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15일 밤 서울 지하철 1호선이 한강철교에서 두 시간 멈췄다. 한파 속 지하철에 몸을 실은 승객 500명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했다. 열차 난방이 제대로 안 돼 추위에 떨어야 했고 한강철교 위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했다. 이전 역에서 출입문이 열리면 멈춰 서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지만, 이를 무시하고 운행한 결과였다.
올 들어 열차 사고가 유난히 많았다. 1월에는 KTX가 충북 영동터널 주변을 지나다 열차 바퀴가 빠져나가 탈선했다. 7월엔 대전조차장역 인근에서 수서발 고속열차(SRT)가 탈선했다. 앞서 달리던 열차가 사고 지점을 지나며 “철로가 이상하다”고 신고했지만 관제 당국은 아무런 조치를 안 했다. 11월엔 무궁화호가 영등포역 인근에서 선로를 이탈했다. 선로가 이미 부서진 상태였지만 선로 점검에선 이를 몰랐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고들이 왜 잇따랐을까. 기강 해이의 문제로만 단순하게 보기 힘들다. 현재 철도 시설 유지·보수·관제는 모두 한국철도공사(코레일)가 맡고 있다. SRT도 마찬가지다. 법(철도산업발전기본법)으로 그렇게 되어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철도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민영화를 권고했지만 철도노조 반발로 노무현 정부 때 공사화로 틀었다. 2004년과 2005년 국가철도공단과 코레일이 각각 출범했다. 철도 건설은 철도공단이, 운영은 코레일이 맡는 구조였다. 철도청이 모든 걸 다 했던 체제가 처음 깨졌다. 노동계는 공공성 강화를 이유로 코레일과 철도공단의 재통합을 주장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당시 철도 시설 유지·보수는 코레일이 하도록 했다. 철도공단 재위탁을 받아 하는 형태다.
철도 조직 개편은 정권 때마다 화두가 됐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3년 SR를 설립하고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SRT가 운행을 시작하며 코레일의 철도 운영 독점이 깨졌다. 노동계는 철도공단과 코레일 통합에 이어 SR와 코레일 통합을 요구했다.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노동계에 코레일과 철도공단을 통합하고 코레일과 SR도 통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미션을 수행할 코레일 사장으로는 3선 의원이자 전대협 의장 출신의 ‘힘센 인사’가 왔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의 운동권 선배였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해직자 농성장을 찾아 이들을 복직시켰고 남북대륙철도를 준비하겠다고 나섰다. 당시 코레일 노조는 근로시간 단축을 내걸며 3조 2교대 근무를 4조 2교대로 바꿔 달라 했고 사측은 이를 전격 수용했다. 3개 조가 하던 일을 4개 조가 하니 당장의 근무 강도는 낮아졌지만 인원이 확충되지 않았다. 소요 인력·예산 검토도 안 하고 무작정 노조와 합의한 것. 코레일은 뒤늦게 1800여 명 충원을 요청했지만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가 반대했다. 인원 확충이 안 됐지만 올해 4조 2교대를 본격 확대하며 인력난이 심해지고 숙련도도 떨어졌다. 정부 승인이 없어 ‘시범 사업’이라곤 하지만 현장 도입률이 90%가 넘는다.
올해 열차 사고가 유난히 많아진 것도 이런 구조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 정부는 최근 코레일에 근무 체계를 이전처럼 바꾸라고 뒤늦게 통보했지만, 사고를 막기 위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코레일이 틀어쥔 철도 유지·보수·관제를 다른 곳도 할 수 있게 개방하고 관련 인력 재배치가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철도 운영 주체가 다양해지고 있는 만큼 바뀐 철도 환경에 따라서, 무엇보다 국민 안전을 우선해 철도 혁신을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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