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임직원 핵분열이 밑거름 된 ‘3개 정부’ 시대
바로 매일신보였죠. 동아일보가 4월 11일자에 ‘소위 각파연맹의 폭행사건, 언론 모독과 인권 유린의 중대 괴변’이라고 비판 기사를 싣자 매일신보는 이틀 뒤 ‘후안무치한 동아, 엄연한 사실을 부인’이라는 기사로 맞대응했습니다. 이 기사에서 매일신보는 송진우가 사죄증서를 써주었다고 했죠. 송진우가 인신공격은 유감이라고 써준 종이쪽지를 사죄문으로 둔갑시킨 겁니다. 더구나 매일신보는 송진우가 써준 쪽지를 큼지막하게 사진으로 싣기까지 했죠.
또 매일신보는 동아일보가 재외동포 위문금을 ‘사사로운 지출에 전부를 모조리 집어 먹’었다고 날조했습니다. 박춘금의 입을 빌어 간토대지진 때 동포 이재민을 위문 온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상협이 1등 여관에 머물며 사이다 2병만 주고 갔다는 거짓말까지 실었죠. 먹고 마실 것 2만2000여 점을 전달한 사실을 극단적으로 왜곡했습니다. 매일신보는 2년 전 동아일보를 비난하는 전단을 뿌렸다가 톡톡히 망신당했던 원한을 앙갚음하려던 의도도 있었을 듯합니다(2020년 9월 1일자 ‘“악덕신문” 험담 모함하며 ‘동아일보’ 불매운동, 누가?’ 참조).
매일신보의 ‘가짜 기사’가 이어지고 조선노농총동맹도 불매동맹을 내세우며 비난에 가세하자 동아일보가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사장과 임원이 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사죄증서를 써주고 위문금까지 떼먹었다니 직원들은 고개를 들 수 없었겠죠. 결국 사원회의가 열려 사장 이하 취체역의 사퇴 등을 요구했습니다. 곧 열린 임시중역회의에서 사장 송진우 이하 임원 5명이 사임했죠. 1920년 5월에도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칼럼 때문에 유림이 들고 일어났고 당시 사장 박영효가 사과문을 실으라고 하자 사원회의를 열어 반대했던 적이 있었죠. 그때도 박영효가 그만뒀습니다. 어쨌건 동아일보의 4대 약속은 추진력을 크게 잃게 됩니다.
4월말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사장 이승훈, 편집국장 홍명희의 위기관리체제가 들어섰지만 사태는 가라앉지 않았죠. 평소 송진우와 갈등을 겪던 이상협이 자신을 따르던 기자들을 데리고 나간 겁니다. 마침 밖에서는 상하이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낸 신석우가 신문업 참여를 엿보고 있었죠. 한 달 전에는 최남선이 주간지 동명을 시대일보로 바꿔 내기 시작했습니다. 독립선언서를 써서 명망이 높던 최남선에게 자금을 주겠다는 제안이 많았지만 실제로는 돈이 들어오지 않아 시대일보는 처음부터 경영난에 시달렸죠.
신석우는 시대일보에 신흥종교 보천교가 끼어들자 조선일보로 방향을 틀었죠. 조선일보는 친일파 백작 송병준이 사장이었지만 역시 자금난이 심했거든요. 신석우는 1924년 9월 8만5000원에 조선일보 경영권을 사들였습니다. 그 무렵 동아일보 이상협 등 임원과 논설반장 정치부장 사회부장 지방부장 조사부장 등이 조선일보로 건너갔죠. 시대일보에는 편집국장과 사회부장 등이 ‘동아 출신’이었고요. 쟁쟁한 기자들이 빠져나간 동아일보는 큰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크게 보면 펜으로 일제에 맞서는 3대 민족지 체제가 마련됐죠. 잡지 개벽에 동아·조선·시대일보를 가리켜 ‘전에 보지 못하던 3개의 정부’라는 글이 실려 당시의 평가를 알려줍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기사입력일 : 2021년 04월 06일
사댱 신석우 씨 외 열두 명
하여간 유명한 송병준(宋秉畯) 씨의 손으로 경영하여 가든 조선일보(朝鮮日報)는 근일 경비문뎨로 매우 곤난 중이더니 신석우(申錫雨) 씨가 장래 경영을 담당하고 신석우 씨 사댱 하에 면목을 일신케 되엿는데 그 경영자는 아래왓 갓더라.
申錫雨(신석우)、愼九範(신구범)、白南震(백남진)、曹偰鉉(조설현)、白寬洙(백관수)、李相協(이상협)、張斗鉉(장두현)、洪璔植(홍증식)、閔泰瑗(민태원)、金良洙(김양수)、安在鴻(안재홍)、金東成(김동성)、
사장 신석우 씨 외 열두 명
하여간 유명한 송병준 씨의 손으로 경영하여 가던 조선일보는 최근 비용 문제로 매우 곤란한 중이더니 신석우 씨가 장래 경영을 담당하고 신석우 씨 사장 아래에 면목을 새롭게 하게 되었으며 그 경영진은 아래와 같다.
신석우 신구범 백남진 조설현 백관수 이상협 장두현 홍증식 민태원 김양수 안재홍 김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