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비린내 나는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셰익스피어 4대 비극’이 잇따라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와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는 서로 다른 버전의 ‘햄릿’이,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는 ‘맥베스’가 무대에 올랐다. 세 작품의 색다른 매력을 비교해봤다.
명대사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를 낳은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가장 유명하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독살된 선왕의 원수를 갚으면서 겪는 선과 악의 고뇌를 그렸다. 신시컴퍼니의 대학로 아트센터 공연에는 배우 전무송 이호재 손숙 박정자 등 연극계 거목들이 주·조연을 맡아 열연을 펼친다. 원작의 클래식함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희곡 ‘열하일기 만보’, ‘3월의 눈’ 등을 쓴 극작가 배삼식이 각색해 원전 텍스트의 아름다움과 한국어의 말맛을 모두 잡았다. 미쳐버린 햄릿을 향한 오필리어의 대사 “아, 이 얼마나 고귀한 정신이 파괴됐나”는 극에서 “무너졌구나. 그 고귀한 마음이, 내 사랑이, 모든 것이 무너졌구나”로 바뀌었다. 무대 소품과 조명 색채를 최소화하는 등 절제에서 비롯된 묵직한 정극을 만나볼 수 있다.
4대 비극 중 마지막에 쓰인 ‘맥베스’는 군더더기 없고 드라마틱한 작품으로 꼽힌다. 장군 맥베스가 마녀의 예언을 따라 국왕을 살해한 뒤 왕좌에 오르지만, 끝내 파멸하는 삶을 그렸다. 해오름극장 공연에선 배우 황정민과 송일국, 송영창 등이 5주간 단일 캐스트로 출연해 화제가 됐다.
특히 이번 공연은 스펙터클하게 연출돼 고전 희곡은 따분하다는 선입견을 날려버린다. 강렬한 핏빛 조명, 화려하면서도 기괴한 대관식, 긴장감을 절로 자아내는 음악은 한편의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1000만 배우 황정민의 연기는 ‘악으로 시작한 일은 악으로 끝난다’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그는 대사 마디마다 쉴 새 없이 바뀌는 말투와 걸음걸이, 입매 등으로 격랑처럼 몰아치는 맥베스의 내면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매끄럽게 오르내리는 목소리 톤은 원작의 운문체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국립극단의 명동예술극장 ‘햄릿’ 공연에선 드라마 ‘일타 스캔들’ 등에 출연한 배우 이봉련이 ‘햄릿 공주’ 역으로 나온다. 대사, 캐릭터 설정에 현대적 감수성이 파격적으로 반영돼 햄릿은 왕위계승 서열 1위의 해군 출신 공주로 등장하는 등 원작의 시대착오적 사고나 성차별적 요소를 없앴다. “내겐 이 무슨 흙 중의 흙이란 말인가. 인간이 즐겁지 않아. 여자도 마찬가지야”라는 원작 대사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운가. 인간도 싫고 인간이 만들어낸 이 세상도 싫다”로 바뀌었다. 제59회 동아연극상 희곡상을 받은 정진새가 각색했다.
공연 중인 셰익스피어의 세 작품 모두 주인공 이외 캐릭터들의 시선을 강화해 입체적 재미를 더했다. ‘맥베스’에서 레이디 맥베스는 단지 왕위 찬탈을 부추기는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분출한 끝에 파멸로 치닫는 독립된 인물로 그려진다. 국립극단 공연에서는 아들 햄릿의 숙부와 재혼한 왕비 거트루드에게 ‘자식을 지키고자 했던’ 어머니의 면모를 투영해 선악에 대한 판단을 흐릿하게 한다. 신시컴퍼니의 ‘햄릿’에서는 이름 없는 조연까지 굵직한 원로 배우들이 연기해 그간 가려져 있던 명대사를 부각한다. 손봉숙이 연기하는 ‘배우 4’의 대사 “이 기나긴 광대놀음도 이제 끝인가”는 공연의 대미를 묵직하게 장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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