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리에 따라 마무리 하고 싶다” 연명의료결정 환자, 1년새 29배 증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9일 19시 09분


위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며 요양병원에서 지내다 합병증으로 얻은 패혈증과 폐렴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박모 씨(72)는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했다. 박 씨는 “요양병원에서 콧줄을 꼽았던 것만으로도 너무 괴로웠다”며 “순리에 따라 자연스러운 마무리를 하고 싶다. 연명의료 계획서를 쓰고 내 고통을 덜어줄 진통제만 맞겠다”고 말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일명 존엄사법) 시행 이후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 진행 여부를 결정한 비율이 29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2월부터 시행 중인 존엄사법은 환자가 스스로 연명의료 의향을 결정할 수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 삶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기 위해 도입됐다.

9일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허대석 교수팀은 존엄사법 시행 다음날인 지난해 2월 5일부터 올해 2월 5일까지 1년간 연명의료결정 서식을 작성한 뒤 사망한 19세 이상 환자 809명을 조사한 결과 이같은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809명 중 환자 스스로 연명의료결정 서식(연명의료계획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서명한 비율은 28.6%(231명)으로 나타났다. 연명의료계획서는 암 말기 환자 등이 의사와 상의 하에 작성하는 것이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만 19세 이상 국민들이 임종이 가까워질 때를 대비해 연명치료 의향을 미리 밝혀두는 문서다. 이는 2003~2004년 서울시보라매병원에서 심폐소생술중지동의서를 작성한 뒤 사망한 환자 143명 중 환자가 스스로 서명한 비율이 1%였던 것과 비교하면 29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연구팀은 “이러한 증가 추세는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에 따른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스스로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린 환자 231명 중 98.3%(227명)은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시행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나 이를 하지 않는 ‘유보’ 결정을 내렸다. 연명의료를 받던 중 이를 중단한 환자 비율은 1.7%(4명)에 불과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 등록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누적 등록자 수는 25만6025명이다. 올해 1월 3일 기준 10만1773만 명에서 약 6개월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연명의료계획서 누적 등록자 수도 지난달 30일 기준 2만4327명으로, 1월 기준 1만4732명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환자 본인이 직접 결정을 내리는 비율이 급증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면서도 “법 시행 이후에도 여전히 가족과 본인의 결정이 다른 경향을 보이는 점, 중환자실 이용률 감소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점 등 개선해야 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위은지기자 wiz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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