가 만흐면 만흘수록 우리의 결심은 그만치 공고하야 량심이 명하는 대로 용맹히 나가다가 비록 우리의 생명을 빼앗길지라도 그역 또한 엇지할 수 업는 일이라.

◇우리는 거위 동아일보의 사명을 위하야 생명을 바친지라. 과거에 잇서서도 무론 그러하엿지마는 금후에 잇서서도 본사의 사명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불량한 심사와 부정한 수단을 가지고 폭력으로써 림하는 자가 잇슬지라도 우리는 조곰도 본지를 굽힐 리가 만무하며 죽기까지는 힘을 다하야 우리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소위 각파련맹의 폭행사건을 발표하는 동시에 다시 텬하에 고백하는 바이며

◇아울러 이 긔회에 이번 각파련맹의 폭행사건에 대하야 동지 각 사회와 애독쟈 제씨로부터 정중하고 간독한 위문을 부치신 일에 대하야 충심으로 깁히 감사하는 동시에 우리의 동지가 텬하에 널녀 잇슴을 새로 힘잇게 늣겻슴을 고백코저 함니다.

이른바 각파연맹의 폭행사건
언론모독과 인권유린의 중대변고
공공연히 무리를 짓고 흉계를 꾸며 언론기관을 공갈 폭행

4월 2일 저녁 경성 남대문로 요리점 식도원에서 최근에 결성된 이른바 각파연맹의 발기인들이 모여 본사 사장 송진우와 본사 임원 김성수 두 사람에게 동아일보가 각파연맹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폭행과 공갈을 한 일이 있었다. 이 일은 본사 자체에 관한 사건이고 또한 당국의 태도도 지켜볼 필요가 있어서 잠시 발표를 미루려고 했으나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 일은 결코 본사에만 관계되는 일이 아니고 벌건 대낮에 공공연히 무리를 지어 흉기로 사람을 공갈 구타해 언론기관을 모독하고 인권 자유를 짓밟는 근래의 중대 변고이므로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더불어 각파연맹의 허무맹랑한 선전은 세상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또한 사회 각 방면으로부터 사실을 밝혀달라는 희망이 간곡해 대강의 사실을 아래에 정확히 소개하고자 한다.

까마귀 떼 같은 친일단체
독립사상과 사회주의 박멸을 표방
이른바 친일단체연맹이 생긴 경과

총독부의 지원 아래 각종 친일단체가 연합하고 단결해 큰 세력을 만들어 한편으로는 독립운동을 파괴하고 한편으로는 사회주의운동을 압박할 계획이 있다는 소문이 세상에 알려지기는 올해 1월쯤부터였다. 그동안 그 의논이 관계단체의 자칭 유지 사이에 진행돼 백작 송병준 계통인 소작인상조회 유민회 교풍회 동광회 등과 민원식의 잔당인 국민협회 등이 중심이 돼 각파의 행동을 실행하기로 결정하고 3월 25일 오후 3시 남산정 경성호텔에서 경성시내의 각 신문 통신 기자를 불러놓고 각파유지연맹 선언식이라는 것을 거행해 독립사상과 사회주의를 공격하며 총독부를 원조해 그 시정을 돕자는 장문의 선언서를 발표하고

1. 관민일치, 시정개선
2. 대동단결, 사상선도
3. 노자협조, 생활안정의 3개 항목의 강령이라는 것을 가결하였다. 그날 그 선언서에 서명한 발기인의 소속 단체와 이름을 보면

▲국민협회=김명준 이병렬 이동우 이영석 우성현 고희준 김환 김우식 강인우
▲조선소작인상조회=박해묵 이동혁 이창환 이용한 이계호 나홍석 채기두
▲유민회=박병철 이풍재 유병룡 김태훈 민갑식
▲노동상애회=박춘금
▲조선경제회=박해원 이승현
▲교풍회=유문환 유병필 김중환
▲동광회=이희간 정규환
▲유도진흥회=정진홍
▲청림교=김상설
▲대정친목회=예종석 천영기
▲동민회=신석인 등으로 이른바 11개 단체의 34명 유지연맹이라는 것이 성립됐다.

2개월 간 계속한
박춘금 일파의 위협과 공갈

이 사건의 경과를 말하기 전에 사건의 순서로 먼저 이 단체에 가맹한 노동상애회 부회장 박춘금이가 본사를 위협하던 경과를 대강 소개할 필요가 있다. 박춘금이가 1월 하순에 경성에 들어온 후 아무 이유도 없이 본사에 와서 저희 단체를 무시하느니 저의 대우를 낮춰하느니 경위도 닿지 않은 말을 따지지 않고 덮어놓고 본사와 본사 간부들을 갖가지로 모욕하다가 나중에는 본색을 드러냈다. 본사가 발기해 기부금을 보관하고 있는 재외동포위문회의 돈을 자기 사업에 제공하라고 강요했으나 본사에서는 거절했다. 그 후로는 떼를 지어가지고 수건으로 머리를 묶고 몽둥이를 지닌 채 본사에 침입해 협박을 더하고 혹은 일본 노동자 옷차림에 단도를 휴대하고 본사 사장을 위협했다. 속셈으로는 무엇을 믿는 바가 있는지 맑은 하늘 훤한 대낮에 공연히 이렇게 공갈 위협 행동을 계속한 것이 2개월 동안 7, 8회나 됐다.

