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패션업계에서는 ‘래플’(raffle·복권), ‘드로’(draw·제비뽑기) 마케팅으로 불리는 추첨식 판매가 인기라고 한다. 주로 한정판 의류나 신발을 판매할 때 쓰는 무작위 추첨 방식이다. 소비자는 높은 인기에 물량이 달리는 상품을 비교적 공정하게 살 수 있고, 판매자는 바이럴 효과로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어 이득이다. 사실 이 같은 추첨식 판매는 새로운 마케팅 방법이 아니다. 필자는 국내 래플 판매의 최고봉은 주택청약 방식으로 거래되는 아파트라고 생각한다. 청약통장을 만들어 대한민국 주택시장의 잠재고객이 되는 순간부터 청약에 당첨되기까지 과정은 추첨식 판매를 방불케 한다. 지난해 말 기준 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640만 명에 달한다. 같은 시기 국내 경제활동인구가 2800만 명임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전 국민이 청약시장의 잠재적 소비자인 것이다.
부동산 규제 완화에 청약시장 훈풍
주택청약제도에서 추첨이 특히 중요해진 계기는 4월 개정된 주택법상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이 규칙은 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부동산 규제지역에서 분양되는 민영주택의 가점제와 추첨제 비율을 조정하는 게 뼈대다. 특히 85㎡(이하 전용면적) 이하 중소형 주택의 가점제 비율을 낮추고 추첨제 비율을 높였는데, 그 결과 청년층의 당첨 가능성이 커졌다. 당초 투기과열지구 85㎡ 이하 주택은 모두 가점제로만 분양돼 청년층 차별 논란이 있었다. 개정된 주택공급 규칙에 따라 중장년층 수요가 많은 대형 주택은 반대로 가점제 비율이 높아졌다.
1월 발표된 ‘1·3 부동산대책’으로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규제지역이 해제된 것도 청약 추첨 물량이 늘어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규제지역은 규제지역보다 추첨제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가령 비규제지역의 85㎡ 초과 주택은 100% 추첨제로 공급되며, 85㎡ 이하 주택의 가점제 비율도 최대 40% 안에서 지방자치단체장 자율로 정해진다. 1·3 부동산대책에는 전매제한 및 중도금 대출 규제 완화, 실거주 의무 폐지 방안도 담겨 분양시장 심리가 회복되는 데 일조했다.
정부가 추첨제 물량을 확대한 이유는 최근 미분양이 가파르게 증가한 데서 찾을 수 있다. 전국 미분양 주택은 2021년 9월 1만4000채 미만으로 통계 작성을 시작하고 20여 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랬던 미분양 주택이 지난해 12월 6만8000채를 넘겨 분양시장이 급랭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양가족 수나 무주택 기간 등 여러 자격을 요구하는 가점제보다 추첨제를 도입하면 넓은 수요층을 포섭할 수 있다.
이 같은 정책 효과에 힘입어 올해 들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분양 경쟁률이 크게 올랐다. 올해 상반기 서울의 1순위 분양 경쟁률은 51.86 대 1로 집계돼 지난해 하반기(5.84 대 1)는 물론 상반기(29.57 대 1)와 비교해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분양권 거래도 늘었다. 올해 상반기 전국에서 거래된 분양권은 2만4000여 개로 지난해 하반기 대비 68%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도권 분양권 거래는 2배 이상 증가해 분양시장에 쏠린 관심을 짐작게 한다.
서울 아파트 분양가 고공행진
청약시장이 가열되면서 소비자의 관심은 한 가지 질문으로 귀결된다. 바로 향후 집값 상승 가능성과 현 매매가 사이 균형점은 어디인가 하는 것이다. 대대적인 규제 완화 효과를 고려해도 현 분양가가 적정한지 유심히 살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서울 분양가는 특히 그렇다. 부동산R114 집계 기준 올 하반기(7월~9월 10일) 서울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3726만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하반기(3521만 원) 대비 5.8% 상승한 것이다.
