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환자 또 ‘표류’ 사망]
외상센터 3곳 다 중환자실 가득 차… 1곳은 간암수술 전문의가 당직 서
3월 권역응급센터 확충안 발표… “중환자실-의사 부족부터 해소를”
30일 70대 남성이 경기 용인시에서 교통사고를 당한 뒤 응급실을 찾아 122분간 ‘표류’하다가 숨진 사건은 ‘필수의료 붕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119가 이 남성의 수용을 문의한 병원 12곳 중 8곳이 중환자실에 병상이 없다는 이유로, 2곳이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나머지 2곳에선 환자 상태가 너무 위급하니 가까운 곳으로 가거나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응급 환자를 수용해야 할 권역외상센터와 권역응급의료센터조차 중환자실 병상이 없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었다는 점이다. 정부는 3월 권역응급의료센터를 확충하는 응급의료 대책을 발표했지만, 중환자실과 의료진 부족을 해소하지 않고 단순히 시설만 늘려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 외상센터 3곳 모두 ‘중환자실 없어’
이날 숨진 구모 씨(74)를 받아주지 않은 병원 12곳 중 권역외상센터를 운영하는 병원은 아주대병원과 단국대병원, 가천대 길병원 등 3곳이다. 권역외상센터는 중증외상 환자의 응급 소생부터 수술까지 담당하는 ‘최종 의료기관’이다. 전국 15개 병원에서 운영 중이다.
하지만 119구급대가 첫 번째로 전화했던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엔 빈 중환자실 병상이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구 씨는 복강 내 출혈이 의심돼 곧장 개복(開腹)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태였는데, 이런 경우 수술을 마쳐도 인공호흡기 등 생명 유지 장비를 갖춘 중환자실로 옮겨 상태가 안정될 때까지 24시간 전문 의료진이 지켜봐야 한다.
충남 천안시에 있는 단국대병원도 사정이 비슷했다. 외상중환자실 병상 20개가 가득 차 전날 오후 11시 7분부터 소방당국 등에 ‘환자 수용 불가(바이패스)’를 통보한 상태였다. 장성욱 단국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상태가 그나마 나아진 환자를 일반 입원실로 옮기는 식으로 빈자리를 확보하는데, 이날은 중환자실 입원 환자가 모두 위중했다”고 말했다. 인천 남동구 가천대 길병원 권역외상센터 측도 “외상중환자실 20개가 가득 차 있었다”고 했다.
● 대학병원들도 “의사 없어 수술 불가”
구 씨를 수용하지 않은 나머지 병원 9곳 중 7곳은 대학병원이었고, 그중 4곳은 권역응급의료센터를 운영 중이었다. 권역응급의료센터는 권역 내 중증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기관인데 이곳에도 구 씨가 치료받을 병상은 없었다.
30일 오전 1시 6분경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상황실은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인 용인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전화했다. 하지만 이 병원엔 중증외상 수술이 가능한 의료진이 없었다. 병원 관계자는 “당시 외과 전문의가 당직을 서고 있었지만 중증외상이 아닌 간암 환자를 주로 수술하는 의사였다”라며 “1명뿐이었던 외상외과 전문의가 2년 전 사직한 후 줄곧 공석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수술 의사와 중환자실이 부족한 필수의료 붕괴 문제를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올 3월 ‘응급의료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권역외상센터를 현행 15곳에서 17곳으로, 권역응급의료센터를 44곳에서 50∼60곳으로 각각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지정된 센터들도 의료진이나 중환자실이 부족한 상황에서 시설만 늘리는 건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복지부는 구 씨의 이송 과정과 관련해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박향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사건 당시 각 병원의 병상, 인력 상황과 소방 측 자료를 종합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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