사기전화로 유인
본사 사설에 화난 연맹에서
흉악한 음모를 품고 전화로 사기

이러한 자들이 모여 이러한 목적을 내세워 일어난 이상에는 세상에 미치는 그 해독이 실로 적지 않고 또한 민중이 당하는 손실이 막대할 일이었다. 이에 박춘금 일파의 위협 공갈에는 사안이 우리 신문사와 관계가 되므로 침묵을 지키던 동아일보도 유지연맹이 새로 생기는 것을 보고는 사회를 위해, 민중을 위해 분연히 일어나 3월 30일과 4월 2일 이틀 동안 본보 사설란에 소위 각파연맹이라는 것을 엄정히 비판해 민중이 속지 말도록 경고했다. 제2차 사설이 발표되던 4월 2일 오후에 연맹에 참가했다는 유민회 이풍재가 직접 본사 사장 송진우와 임원 김성수 두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7시에 식도원에서 저녁이나 먹고 뜸했던 사이에 이야기나 하는 것이 어떠냐. 물론 개인 자격이고 합석할 사람은 나 외에 채기두 박병철 박해원 나홍석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른바 연맹 관련이라면 원래 만나볼 필요도 없지만 순전히 개인 자격이라고 할 뿐 아니라 당일 합석한다는 사람은 모두 송, 김 두 사람이 도쿄 유학할 때부터 친하게 알던 사람이었다. 또 저쪽에서 전날의 친분으로 만나자고 하는데 구태여 거절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므로 “어째서 그런 단체에 가맹했는지 하여간 이야기나 들어보자” 하는 단순한 마음으로 두 사람은 가겠노라고 승낙했다. 그러나 이 전화 속에 무서운 음모가 포함됐음에야 인심의 돌변은 아침저녁을 기약할 수 없다는 세상이라고 해도 어떻게 짐작했겠는가.

음모역력
두 곳에 모여
폭행을 준비해

약속한 시간에 본사의 두 사람은 남대문통 식도원에 가보니 과연 이풍재의 전화대로 몇 사람이 모였으나 형편을 살핀 결과 다른 방에 국민협회장 김명준과 상해회 박춘금을 비롯해 연맹선언에 서명한 소위 각파유지가 많이 와서 들어앉았음을 알게 됐다. 오후의 전화는 분명한 거짓으로 두 사람을 식도원으로 끌어내려는 음모에 지나지 않았고 소위 각파연맹이라는 것이 본사에 대해 폭행을 하려는 준비가 돼 있는 것이 명백해졌다. 또 그 전날 저녁에 이 패들이 식도원에 모여 처음에 연맹에 가입하겠다고 승낙을 하고 나중에 탈퇴를 광고했다는 유문환을 불러다가 폭행을 가했다는 말을 들어도 이날 저녁의 모임이 보통의 결과로 끝나지 않을 것은 짐작이 갔다.

힘 모아 구타하고 권총으로 협박
전후 3시간 넘게 계속한 집단 폭행
채기두의 계획 아래 3개 파 우두머리의 조직적 폭행

본사 두 사람이 합석한 곳에서 먼저 소작인상조회의 채기두는 본사 사장에게 이 단체의 탄생은 매우 근거가 깊고 경비로 말해도 수십만 원의 이권을 얻어서 풍족하게 쓸 수도 있어서 아주 힘이 많다고 총독부 당국자의 후원이 크게 있는 것처럼 말했다. 동아일보와 밀약을 맺으면 아주 이익이 있을 것이고 동아일보가 반대를 하면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의미로 유혹도 하고 협박도 했으나 본사 사장은 당초부터 이를 절대로 거절했다. 또 채기두는 신문지상에 자신들을 인신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공격하므로 본사 사장은 인신공격은 당신들의 일에 대한 것일 뿐이므로 본사가 유의해 피하려고 하겠으나 잘못된 주의주장에 대해서는 어디까지든지 공격을 하겠다고 반박했다.

채기두는 점차 흥분해 방 안팎으로 들락날락하더니 다른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리가 비바람처럼 몰려들어와 미리 짠 계획대로 각파연맹의 폭행이 시작됐다. 각파로부터 이 자리에 모인 자는 전화로 연락한 사람 이외에 국민협회의 김명준 이하, 상애회의 박춘금, 동광회의 이희간 이하 기타 각 단체의 거의 20명이었다.