분양가에는 여러 변수가 작용한다. 분양가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상방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고려하면 최근 상승세는 일견 당연해 보인다. 지난해와 올해 분양된 단지의 특성이 저마다 달라 일대일 비교는 의미가 없을 수 있다.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서울 4개 구를 제외하고 모두 해제된 지금 분양가를 어떻게 정해도 입방아에 오를 수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적정 분양가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분양 수요는 △미래 주택 공급이 부족할지 여부 △향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규제 완화에 따른 분양시장으로의 접근성 향상이라는 변수에 따라 결정된다. 내 집 마련을 원한다면 어느 한 요소를 과대·과소평가하지 않아야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
먼저 주택 공급이 부족할지 여부와 그에 따른 집값 상승 가능성에 대해 살펴보자. 2~3년 내 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우려는 부정하기 어렵다. 올해 상반기 전국 주택 인허가 건수는 공사비 증가 등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27.2% 감소했다. 착공 건수는 이보다 더 크게 감소해 지난해 상반기 대비 절반에 그쳤다. 아파트의 경우 시공에 3년가량 소요되기 때문에 갑자기 공급이 늘거나 줄기 어렵다. 올 상반기에 줄어든 주택 착공은 추후 반드시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시공감리 강화 등 시장 외적 요인을 고려하면 주택 공급이 더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그런 점에서 신축 아파트가 희귀해지면서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무리는 아니다.
신축 아파트가 갖는 고유의 가격 상승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인근에 최근 5년 내 준공된 아파트가 많지 않다면 신축 아파트가 ‘새 물건’으로서 누릴 프리미엄은 상당하다. 기존 단지에 비해 우수한 단지 설계, 다양한 부대시설 등 장점도 있다. 단적인 예가 아파트 동별 엘리베이터와 지하주차장의 직접 연결이다. 2000년대 중후반 설계돼 2010년대 초반 준공된 아파트가 이전과 비교해 크게 개선된 점인데, 그 덕에 한동안 신축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었다.
다음으로 향후 집값 상승을 가로막을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대표적인 변수가 금리다. 지금도 회자되는 ‘빚내서 집 사라’라는 정책 기조는 한국 관련 당국이 금리를 내릴 수 있는 대외 여건이 조성됐기에 가능했다. 집값 상승세가 이어진 2년 전 시장 상황도 마찬가지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1%대에 불과하던 당시에는 인근 집값이 새로 분양되는 주택 가격에 맞춰 상승했다. 이른바 집값 ‘키 맞추기’로, 주택 구입 자금 마련이 상대적으로 쉬운 덕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러나 현재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4%대 중반에 달하는 데다, 대내외 경제 요인을 고려할 때 인하 가능성이 크지 않다. 과거 가격 상승기와 동일한 패턴으로 시장이 움직일지 고민이 필요하다.
신축 단지의 경우 입주 시기에 전세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자칫 자금 계획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1만여 채가 일거에 입주한 서울 송파구 한 아파트 단지에서는 전세 매물이 3000채가량 누적돼 집주인들이 세입자 구하기에 어려움을 겪었다. 실거주 목적으로 분양을 받는다면 별문제가 없으나, 바로 세입자를 받을 계획이라면 이 같은 전세 가격 이슈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실거주 목적 아닌 청약은 주의해야
이처럼 집값 전망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가격 하락 우려가 적은 곳은 역설적으로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서울 4개 구 민간택지와 공공택지다. 2013년 이후 이들 지역이 오랫동안 주택 가격 상승폭을 키운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상한제가 적용된 최근 분양가가 ‘비싼데 저렴한’ 현상이 이어지면서 인근 집값과의 마진이 커졌다. 향후 주택 가격이 소폭 조정되더라도 서울 4개 구 집값이 분양가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은 낮기에 투자 불확실성이 적다. 다만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은 지역의 주택은 전매가 어려운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따라서 실거주 목적이 아닌 경우 반드시 자금 조달 계획을 보수적으로 잡고 분양시장에 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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