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공포에 사고 환희에 팔아라”
주식 투자의 귀재로 알려진 워런 버핏이 한 말이다. 일반 투자자들은 대개 공포에 팔고 환희에 산다. 이 투자 패턴은 비단 주식 시장뿐 아니라 시계 시장에서도 일맥상통한다.
시계의 경우, 직거래, 중개 플랫폼 등에서 시세 정보를 제공하지만 누구에게나 공개된 데이터라 경쟁력이 낮다. 30년 이상 시계를 거래해 온 전문가라고 해서 더 좋은 정보를 갖고 있다거나 내일 시세를 예측하기 쉬운 건 아니다. 몇 년 후 혹은 10년 뒤 가격이 오를 시계를 예측하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에 가깝다. 때로는 시계 시세는 객관적인 결과가 아닌, 누군가 뒤에서 은밀하게 조장한 결과라는 풍문이 일리 있게 들릴 정도다.
필자의 시계 투자 성공 사례 역시 대부분 저렴하거나 급매로 나온 시계를 다량으로 매입해 오래 묵혀 두었을 뿐, ‘예측’했다기 보다 ‘시기와 운’이 좋았던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3~4년 동안은 해외 시장 정보와 경매 데이터가 시계 투자 수익과 직결되고 있다.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경험과 데이터를 활용해 합리적 추론은 가능해진 것이다.
이 ‘협회’를 주목하라
시계 투자에 관심이 있다면 롤렉스, 파텍필립, 오데마 피게 등 브랜드 이름에 앞서 ‘AHCI’를 주목해야 한다. AHCI(The Académie Horlogère des Créateurs Indépendants)는 스위스 독립 시계 제작자 협회의 명칭이다. 여기서 '독립 시계 제작사'는 워치 메이커가 시계의 디자인부터 설계와 제작에 이르는 전반적인 과정을 진행하는, 대량 제조가 가능한 큰 규모의 시계 브랜드와 대비되는 작은 브랜드를 말한다.
때는 1985년. 스위스 제네바와 로잔에서 각각 워치 메이커로 활동하던 스벤 안데르센(Sven Andersen)과 빈센트 칼라브리즈(Vincent Calabrese)가 AHCI를 설립했다. AHCI는 평균 35인 가량의 멤버로 구성되며, 정식 멤버가 되기 전 후보 군들도 있다.
AHCI 멤버가 되려면 당연히 직접 시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멤버 대부분이 케이스, 다이얼, 유리 등은 외주 작업을 통해 생산하지만 시계 무브먼트의 플레이트와 작은 부속품 등은 손수 제작한다. 고유한 예술성과 창의성, 기술 혁신, 정교한 수공예 및 한정적인 생산량에 고객들은 매력을 느낀다. 발 빠른 시계 옥션 회사들은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시계를 자신들의 옥션에 출품하기 위해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브랜드의 시계가 놀라운 경매 가에 낙찰되기도 한다.
살아 있는 전설이 된 이들, 다음 계승자는 누구?
특히 AHCI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협회원 중 살아 있는 전설이 된 멤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주요 멤버는 바로 ‘필립 뒤포’, ‘폴 주른’, ‘카리 보틸라이넨’이다. 시계 애호가라면 생소하지 않은 이름일 것이다. 전설이 된 멤버들의 시계는 이미 금융 상품이 됐다. 고부가 가치를 지닌 현물 자산이자, 구할 수 있는 것이 곧 행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2000년 중반만 하더라도 위 브랜드를 찾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잘 모르는 브랜드인데”, “너무 비싸네?” 등 뛰어난 제품과 가치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지도와 높은 가격대로 주목 받지 못했다. 지금은 희소한 수량으로 구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구한다 하더라도 가격이 이미 너무 폭등해버린 탓에, 많은 시계 투자자들과 애호가들이 “그때 하나 사둘 걸” 하는 아쉬움 섞인 한탄을 내뱉곤 한다.
필자는 투자를 위해 어떤 시계를 사야 할지 귀띔해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는다. 장기적인 시계 투자 관점에서 눈 여겨 봐야할 것은 현 주요 멤버 뒤를 이을 신생 독립 시계 브랜드다. 주식에 빗대 말하자면, 이들은 저평가된 주식일 가능성이 높다. 아직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해 시장의 선택을 받을 기회가 남아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AHCI 멤버들의 케이스와 무브먼트 기반을 제조하는 곳에서 만든 브랜드라면 더욱 주목해 볼 만 하다.
아름다움과 내구성 모두 장착한 ‘비앙쉐(BIANCHET)’
2017년 로돌포 비앙쉐, 엠마누엘 비앙쉐 부부에 의해 설립됐다. 1.618의 황금 비율과 피보나치 수열에서 나오는 하모니의 아름다움을 시계에 담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았다고 한다. 케이스 디자인에 황금 비율을 적용해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 비앙쉐는 다른 독립 시계 브랜드들에 케이스와 무브먼트를 납품하는 메뉴팩처에서 직접 만든 브랜드다. 경량화된 카본 케이스와 뚜르비옹 무브먼트*를 탑재했고 착용감이 좋은 러버 스트랩이 장착됐다. 스크래치나 파손 염려가 적은 소재들로 만들어져, 아무리 험하게 시계를 착용하는 사람이라도 추후 컨디션이 좋은 상태로 리세일할 수 있을 것이다. *중력에 의해 발생하는 오차를 줄이기 위해 기계식 시계에 포함되는 장치 중 하나. 프랑스어로 '회오리 바람'을 뜻한다.
착용하고 테니스, 골프 같은 스포츠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하이엔드 스포츠 시계로, 앞으로 스포츠 산업 혹은 유명인 마케팅이 더해지면 어떤 입지에 서게 될지 기대되는 브랜드다.
파텍필립 출신들의 독립, ‘샤를 지라디에(Charles Girardier)’
샤를 지라디에(Charles Girardier)는 18세기 시계 장인인 샤를 앙투완 지라디에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2017년 창업한 브랜드다. 스위스 하이엔드 명품 시계의 대표 브랜드인 파텍필립 출신 워치 메이커들이 독립해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렇기에 뚜르비옹 무브먼트를 쉽게 적용할 만큼 기술력이 뛰어나다.
특히 타 브랜드 처럼 다이얼에 브랜드 로고를 새기는 대신, 브랜드의 이니셜 C와 G가 12시 방향에 자리해 시계의 움직임에 의해 회전하는 특허 받은 애니메이션 기술을 갖고 있다. 아트워크 다이얼은 최근 시계 투자 트렌드이기도 하다.
두 시계 모두 최근 국내에서도 유통을 시작했다. 저평가된 시계를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다면 매수의 타이밍이고, 환희의 때가 매도의 시점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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