양복 속옷만 입은 박춘금, 웃통을 벗어젖힌 이희간, 팔뚝을 휘두르는 김명준 등이 앞장을 서고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놈은 죽인다고 박춘금이가 먼저 소리를 지르며 본사 사장에게 달려들어 구타 폭행했다. 이희간 김명준 등도 갖은 욕설과 폭행을 하자 이들 무리도 동조해 “죽여라, 때려라”라고 고함을 치는 등 식도원 안은 살풍경의 아수라장을 이뤘다. 다시 박춘금은 본사 임원 김성수 씨를 향해 모욕 협박을 시작해 육혈포를 겨누며 당장 쏠듯이 극단적인 공갈을 했을 뿐 아니라 또 어떤 자는 맥주병을 둘러메고 또 어떤 자는 음식접시를 집어던지려는 등 갖은 추태의 폭행을 거듭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본사 두 사람에게는 저희들도 다시 어떻게 할 길이 없든지 그대로 헤어지기까지 이 무리 ‘각파연맹’이라는 이름 아래 집단적으로 행한 폭행은 약 3시간을 계속했다.

몰린 쥐가 도리어 깨무는 꿈틀거림
기관지를 이용해 거짓말을 전파
이날 발표된 이외의 기괴한 내막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이른바 각파연맹에 대한 분노의 여론이 사방에 높아지자 저들은 또다시 세상을 속여서 사회의 이목을 가릴 흉계로 혹은 변명서를 발표하고 혹은 단체의 행동이 아니라 개인의 행동이고 폭행한 것은 아니라는 식의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집단행동이라는 것은 박춘금이가 폭행할 때 “우리 사업을 방해하는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했고 또 김명준 이희간 등이 동아일보가 국민협회와 동광회를 공격했다고 욕설할 때 채기두는 “오늘은 각파연맹의 일이지 국민협회나 동광회 일은 아니다”라고 말을 끊은 등으로도 명백했다. 이뿐만 아니라 누가 보든지 이날 이 일이 이른바 각파유지가 모여 집단적 조직적으로 행한 것임은 조금도 숨길 수 없는 일이다. 또 이 자들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를 이용해 동아일보 사장이 사과장을 써놓았느니 하는 근거 없는 말을 지어내 세상의 이목을 홀리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선전에 속을 사람은 아마 각파연맹 저들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이상에 소개한 것은 당일 저녁 광경의 대략에 지나지 않으며 그 외에 본사에 대해 기괴한 협박 공갈을 더하는 등 아주 복잡한 내용의 사실이 많이 있지만 저들 무리의 앞으로의 행동을 두고 보기 위해 아직 훗날을 기다리겠다. 만약 이후에도 여전히 꼼지락거림을 계속해 사회에 해독을 끼치는 때에는 그 내용을 드러내 다시 청천벽력을 내릴 것은 물론이고 이후에 이 각파연맹이라는 것이 어떠한 행동을 취하든지 엄정한 비판을 계속할 것은 본사가 당연히 할 일이라는 점을 다시 말해 두고자 한다.

우리 사명 아래
최후까지 우리는 분투

◇모진 비, 사나운 바람, 맹호 같은 파도, 악마 같은 조류, 이같이 험악한 세상에 사선에서 있는 2000만 민중의 선봉에 나선 우리 동아일보의 동인. 과거에 고군분투로 수많은 위험을 무릅썼으며 장래에도 과거보다 몇 배 몇 십 배 되는 위협과 박해가 있을 것을 또한 예상하는 바이다.

◇그러나 돌이켜 우리의 중대한 사명을 생각할 때에 어찌 구구하게 우리 종사하는 사람의 생명을 아끼랴. 우리의 사명을 실행하면서 외부의 압박과 장해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의 결심은 그만큼 굳어지고 양심이 명하는 대로 용맹하게 나아가다가 비록 우리의 생명을 빼앗길지라도 그 역시 또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거의 동아일보의 사명을 위해 생명을 바쳤다. 과거에도 물론 그랬지만 앞으로도 본사의 사명을 실행하지 못하도록 불량한 마음과 부정한 수단으로 폭력으로써 대하는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는 조금도 본래 뜻을 굽힐 리가 만무하며 죽기까지는 힘을 다해 우리의 사명에 충실할 것을 이른바 각파연맹의 폭행사건을 발표하는 동시에 다시 천하에 고백하는 바이며

◇아울러 이 기회에 이번 각파연맹의 폭행사건에 대해 동지 각 사회와 애독자 여러분들로부터 정중하고 정성스러운 위문을 보내오신 일에 대해 충심으로 깊이 감사하는 동시에 우리의 동지가 천하에 널려 있음을 새로 힘 있게 느꼈음을 고백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